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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11. 2017

채플린과 네슬레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브베의 심플 라이프

스위스 브베(Vevey)는 1만 8천 명이 사는 작은 호반도시다. 도시 전체가 낮고 다양한 건물, 아기자기한 가게와 시장, 걷기 좋은 도로로 짜여진 하나의 골목상권이다. 브베는 또한 무성영화의 대가 찰리 채플린이 25년을 지내다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브베의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채플린의 자취를 감상하다 보면, 브베는 ‘누구의 도시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노을 진 레만호를 감상하는 찰리 채플린 (동상)



찰리 채플린을 통해 감상한 작은 도시 브베

 

브베 레만호의 상징, 포크상(The Fork)을 응시하는 찰리 채플린은 1952년 브베로 이주해 1977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채플린의 무덤은 브베 도심을 조금 벗어난 언덕의 작은 공동묘지에 있다. 그는 영국 런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912년 23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희극 배우 활동을 하다가 1914년부터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채플린은 초기 작품에서 항상 굴뚝 모자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콧수염을 단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거지 신사(The Little Tramp)’로 분장했다. 그는 거지 신사를 연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처구니없이 곤경에 빠지는 거지 신사는 광대같이 엉뚱한 행동을 하지만 항상 신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그가 늘 허름한 신사복과 모자를 챙겨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플린은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자존심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애정을 표했다.


1918년 무렵부터 채플린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카시즘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대 초 미국 정부는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가 사회주의영화라고 판정하여 그를 미국에서 추방했다. 그의 <모던 타임즈>는 인간을 이익의 도구로 소모하고 착취하는 기업을 비판했다.


미국을 떠난 채플린은 유년기를 보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1952년 스위스에 정착했다. 채플린은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스위스 망명 후 니기타 흐루시초프, 주은래, 자와할랄 네루 등 사회주의 지도자들과 공개적으로 교류했다.


 채플린 저택에서 내다 본 푸르른 정원, 그리고 그 너머 보이는 레만호와 알프스산


1964년 자서전에서 채플린은 스위스로 이주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직 집을 찾지 못했다. 친구가 스위스를 권고했다. 나는 런던에 정착하길 원했지만 런던 날씨가 아이들에게 어떨지 자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당시 파운드가 봉쇄 통화인 것도 걱정이었다. (중략) 우리가 발견한 브베 집은 과수원이 딸린 30 에이커의 큰 저택이다. 테라스 앞엔 참으로 아름다운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라는 5 에이커 잔디밭이 저 멀리 산과 호수를 뜰 안으로 품는 듯했다.”


2016년 오픈한 채플린박물관 ‘채플린스 월드’ 입구에서 본 채플린 저택


그는 브베에서 삶의 여정을 마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 조용히 영면한 채플린이 2016년, 다시 브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브베 정부에서 채플린박물관 ‘채플린스 월드’를 개장한 것이다. 채플린스 월드는 그와 그의 가족이 함께 살았던 저택을 중심으로, 스튜디오(작품체험장),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택 1층 실내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서재, 거실, 다이닝룸이 그대로 보존돼있었고, 2층은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볼 수 있는 수많은 영화 장면이 전시됐다.


채플린 저택은 그의 생을 축복하는 장소이기에, 필자는 테마파크 수준으로 조성된 스튜디오보다 오히려 저택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가 자서전에서 묘사한 저택 창문 너머의 레만호 풍경을 제일 먼저 감상하고 싶어 1층 테라스로 향했다. 그의 표현처럼 탁 트인, 푸르른 하늘과 녹음 짙은 풍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브베는 이처럼 채플린을 기념하는 도시다. 그렇다고 채플린이 브베라는 도시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표면적인 상징에 불과할 수 있다.

브베의 역사와 시민의 삶에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상징은 네슬레(Nestlé)다.


채플린 동상, 채플린스 월드, 그리고 채플린이 바라본 레만호 포크상 모두 네슬레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평생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채플린을 출신 도시의 랜드마크로 ‘환생’시킨 것이다. 네슬레가 채플린스 월드를 후원하며 내건 슬로건은 “박물관 그 이상의 채플린스 월드(Chaplin's World, far more than just a museum)”이다. 네슬레는 채플린의 예술 작품을 기리는 것 이상으로, 채플린스 월드를 브베의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적극 후원했다.



네슬레 본사 팔레 네슬레(Palais Nestlé)



브베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 네슬레


네슬레 본사는 브베 호숫가에 위치해 있다. 브베 중심부에서 레만호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그 끝에 이르러 본사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회사의 위상을 떠올리는 많은 사람은 큰 규모의 본사 단지를 기대하지만, 실제 본사는 건물 3개로 이루어져 아담하다.


본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공간은 직원 매점(The Nestlé Staff Shop)이다. 직원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매점에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어 매점 직원에게 본사만의 물건이 있는지 물었지만, 필자가 방문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네슬레도 본사라고 희소성 있는 특별한 물건을 팔지는 않았다.


본사 내부에 가면 회사의 공식 방문객을 위해 만든 방문센터(The Visitors Center)가 있다. 회사가 보유한 모든 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방문센터 홍보 자료는 네슬레의 미래 사업으로 건강과 웰빙을 강조했다. ‘좋은 식품, 행복한 생활 (Good Food, Good Life)’이라는 목표를 위해 좋은 품질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네슬레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느껴졌다.


네슬레 기업홍보관 네스트(nest)


2016년 창업 150주년을 기념한 새로운 기업홍보관 네스트(nest)가 개장했다. 네스트가 위치한 보스케(Les Bosquets)는 1866년 네슬레 창립자가 첫 공장을 지었던 바로 그곳이다. 3,000 평방미터 상당의 큰 규모로, 네스트를 방문한 이들에게 네슬레의 유구한 전통, 그리고 초콜릿(Cailler), 양념(Maggi), 마요네즈(Thomy) 등 각종 네슬레 제품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야외광장, 미니초콜릿공장, 카페에서 방문객들은 여유롭게 네슬레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네슬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 기업답게 그들의 식품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식품박물관 알리망타리움을 따로 설립했다. 식품과 영양에 대한 다양한 전시 행사를 매년 개최하며, '잘 먹는 것(Eat Well)'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육한다. 레만호의 랜드마크 포크상도 알리망타리움이 소유한 작품이다. 박물관과 포크 상 사이에는 찰리 채플린 동상이 서서 레만 호를 바라본다.


3미터 높이의 거대한 조각 작품인 포크 상은 호숫가에서 10미터가량 떨어진 호수 안에 세워져 있다. 알리망타리움박물관 안에 소장했던 포크 상을 레만 호수 한가운데에 꽂다니, 기발한 발상이다. 포크 상은 햇빛 방향에 따라 매시간 다른 색을 띠며 빛나는데, 하루 중 석양의 붉은빛을 반사하는 저녁 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알리망타리움박물관은 1995년 개장 1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포크 상을 1년간 전시했다. 전시가 끝난 후 철거된 포크 상이 레만 호에 다시 돌아온 것은 13년 후인 2009년이다. 주 정부가 브베 시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포크 상의 영구 전시를 허용했다.



알리망타리움 식품박물관 카페에서 바라본 레만호와 포크상


네슬레는 다양한 문화 시설을 기부함으로써 출신 도시 브베에 대한 '무한 사랑'을 표현한다. 네슬레가 기부한 문화 시설은 브베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동시에 브베의 네슬레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이들 관계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회사 정체성이 브베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네슬레와 브베는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분리하기 어렵다.


아무리 해외 사업을 많이 한다고 해도 네슬레는 기본적으로 브베 회사다. 실용성, 근면, 성실 등 브베 가치가 기업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과 도시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는 상품이나 광고에서 회사의 지역적 배경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브베나 스위스 지명을 사용한 브랜드가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네슬레 안내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베를 방문하면 브베 이곳저곳 네슬레의 정취가 드러나듯, 네슬레 정체성의 중심에는 브베가 있다.

 

활기를 띈 브베 시내 광장



150년 동안 고향을 지킨 네슬레


테이스터스 초이스, 네스카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 음료를 만드는 네슬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식품 회사다. 이유식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현재 음료수, 유제품, 조리 식품, 과자류, 애견용품, 제약품 분야에서 총 80개 가까운 브랜드를 생산한다.


수년 전 ‘중국산 제품 없이 살아보기’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중국 제품을 소비하는지 알리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이다. 참여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상품 없이 하루를 버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슬레를 대상으로 이 같은 실험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일부 국가는 ‘네슬레 제품 없이 살아보기’ 실험을 시작하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네슬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보편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하지만 네슬레는 분명 배울 점이 많은 기업이다. 많은 사람이 미래 성장 산업으로 농업과 식품 산업을 이야기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적인 식품 회사를 배출하지 못했다. 스위스 같은 작은 나라에서 세계 최대의 식품 기업으로 성장한 네슬레는 우리 식품 산업에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네슬레 본사에 근무하는 인력은 5000명으로, 전체 종업원 25만 명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오래전부터 현지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본사에 큰 규모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현지 시장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인력 대부분을 해외 사업장에 배치한다.


내가 만난 네슬레 부사장 H는 작은 도시에서 본사를 운영하는 일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마 본사를 이전하더라도 더 큰 도시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네슬레가 스위스 시장에서 얻는 이익은 전 세계 120여 개 나라에서 얻는 매출의 1.5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슬레 임원의 90퍼센트는 스위스인이 아니다. H 부사장이 본사 이전에 대해 한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우리에게 스위스 인맥이 중요하다면 취리히로 이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네트워크는 스위스가 아닌 세계적 네트워크이다.”


네슬레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세계 시장으로의 접근성이며 브베는 이에 아주 적합한 도시다. 브베에서 제네바 국제공항은 1시간, 취리히 국제공항은 2시간 거리다. 기차 중심의 교통 문화 덕분에 국내 이동이 매우 편리하다. 집에서 가까운 역에서 기차를 타면 공항 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문전 연결성이 매우 좋다.


사실 다양한 식품 상품을 생산해 전 세계에서 사업하는 회사가 굳이 중심도시에 본사를 둘 필요는 없다. 커피만 보아도 네슬레는 국가별 취향에 따라 50개가 넘는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 네슬레가 이 상품들을 한곳에서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네슬레가 추구하는 현지 법인 중심 경영 방식에서는 경영 인력을 한곳에 집결하는 것도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스위스는 주 전통이 강한 연방 국가다. 브베 사람은 자신이 속한 보 주(Vaud Canton)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이 강하다. 천주교 신자가 많은 보 지역에선 전통적으로 개신교의 중심지였던 제네바를 경계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스위스는 또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말을 종교처럼 믿는 나라다. 우선 스위스 자체가 작은 나라다. 그래서인지 스위스 사람들은 작은 도시를 제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이 브베에서 네슬레를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지역 특색이 강한 사회에서 네슬레가 보를 떠나 다른 주로 이전하는 것은 스위스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네슬레 역사에서 브베의 지위가 항상 공고한 것은 아니었다. 브베는 적어도 3번 네슬레의 본사를 상실할 뻔했다. 브베 본사의 첫 번째 위기는 제네바 기업인들에 의한 회사 인수 시도였다. 앙리 네슬레가 사망한 후 네슬레는 경영 악화로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다. 만약 그때 제네바 기업인들이 회사를 인수했다면 본사는 현재 제네바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사의 이전을 우려한 보 지역 자본가들이 힘을 합하여 제네바 기업인 대신 네슬레를 인수했다.


두 번째 위기는 함(Cham) 본사의 등장이다. 네슬레는 1920년, 함 지역에 본사를 둔 앵글로스위스컴퍼니(Anglo-Swiss Company)와 합병하면서 브베와 함에 각각 따로 본사를 운영하기로 했다. 아직도 네슬레는 명목적으로나마 함에 본사를 유지하고 있다. 두 본사는 처음에는 동등하게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브베 본사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그 결과 브베 본사가 네슬레의 실질적인 본사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브베 본사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독일이 유럽 대륙을 장악하면서 스위스는 독일과 그 동맹국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스위스에서 해외 시장을 관리하기 어렵게 되자 네슬레는 본사 기능을 양분하여 유럽 시장은 브베 본사가, 그 외 시장은 미국 코네티컷 주 스탬퍼드(Stamford) 본사가 담당하는 체제를 채택했다. 전쟁이 종료된 후 네슬레는 스탬퍼드 본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당시 CEO를 포함한 스탬퍼드 본사 경영진은 스탬퍼드 본사를 유지하길 희망했으나, 네슬레는 결국 스탬퍼드 본사를 철수하고 브베로 본사 기능을 일원화했다.


브베 본사의 다난한 역사는 작은 도시가 세계적 기업의 본사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브베 지역 주민과 기업인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네슬레는 브베 본사를 지킬 수 있었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사의 지위가 별달리 위협받은 일이 없다. 나아가 네슬레가 기업박물관, 채플린박물관 등 브베 지역의 여러 시설에 투자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브베 본사에 대한 네슬레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나란히 선 러시아정교 성당과 세인트마틴 교회


앙리 네슬레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민한 약사였다. 이민자가 세운 네슬레는 처음부터 해외 사업과 외국인 고용에 적극적이었다. 현재 CEO를 포함한 네슬레 최고 경영진의 절대다수 역시 외국인이다.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집행위원회의 위원 13명 중에서 스위스 국적을 가진 사람은 3명뿐이다. 또한 본사 인력의 40퍼센트 이상이 외국인이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브베와 스위스는 외국인이 많은 곳이다. 관광객으로 오는 외국인도 많지만 이민자도 많다. 스위스는 이민자가 전체 인구의 25퍼센트에 달하는 대표적인 이민 국가다. 찰리 채플린, 그레이엄 그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 등 수많은 위인이 브베를 찾았다.


브베의 개방성은 종교에 대한 관용에서 제일 잘 드러난다. 브베에는 천주교인이 다수지만 전통적으로 다른 종교에 관대하다. 브베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교회도 러시아정교 성당과 세인트마틴 개신교 교회다. 러시아정교 성당은 1878년 브베에 정착한 슈왈로프 백작이 요절한 딸 바바라를 위해 세웠다. 19세기 초반부터 많은 러시아 귀족과 지식인들이 스위스로 이주하면서 여러 곳에 러시아 교민 사회가 형성되었다. 러시아 귀족들은 자녀를 교육하는 장소로 스위스를 선호했다. 브베도 러시아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도시 중 하나였다.


러시아정교 성당 뒤의 언덕에 있는 세인트마틴 교회는 오랫동안 브베 개신교의 중심지였다. 16세기 장 칼뱅의 주도로 종교 개혁에 성공한 후, 스위스는 다른 유럽 국가에 개신교를 전파했다. 또한 영국의 청교도 등 모국에서 박해받는 신교도를 망명자로 받아들였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왕정복고 탓에 스위스로 망명했던 앤드루 브로턴, 에드먼드 루드로 등 영국 청교도 지도자들은 결국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고, 세인트마틴 교회에 묻혔다. 언덕 아래에서 나란히 서 있는 듯 보이는 러시아정교 성당과 세인트마틴 교회는 종교에 대한 브베의 개방성을 상징한다.



매력적인 자연환경을 가진 관광 도시


브베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스위스 리비에라(Riviera, 레만 호 북부)의 중심부에 있다. ‘벨 에포크(Belle Epoch, 아름다운 시절)’라고 불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의 부자들은 스위스 리비에라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브베는 항상 부유한 관광객으로 붐빈다.


부유한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답게 브베에는 세계적인 명품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브베의 호텔도 유명하다. 호텔 뒤라크(Hotel du Lac)와 호텔 데트루와쿠론느(Hotel des Trois Couronnes)는 오래전부터 영화와 소설에 등장해온 전설적인 호텔이다. 두 호텔은 레만 호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브베의 매력은 단연 자연환경이다. 브베에서 호수, 백조, 알프스, 적설, 포도밭, 햇살, 스위스 주택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아름다움의 총화를 체험할 수 있다. 어느 계절, 어느 날씨에도 브베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스위스 도시의 아름다움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스위스에도 다른 나라 도시처럼 거칠고 불결한 장소가 많다. 또한 늘 경제 양극화와 이민자 통합 문제로 고민한다. 통계로 보면 스위스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더 깨끗하다고 보기 어렵다. 화학 산업과 제약 산업이 발전한 스위스의 모든 도시가 알프스 마을처럼 쾌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러나 브베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현실과 통계는 중요하지 않다. 스위스는 항상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다. 누군가 스위스에서 선물로 사온 카드, 슬라이드, 색연필 등에 의해 굳어진 이미지다. 나는 스위스를 방문하면서 어린 시절 마음에 새긴 동경의 대상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애써 이민자의 가난, 뒷골목의 낙서와 불결함을 무시하고 그저 아름다운 곳으로만 스위스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브베


내가 브베의 자연환경에 매료됐다면 브베를 정기적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방문해 온 미국인과 영국인은 브베에서 무엇을 찾고 얻을까? 오랫동안 미국인에게 브베는 유럽의 선진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호텔데트루와쿠론느를 배경으로 한 소설 '데이지 밀러'에서 유럽의 관습과 예절을 무시하는 아름다운 미국 처녀의 비극적인 삶을 묘사했다.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데이지는 어머니, 어린 남동생과 함께 유럽을 여행한다. 사회 관념에 구속받지 않는 이 발랄한 처녀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젊은 남자와 자유롭게 만난다.


미국 청년 윈터본은 호텔데트루와쿠론느에서 만난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데이지는 진정한 관계를 원하는 윈터본을 두고 계속 많은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 춥고 비가 오는 어느 날 밤에 그녀는 이탈리아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폐렴에 걸린다. 병상에 누운 데이지는 윈터본에게 그를 배신한 적이 없다는 말을 남긴 채,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19세기 브베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한 데이지의 삶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다.


영국 작가 아니타 부크너(Anita Bookner)가 1987년 브베를 배경으로 쓴 소설 '호텔 뒤라크'도 감정과 사랑에 충실한 여자를 이야기한다. 부크너는 이 소설로 영문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부커상을 받았다. 소설에서 주인공 에디스 호프는 연애소설 작가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약혼자와의 결혼을 망설이다가, 결혼식 당일이 되자 식장까지 갔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들은 에디스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놀라, 그녀에게 조용한 곳에서 잠시 근신할 것을 권유한다. 그녀가 선택한 근신처가 바로 브베다.


에디스는 관광객이 모두 떠난 9월에 브베에 도착한다. 부크너는 9월의 브베를 이렇게 적는다. “숙박비가 떨어지면서 누구도 호수 끝에 있는 이 작은 도시를 늦은 9월에 방문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 내리면 며칠씩 떠 있다 갑자기 사라져서 새로운 풍경을 공개하는 짙은 안개 때문인지 보통 때도 말수가 적은 브베 사람들은 이때가 되면 더욱 과묵해졌다. 브베는 인간이 신중하게 수확한 풍요가 있는 땅이다. 적어도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정복할 정도로 안정된 곳이다. 오직 날씨만이 브베에서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변덕스러운 존재다.”


브베 사람은 에디스와 동떨어져 있었다. 에디스가 브베에서 만나고 대화한 사람은 전부 그녀와 같은 관광객이거나 호텔 직원이다. 그녀에게 이 도시는 요즘 흔히 말하는 ‘힐링’을 제공하는 장소다. 부자들이 스위스 은행에서 프라이버시를 찾는 것처럼, 그녀는 브베에서 치유의 프라이버시를 찾는다. “뒤라크 호텔이 제공하는 것은 부드러운 형태의 보호 구역, 프라이버시의 보장, 그리고 잘못한 것이 없다는 감정을 주는 감쌈Protection과 배려Discretion다. ……이렇듯 이 호텔은 불공평한 일을 당하거나 피곤한 삶을 산 사람이 회복하도록 휴식을 확실하게 제공하는 장소로 알려졌다.”


그러나 에디스는 브베에서 영원한 치유를 찾지 못한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브베에서 새로운 청혼자를 만나지만,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결혼을 원하면서 다른 여자와 불륜을 범하는 그에게 크게 실망한다. 에디스는 과묵하고 이성적인 브베를 포기하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감정에 충실한 런던으로 돌아간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데이지와는 달리 에디스는 브베를 떠나 다시 한번 감정과 사랑에 충실한 삶을 추구한다. 감성과 이성의 대립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헨리 제임스와 아니타 부크너는 브베를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곳으로 그렸다. 감정을 다친 외국인이 브베에서 찾는 것은 차가운 이성이 제공하는 조용함, 안정감, 그리고 프라이버시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


과묵한 브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으로 가야 한다. 네슬레 본사 뒤의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림 같은 마을, 코르소(Corseaux)를 만난다. 코르소의 어느 언덕에 서도 네슬레 본사와 브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집, 가게, 식당, 공공건물 등 이 마을의 모든 것은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허세와 사치스러움은 찾기 어렵다. 마을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파는 공동 판매장에서도 마을 사람의 소박함을 경험할 수 있다. 레만 호를 남쪽으로 바라보는 코르소 언덕은 예로부터 화이트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공동 판매장이 관광객을 위해 내놓은 와인은 모두 소박하게 포장된 서민 와인이다.


브베 사람은 여느 스위스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는 것이 스위스의 미덕이다. 나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가 스위스 사람의 생활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이곳의 라이프스타일은 단순하고 편리하며 견고하다. 나는 스위스 라이프스타일을 한마디로 ‘단순한 삶Simple Life의 추구’로 표현하고 싶다.


네슬레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브베 사람은 이곳이 ‘심심한Boring’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외부인이 브베의 단순한 삶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지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람에겐 재미없는 삶이 문제가 안 되는 것 같다. 단순한 삶을 살려면 재미없는 삶은 당연한 걸까?

단조로운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스위스 사람이 사회 참여를 꺼리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이다. 인구 2000명의 코르소에서도 마을 주민 전체가 마을의 주요 현안을 토론으로 결정한다. 마을 회관 게시판에 빽빽하게 적힌 마을 소식과 안내문에서 공동체에 대한 마을 주민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소박한 한편으로는 어수룩한 모습도 보이지만, 스위스 사람은 타고난 상인으로 알려졌다. 예금자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는 스위스 은행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거래자의 불편한 진실을 눈감아 줄 만큼 실리 지향적이다. 인구 800만의 스위스가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인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14개를 보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베와 네슬레가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 철학


여느 스위스 사람과 마찬가지로 브베 사람은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는 것이 스위스의 미덕이다. 필자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가 스위스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스위스 브베 라이프스타일도 단순하지만 견고하고, 실용성을 추구한다.


브베 라이프스타일을 한 마디로 단조로운 삶(Simple Life)의 추구라고 표현하고 싶다.


네슬레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친구가 한 때 이런 말을 했다. 브베인은 이곳이 심심한(Boring)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외부인이 브베인의 잔잔하고 평범한 삶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지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에겐 재미없는 삶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재미없는 삶은 불가피한 걸까?


브베에서 말년을 맞이한 채플린의 묘소


브베의 정체성은 네슬레의 기업 문화에 그대로 전수됐다. 네슬레는 브베와 같이 소박하고 단순하며, 또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문화를 추구한다. 근본적으로 네슬레는 건강하고 순수한 식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사람들은 네슬레를 통해 브베를 건강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도시로 이해한다. 이처럼 브베의 도시문화와 네슬레의 기업문화가 융합된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만의 도시정체성 발현을 목도하게 된다.


지금까지 필자가 품어온 질문을 다시 꺼내보자. 브베는 채플린의 도시인가, 네슬레의 도시인가? 브베는 무서울 정도로 외부에 열려있다.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단조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많은 외국인을 브베로 끌어당긴다. 채플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브베를 채플린의 도시라 칭해도 무방하다. 채플린은 브베인으로 생을 마감했고, 브베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네슬레라는 막강한 존재가 있었다. 네슬레가 브베의 다양한 문화 산물을 아낌없이 후원하며 내재화된 브베의 정체성을 드러냈듯, 결국 브베는 네슬레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채플린과 네슬레로 브베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브베에 수많은 외국인이 정착함에도 불구하고, 도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은 쉬이 변하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변하는 쪽은 오히려 외국인이다. 브베가 외국인을 동화시키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데 말이다.

대기업과 외국인에 개방적이면서도 브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꿋꿋하게 지키는 브베 시민들을 보면서 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브베의 그 무엇이 대기업과 외국인을 브베화 시킨 걸까? 삶의 방식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외에 또 다른 답이 있을까?




1차 수정 2017/4/11

2차 수정 2020/4/25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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