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2 공유 53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By 골목길 경제학자 . Apr 11. 2017

채플린의 도시, 네슬레의 도시

스위스 브베(Vevey)는 1만 8천 명이 사는 작은 호반도시다. 도시 전체가 낮고 다양한 건물, 아기자기한 가게와 시장, 걷기 좋은 도로로 짜여진 하나의 골목상권이다. 브베는 또한 무성영화의 대가 찰리 채플린이 25년을 지내다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브베의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채플린의 자취를 감상하다 보면, 브베는 ‘누구의 도시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노을 진 레만호를 감상하는 찰리 채플린 (동상)




찰리 채플린을 통해 감상한 작은 도시 브베

 

브베 레만호의 상징, 포크상(The Fork)을 응시하는 찰리 채플린은 1952년 브베로 이주해 1997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채플린의 무덤은 브베 도심을 조금 벗어난 언덕의 작은 공동묘지에 있다. 그는 영국 런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912년 23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희극 배우 활동을 하다가 1914년부터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채플린은 초기 작품에서 항상 굴뚝 모자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콧수염을 단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거지 신사(The Little Tramp)’로 분장했다. 그는 거지 신사를 연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처구니없이 곤경에 빠지는 거지 신사는 광대같이 엉뚱한 행동을 하지만 항상 신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그가 늘 허름한 신사복과 모자를 챙겨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플린은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자존심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애정을 표했다.


1918년 무렵부터 채플린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카시즘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대 초 미국 정부는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가 사회주의영화라고 판정하여 그를 미국에서 추방했다. 그의 <모던 타임즈>는 인간을 이익의 도구로 소모하고 착취하는 기업을 비판했다.


미국을 떠난 채플린은 유년기를 보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1952년 스위스에 정착했다. 채플린은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스위스 망명 후 니기타 흐루시초프, 주은래, 자와할랄 네루 등 사회주의 지도자들과 공개적으로 교류했다.


 채플린 저택에서 내다 본 푸르른 정원, 그리고 그 너머 보이는 레만호와 알프스산


1964년 자서전에서 채플린은 스위스로 이주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직 집을 찾지 못했다. 친구가 스위스를 권고했다. 나는 런던에 정착하길 원했지만 런던 날씨가 아이들에게 어떨지 자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당시 파운드가 봉쇄 통화인 것도 걱정이었다. (중략) 우리가 발견한 브베 집은 과수원이 딸린 30 에이커의 큰 저택이다. 테라스 앞엔 참으로 아름다운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라는 5 에이커 잔디밭이 저 멀리 산과 호수를 뜰 안으로 품는 듯했다.”


2016년 오픈한 채플린박물관 ‘채플린스 월드’ 입구에서 본 채플린 저택


그는 브베에서 삶의 여정을 마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 조용히 영면한 채플린이 2016년, 다시 브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브베 정부에서 채플린박물관 ‘채플린스 월드’를 개장한 것이다. 채플린스 월드는 그와 그의 가족이 함께 살았던 저택을 중심으로, 스튜디오(작품체험장),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택 1층 실내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서재, 거실, 다이닝룸이 그대로 보존돼있었고, 2층은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볼 수 있는 수많은 영화 장면이 전시됐다.


채플린 저택은 그의 생을 축복하는 장소이기에, 필자는 테마파크 수준으로 조성된 스튜디오보다 오히려 저택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가 자서전에서 묘사한 저택 창문 너머의 레만호 풍경을 제일 먼저 감상하고 싶어 1층 테라스로 향했다. 그의 표현처럼 탁 트인, 푸르른 하늘과 녹음 짙은 풍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브베는 이처럼 채플린을 기념하는 도시다. 그렇다고 채플린이 브베라는 도시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표면적인 상징에 불과할 수 있다.

브베의 역사와 시민의 삶에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상징은 네슬레(Nestlé)다.


채플린 동상, 채플린스 월드, 그리고 채플린이 바라본 레만호 포크상 모두 네슬레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평생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채플린을 출신 도시의 랜드마크로 ‘환생’시킨 것이다. 네슬레가 채플린스 월드를 후원하며 내건 슬로건은 “박물관 그 이상의 채플린스 월드(Chaplin's World, far more than just a museum)”이다. 네슬레는 채플린의 예술 작품을 기리는 것 이상으로, 채플린스 월드를 브베의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적극 후원했다.




브베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 네슬레

 

테이스터스 초이스, 네스카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 음료를 만드는 네슬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다. 창업자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가 1866년 유아용 시리얼을 개발하여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음료, 유제품, 조리 식품, 과자류, 애견용품, 제약품 등 여러 분야에서 총 2,000개 이상의 브랜드를 생산해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식품 회사답게 2016년 매출은 889억 달러에 달했다.


네슬레 본사 팔레 네슬레(Palais Nestlé)


네슬레 본사는 브베 호숫가에 위치해 있다. 브베 중심부에서 레만호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그 끝에 이르러 본사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회사의 위상을 떠올리는 많은 사람은 큰 규모의 본사 단지를 기대하지만, 실제 본사는 건물 3개로 이루어져 아담하다.


본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공간은 직원 매점(The Nestlé Staff Shop)이다. 직원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매점에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어 매점 직원에게 본사만의 물건이 있는지 물었지만, 필자가 방문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네슬레도 본사라고 희소성 있는 특별한 물건을 팔지는 않았다.


본사 내부에 가면 회사의 공식 방문객을 위해 만든 방문센터(The Visitors Center)가 있다. 회사가 보유한 모든 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방문센터 홍보 자료는 네슬레의 미래 사업으로 건강과 웰빙을 강조했다. ‘좋은 식품, 행복한 생활 (Good Food, Good Life)’이라는 목표를 위해 좋은 품질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네슬레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느껴졌다.


네슬레 기업홍보관 네스트(nest)


2016년 창업 150주년을 기념한 새로운 기업홍보관 네스트(nest)가 개장했다. 네스트가 위치한 보스케(Les Bosquets)는 1866년 네슬레 창립자가 첫 공장을 지었던 바로 그곳이다. 3,000 평방미터 상당의 큰 규모로, 네스트를 방문한 이들에게 네슬레의 유구한 전통, 그리고 초콜릿(Cailler), 양념(Maggi), 마요네즈(Thomy) 등 각종 네슬레 제품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야외광장, 미니초콜릿공장, 카페에서 방문객들은 여유롭게 네슬레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네슬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 기업답게 그들의 식품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식품박물관 알리망타리움을 따로 설립했다. 식품과 영양에 대한 다양한 전시 행사를 매년 개최하며, '잘 먹는 것(Eat Well)'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육한다. 레만호의 랜드마크 포크상도 알리망타리움이 소유한 작품이다.


알리망타리움 식품박물관 카페에서 바라본 레만호와 포크상


네슬레는 다양한 문화 시설을 기부함으로써 출신 도시 브베에 대한 '무한 사랑'을 표현한다. 네슬레가 기부한 문화 시설은 브베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동시에 브베의 네슬레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이들 관계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회사 정체성이 브베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네슬레와 브베는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분리하기 어렵다.


아무리 해외 사업을 많이 한다고 해도 네슬레는 기본적으로 브베 회사다. 실용성, 근면성실 등 브베 가치가 기업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과 도시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는 상품이나 광고에서 회사의 지역적 배경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브베나 스위스 지명을 사용한 브랜드가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네슬레 안내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베를 방문하면 브베 이곳저곳 네슬레의 정취가 드러나듯, 네슬레 정체성의 중심에는 브베가 있다.

 

활기를 띈 브베 시내 광장




브베와 네슬레가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 철학


여느 스위스 사람과 마찬가지로 브베 사람은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는 것이 스위스의 미덕이다. 필자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가 스위스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스위스 브베 라이프스타일도 단순하지만 견고하고, 실용성을 추구한다.


브베 라이프스타일을 한 마디로 단조로운 삶(Simple Life)의 추구라고 표현하고 싶다.


네슬레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친구가 한 때 이런 말을 했다. 브베인은 이곳이 심심한(Boring)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외부인이 브베인의 잔잔하고 평범한 삶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지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에겐 재미없는 삶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재미없는 삶은 불가피한 걸까?


브베에서 말년을 맞이한 채플린의 묘소


브베의 정체성은 네슬레의 기업 문화에 그대로 전수됐다. 네슬레는 브베와 같이 소박하고 단순하며, 또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문화를 추구한다. 근본적으로 네슬레는 건강하고 순수한 식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사람들은 네슬레를 통해 브베를 건강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도시로 이해한다. 이처럼 브베의 도시문화와 네슬레의 기업문화가 융합된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만의 도시정체성 발현을 목도하게 된다.


지금까지 필자가 품어온 질문을 다시 꺼내보자. 브베는 채플린의 도시인가, 네슬레의 도시인가?


브베는 무서울 정도로 외부에 열려있다.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단조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많은 외국인을 브베로 끌어당긴다. 채플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브베를 채플린의 도시라 칭해도 무방하다. 채플린은 브베인으로 생을 마감했고, 브베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네슬레라는 막강한 존재가 있었다. 네슬레가 브베의 다양한 문화 산물을 아낌없이 후원하며 내재화된 브베의 정체성을 드러냈듯, 결국 브베는 네슬레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채플린과 네슬레로 브베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브베에 수많은 외국인이 정착함에도 불구하고, 도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은 쉬이 변하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변하는 쪽은 오히려 외국인이다. 브베가 외국인을 동화시키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데 말이다.

대기업과 외국인에 개방적이면서도 브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꿋꿋하게 지키는 브베 시민들을 보면서 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브베의 그 무엇이 대기업과 외국인을 브베화 시킨 걸까? 삶의 방식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외에 또 다른 답이 있을까?

keyword
<작은 도시 큰 기업> 저자
<라이프스타일 도시> 저자
www.facebook.com/jongryn.mo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