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는 시드니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인구 약 40만 정도가 사는 작은 도시이다. 캔버라 시민은 이곳이 호주 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홍보한다. 실제로 호주의 주요 도시가 바닷가에 있다 보니, 내륙에는 캔버라만 한 크기의 도시가 없다.
2000년도 중반 캔버라에 처음 방문할 때 호주에 사는 친구들에게 캔버라에서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곳에선 할 일이나 구경할 게 별로 없다고 했다. 캔버라가 ‘심심한 도시’라고 들어서인지, 나는 호주로 출장 갈 일이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시드니에 들를 생각부터 했다. 시드니에서 하루라도 지낼 수 있으면 캔버라 출장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면 그저 일이 되어버렸다. 시드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은근히 짜증도 났다. 2013년 가을, 캔버라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한창 도시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글을 준비할 때여서 여느 때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캔버라를 관찰할 수 있었던 여행이다.
캔버라는 1930년대 이후 행정 수도로 발전한 도시다. 우리나라의 세종시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도시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이 세종시의 미래에 관심을 두고, 세종시가 독립적인 경제 기반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한다. 세종시보다 100년 먼저 행정 수도로 출발한 캔버라의 역사에서 세종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캔버라는 호주의 수도이자 계획도시다. 왜 호주가 캔버라를 수도로 선정했을까? 영국 식민지 시절에 호주는 한 나라가 아니었다. 현 6개 주는 당시 각각 독립적인 식민지로 운영되었다. 1901년에 이 6개의 식민지를 호주 연방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한 후, 수도 선정 작업이 시작됐다. 멜버른과 시드니가 수도 유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1908년 호주 정부는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있는 캔버라를 수도로 정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브라질이 내륙 개발을 목표로 브라질리아를 수도로 개발했듯 호주 역시 좀 더 명확한 이유로 캔버라를 수도로 선정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종시를 행정 수도로 선택할 때와 비슷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수도가 선정되었다. 캔버라는 지역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수도가 되는 행운을 잡았다. 굳이 말하자면 지역 통합이 캔버라 건설의 명분이다.
캔버라라는 이름도 수도 선정 당시에 붙여진 것인데, 원주민 말로 ‘만남의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캔버라는 처음부터 계획된 도시였다. 거친 황무지였던 이 지역은 1927년부터 10년 동안 계속된 대대적인 수도 건설 사업 끝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월터 벌리 그리핀Walter Burley Griffin이 캔버라를 설계했다. 당시 유행했던 정원 도시 운동의 영향을 받은 그는 캔버라를 주변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자연 도시로 설계했다.
캔버라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도시 중심의 벌리그리핀 호수 주변에 모두 모여 있다. 도시의 중요한 랜드마크인 이 호수의 이름은 도시 설계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도시 곳곳에 산책로를 만든 덕분에 굳이 자동차를 타지 않아도 호숫가에 줄지어 자리 잡은 주요 관광지를 방문할 수 있다.
벌리그리핀 호수 주변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관광지는 전쟁박물관이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있는 이 상징적인 박물관은 규모와 전시 내용으로 따졌을 때 세계적인 전쟁박물관으로 알려졌다. 박물관 내부에는 1850년대부터 호주가 참가한 전쟁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세상을 떠난 군인 10만여 명의 명복을 기리는 문구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호주가 본토에서 단 한 차례도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자료는 호주가 파병한 외국 전쟁에 관한 것이다. 전쟁박물관이 국회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추모객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짧은 역사임에도 호주가 경쟁력 있는 나라로 성장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립미술관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호주에서 제일 큰 이 미술관은 비록 유럽과 미국의 유명 미술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가의 작품을 시대별로 골고루 전시하고 있다. 세잔, 모네,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을 비롯해 1970년대 초반에 야심차게 구매한 잭슨 폴록의 작품까지, 10만 점 이상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한다. 호주 국립미술관은 특히 호주 원주민과 관련된 미술품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적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전시된 원주민 미술품들도 흥미로웠다. 또한 호주 출신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호주의 유명 화가인 톰 로버츠, 아서 스트리턴, 시드니 놀란의 작품이 특히 인기 있다. 나의 관심을 끈 작품들은 호주 작가들의 풍경화였다. 조그만 건물 몇 개가 해변에 세워진 시드니의 초기 풍경을 그린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방문했을 무렵 현대 대중미술의 대가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인 그는 저급 문화로 알려졌던 만화를 회화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밝은 색채와 단순한 형태, 뚜렷한 윤곽선, 기계적 작업으로 만들어진 점(벤데이 점Benday Dot) 등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의 작품은 한눈에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행복한 눈물Happy Tears' 등 그의 유명 작품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캔버라의 대표 관광지들을 간단히 둘러보았으니, 이제 캔버라의 문화와 기업을 찾아 나설 시간이다. 나는 도시 분위기를 체험하기 위해 도심의 상업 지역을 먼저 찾아갔다.
캔버라는 여러 면에서 살기 좋은 도시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균기온이 섭씨 13도로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기후이다. 여름은 섭씨 40도에 근접할 정도로 무덥지만, 습도가 낮아 저녁이 되면 선선해진다. 도시 주변의 산과 강을 잘 보전하고 도시를 정원처럼 조성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도시보다 매력적인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자연환경과 기후가 좋은 덕분에 이곳 시민은 야외 활동을 많이 즐긴다.
안정된 경제 기반을 가진 캔버라는 앞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연방정부가 안정된 고용을 제공하는 덕택에 캔버라는 실업률이 낮고, 평균 소득과 부동산 가격이 다른 도시보다 높은 편이다. 대학과 정부 연구소가 많이 모여 있어 역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고, 젊은 전문직 인재가 많이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생활환경도 활기차 보였다. 캔버라센터Canberra Center를 중심으로 한 도심 상권은 대도시 못지않게 규모가 커 보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유명 브랜드 상점이 가득했다. 캔버라는 호주에서 인구 대비 식당의 비율이 높은 도시라서 도심과 교외에 많은 음식점과 카페가 있다. 도심 가까이에 있는 브래던Braddon 거리는 카페, 바, 빈티지 상점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말하자면 이곳이 캔버라의 보헤미안 구역인 셈이다. 와인도 이 도시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캔버라는 비록 호주의 다른 지역보다 규모는 작지만, 품질이 높은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캔버라는 왠지 모르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긴다. 캔버런(Canberran, 캔버라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행동하며 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 알려졌듯 정열, 흥분 등은 캔버라나 캔버런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정돈이 잘된 도시경관은 오히려 개성 없는 도시처럼 비치는 구석이 있다.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캔버라의 무미건조한 사무실 건물, 그라피티가 없는 깨끗한 벽, 로터리와 광장이 바둑판처럼 짜인 도로망을 보며 지루하고 생기 없는 도시라고 비웃는다.
캔버라의 더 큰 고민은 독립적인 사업 기반의 부재다. 캔버라 고용 인구의 40퍼센트가 공무원일 정도로 도시 경제는 연방정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민간 기업들도 대부분 정부를 상대로 사업하는 기업이다. 호주 정부는 오랫동안 캔버라를 연방정부 외에 다양한 민간 기관과 기업이 지역 경제를 이끄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가 행정 도시를 세우며 그곳이 자칫 ‘공무원만의 도시’가 되지 않을까를 우려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흔히 도시가 발전하려면 대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호주 역시 대학과 연구기관 유치로 도시의 독립적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 호주 정부가 도시 경제의 다변화를 위해 캔버라에 설립한 대학은 호주국립대학교ANU: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이다.
새로운 도시에 좋은 대학을 유치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대학 유치로 기대하는 효과는 인구 증가만이 아니다. 인구가 늘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 유치와 산업 개발에 따라 고용과 생산도 저절로 증가한다. 즉 도시 경제가 활성화된다.
호주국립대학교는 1946년 호주 연방의회의 법령에 따라 대학원 연구와 학문 강화를 위해 호주 유일의 연구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대학과 연구기관 유치는 공공서비스 도시였던 캔버라가 교육과 연구의 도시로 자리 잡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 후 학부 과정이 추가되면서 학교 인구는 약 2만 명으로 증가했고, 호주 학생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유학생들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대학은 매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최상위권 대학으로 선정된다.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브라이언 슈밋 교수를 포함하여 총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호주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영국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미국 버클리, 예일 등이 참여하는 세계연구중심대학협회International Alliance of Research Universities 회원이다. 또한, 호주의 최고 명문 대학답게 케빈 러드 수상, 밥 호크 수상 등 호주 사회의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그렇다면 호주국립대학은 지역사회가 기대했던 것만큼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학 주변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오스틴에서 볼 수 있는 대학 중심의 첨단기술 산업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산학협력을 통해 설립한 벤처 기업은 있지만, 그중 국가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은 찾기 어려웠다.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 대부분은 캔버라에 남지 않고 취업을 위해 멜버른이나 시드니 같은 대도시로 떠났다. 물론 호주국립대학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혁신 ANUInnovation ANU’ 시스템을 만들어 대학과 기업, 대학과 정부 기관의 협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평판도 어떻게 보면 공정하지 않다. 캔버라에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첨단산업에서 일하는 인재 대부분이 호주국립대학 출신이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인재를 교육하는 이 대학이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학의 정체성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시작한 호주국립대학은 전통적으로 학문적 연구에 강한 대학이기 때문에 산학협력에 소극적일 수 있다. 사실 응용과학이나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호주국립대학보다 시드니 대학 등 대도시의 유명 대학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립대학인 것도 지역에 관한 관심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아마도 대학 구성원 대부분은 모교를 캔버라 지역에 국한된 대학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산업 시설의 부재도 문제다. 호주국립대학의 내 친구들에게 산학협력의 부진에 대해 질문하면, 그들은 캔버라에는 연방정부만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산학협력이 어렵다고 대답한다. 한마디로 캔버라에는 대학과 협력할 수 있는 기업이 없다. 왜 캔버라에는 큰 기업이 없을까? 캔버라 지역의 기업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캔버라 외곽에 있는 한적한 주택가의 상공회의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캔버라는 외부에 내세울 만한 산업이 없는 도시다. 행정 도시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조업을 육성할 계획이 없었다. 이 도시의 산업은 서비스 산업이 대부분이다. 전국 규모의 기업이 있다면, 연방정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계 법인이나 IT 기업이다. 나머지 서비스 산업은 캔버라 지역 상권에서 활동하는 중소상인 업체들이다. 캔버라 상공회의소를 이끄는 사람은 앤드루 블리스Andrew Blyth 사무총장이다.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정부와 민간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인재다. 2013년 5월 상공회의소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기 전 2년 동안 정부 장학금으로 미국 오스틴에서 정부와 기업 간 관계를 연구했다.
캔버라를 방문했던 2013년 가을의 상공회의소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9월에 집권한 토니 애벗Tony Abbott 수상의 보수야당연합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예산 감축 계획으로 캔버라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기 때문이다. 보수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큰 정부’의 상징인 캔버라에 우호적이지 않다. 애벗 수상이 자신은 시드니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정도다.
지역 경제에 대한 우려에도 블리스 사무총장은 캔버라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피력했다. 그는 캔버라를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성공하는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민간 부분Private Sector과 중소기업이 그가 꿈꾸는 캔버라 미래의 키워드다.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상공회의소의 대표답게 기업 환경도 강조했다.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등 캔버라 정부가 더욱 ‘기업 친화적인Business Friendly’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고 말했다. 전원도시와 행정 도시로 개발한 캔버라는 다른 도시보다 개발과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가 다양하고 엄격하다고 한다.
독립적인 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유치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블리스 사무총장은 삼성전자를 유치한 오스틴의 예를 들며 캔버라도 다른 도시와 같이 세계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치 기업에 제공할 재정 지원을 늘려야만 다른 도시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지역 경제 발전 전략은 자체적인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블리스 사무총장도 캔버라가 자체적으로 ‘큰 기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 정부, 텍사스주립대학, 산업연구컨소시엄 등을 중심으로 첨단연구 산업을 육성한 오스틴을 지향해야 할 도시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캔버라는 미국 오스틴과 비슷한 도시다. 오스틴도 캔버라처럼 정부와 대학 중심으로 성장했다. 둘 다 계획도시인 탓에 외관마저 비슷하다.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는 중앙의 큰 호수도 공통점이고 둘 다 아열대성 기후를 가진 덕분에 나무와 풀 모양도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오스틴과 달리 캔버라는 기업가 정신이 활발하지 않다. 블리스 사무총장에 의하면, 캔버라 기업은 대부분 연방정부의 지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연방정부 정책 이외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캔버라 상공회의소도 그동안 독립적인 산업과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늘리기 위한 로비 활동이나, 외부 대기업을 캔버라로 유치하는 업무에 집중해 왔다고 한다.
오스틴과 캔버라가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캔버라가 마음먹기에 따라 오스틴과 같은 도시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캔버라에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호주 부동산협회는 각 도시에서 ‘도시를 살리자Make My City Work’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협회가 도시의 성공 요소로서 주택, 일자리, 기반 시설, 지속 가능성과 더불어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한 것이 참신하다. 부동산협회의 캔버라 홈페이지에는 캔버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한 시민의 의견이 올라왔다.
“호주의 수도로서 캔버라는 다른 도시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문화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공간감,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공공 기관 일자리가 만든 경제적 혜택을 즐긴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어떤 모습의 캔버라를 원하는가? 캔버라는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캔버라는 공공 기관이 뒷받침하는 경제를 계속하여 유지할 수 있는가? 현재 캔버라는 중대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설립하고 이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캔버라를 큰 아이디어Big Ideas의 도시로 만들 시간이 되었다.”
캔버라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카페, 식당, 와이너리, 제과점, 호텔 등을 운영하는 소상인들이 ‘포처스웨이Poachers Way’라는 조합을 만들어 캔버라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건강한 삶을 살자Live-Life-Well’라는 슬로건은 독특한 음식, 와인, 그리고 예술 경험을 만들어낸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조합원들의 철학을 잘 담아낸다. 포처스웨이 구성원의 대부분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그들의 직장, 거처 그리고 삶을 변화시켜 왔다. 구성원들은 대도시, 주식 시장, 다국적 기업에서 벗어나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캔버라와 주변 마을에서 찾는다.
캔버라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조용한 마을에 포처스웨이 운동을 시작한 포처스팬트리Porachers Pantry 식당이 있다. 여기서 만든 훈제 고기는 호주 전역의 고급 식당에 공급된다. 방문객은 가게에서 훈제 상품을 직접 살 수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카페에서 훈제 고기로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게는 큰 도로에서 4~5킬로미터 들어간 외진 곳에 있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는 영업 종료 시각인 오후 5시를 훌쩍 넘겨 아쉽게도 음식을 맛보진 못했다.
포처스웨이의 활동은 아름답고 중요한 운동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에서도 철학을 공유하는 소상인들이 모여 포처스웨이와 같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많이 만들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포처스웨이는 캔버라 주변에서 영업하는 가게와 상점을 모은 네트워크에 불과하다. 캔버라에 다른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포처스웨이보다는 더 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캔버라는 자연환경, 교육, 삶의 질 면에서 ‘큰 기업이 있는 작은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갖췄다. 아직은 뚜렷하고 차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지 못했지만 도시 지도자들이 라이프스타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상당히 고무적이다.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함으로써 시드니와 멜버른으로 떠나는 지역 인재를 붙들고, 이들을 위해 좋은 기업 환경과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이 도시의 숙제다.
우리나라 정부 기관들이 세종시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세종시의 미래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과연 세종시도 캔버라 같은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현재의 캔버라는 세종시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도시다. 캔버라 시민은 아름다운 환경, 호주 최고 수준의 초·중·고등학교, 호주가 자랑하는 국립대학 등 세종시 시민에겐 청사진으로만 존재하는 환경과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다. 세종시에 사는 내 친구들은 완전히 정착할 엄두는 못 내고 다른 지역의 직장에 가기 위해 매일 4시간을 통근버스에서 허비한다. 당연히 이들보다, 무료한 주말이면 시드니로 떠나는 캔버런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종시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도시로 캔버라가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큰 기업을 가진 작은 도시’의 성격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도자의 노력과 미래의 잠재력을 고려하더라도, 캔버라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연방정부 예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종속된 도시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캔버라를 떠나는 날, 남쪽 국회의사당에서 바라본 도심은 부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호수, 공원, 나무, 건축물들이 도로 및 광장과 함께 균형 있게 배열되어 있다. 문득 캔버라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와도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이 설계한 도시이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워싱턴은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을 연결하는 남북 축, 그리고 내셔널몰 광장과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동서 축으로 설계되었다. 동서 축 가운데 흐르는 포토맥 강 주변에 내셔널몰의 기념관들을 배치했다. 캔버라의 남북 축은 국회의사당에서 버논서클로 이어지는 도로다.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국립박물관 등 캔버라의 대표적인 기념 건축물들이 남북 축 중간에 건설한 벌리그리핀 호수의 양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바라본 호숫가 건물들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바라보는 내셔널몰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워싱턴과 캔버라는 외관만 닮은 것일까? 미국 의회는 1790년 워싱턴 지역을 수도 부지로 지정하고 1880년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를 새로운 수도에서 열었다. 그 후 210년 넘게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로 기능했다. 그렇다면 오랜 역사를 가진 워싱턴은 내가 기대하는 ‘큰 기업을 가진 작은 도시’인가?
미국 경제 잡지 '포춘'의 2012년 자료를 보면 미국의 500대 기업 중 20개 대기업의 본사가 북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를 포함한 워싱턴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3개의 기업은 워싱턴 D.C. 시내에서 본사를 운영한다. 대기업 숫자만 보면 워싱턴의 산업과 기업 기반은 어느 정도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메리어트호텔 등 한두 회사를 제외하곤 워싱턴 지역의 대기업들은 모두 연방정부와 거래하는 군수, 의료, IT 업체이거나 프레디맥, 패니메이, 펩코와 같은 공기업 혹은 공익사업 기업이다. 이 지역 대기업 중에서 연방정부와 독립된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중 상당수가 최근에 워싱턴 지역으로 본사를 옮겼다. 창업 문화의 부재도 워싱턴의 독립적인 산업 기반을 의심하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워싱턴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 특히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접목한 기업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느라 7년을 함께한 워싱턴은 붉은 벽돌의 타운 하우스, 원시림 같은 포토맥 강가의 숲, 마구간을 갖춘 교외의 저택 등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버지니아 풍경을 가진 도시다. 나는 워싱턴에 살면서 그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풍요로움, 또는 모범생 같은 중상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학자나 관료가 되고 싶어 했던 내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 도시였다. 그렇지만 워싱턴은 예술, 대중문화, 창업,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먼 도시다. 워싱턴에서 시작해 대중문화의 유행이 된 것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미국 문화에서 워싱턴의 위상은 미미하다. 조지타운, 조지워싱턴, 아메리칸 대학 등 좋은 대학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예술 분야의 유명한 프로그램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일 만한 문화 지역도 없다. 워싱턴에서 굳이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찾자면 모든 사람이 오락으로 여길 정도로 정치를 즐기는 모습 정도이다.
나는 세종시가 캔버라, 그리고 워싱턴을 능가하는 도시로 발전하길 기원한다. 세종시는 대전, 울산, 포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매력적인 도시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갖춘 몇 안 되는 도시다. 캔버라 같은 전원도시, 워싱턴 같은 정치를 즐기는 도시가 아니라,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로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꿈꾸는 인재를 끌어모으는 도시로 성장하길 바란다.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중심도시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종시는 다행히 교육, 여가 문화, 일과 직장의 균형 등에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예컨대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세종시를 맞벌이 부부가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들 수 있다. 만약 세종시가 새로운 문화로 ‘큰 기업을 가진 작은 도시’가 된다면 세계 계획도시 역사에서 뛰어난 과업을 달성한 최초의 도시가 될 것이다.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