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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03. 2018

협동조합의 천국에서 로컬 창업의 천국으로

원주는 정체성이 명확한 도시다. 다른 도시와 달리 원주의 특색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한살림이 대표하는 협동조합 문화, 6개 신도시에 둘러싸인 원도심, 1군 사령부가 주둔한 군사도시, 6개 대학이 위치한 대학도시, 의료기기 산업을 잉태한 강원 최초의 산업도시 등이다. 이중 원주 미래에 중요한 정체성은 협동조합과 신도시 문화다. 협동조합 문화의 기업가 정신을 살려 신도시 건설로 위축된 원도심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원주 미래에 중요한 과제다.



사회적 경제의 부상과 원주의 기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경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본질적으로 바꿨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경제 보수주의자도 더 이상 시장만이 불평등, 저성장,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산업,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 정책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협동조합 천국' 원주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영역이 사회적 경제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고용, 복지, 빈곤, 지역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기업이 소셜 벤처의 이름으로 창조인재를 유치하는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로 부상했다.


사회적 경제에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활용할 위치에 있는 대표적인 도시가 원주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주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은 현재 27개 협동조합이 참여하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다. 협동조합의 영향력은 원주 거리에서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도심 거리에는 신용, 소비, 생산, 의료서비스, 교육 분야의 다양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유기농 식품 협동조합인 ‘한살림’이 시작한 곳도 원주다. 농산물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입하기 위해 1985년 지역 협동조합 운동가들에 의해 새워진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이 한살림의 전신이다. 한살림은 이 협동조합이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시작됐다. 서울에 본부를 둔 한살림의 뿌리는 원주에 있는 셈이다.


창업 후 한살림은 2015년 6월 현재 회원 51만 명, 매장 196개, 매출 2,500억 원 규모의 유기농 식품점으로 성장했다. 초록마을, 올가홀푸드, 자연드림과 함께 국내 4대 유기농 식품점 중 하나인 한살림은 매장 수 기준으로 초록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기업이다.


원주 대안운동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됐다. 당시 원주 민주화 운동을 이끈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유기농 농업과 유통을 후원했다. 장일순 선생은 한살림을 창시할 정도로 원주 협동조합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 따르면 원주 대안운동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을 이끈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와 무교회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다. 무교회 기독교 신자들이 남한에 이주해 홍성 등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했고, 원주 대안운동도 그 서북 기독교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에 의해 시작된 남한의 대안운동은 물질주의와 산업사회 가치에 저항하는 생활운동으로 진화했다.



거듭된 신도시 건설로 공동화되는 원도심


원주의 숙제는 협동조합 생태계를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는 도시산업 생태계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소상공인 규모의 협동조합이 창조 커뮤니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도심 지역에서 일정 규모로 집적돼야 한다. 그러나 원주의 원도심 경제가 새로운 기업 생태계를 지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연이은 신도시 건설로 원도심이 지역이 공동화됐기 때문이다.


인구 35만의 원주에 들어선 신도시의 수는 무려 6개에 이른다. 7개 동으로 이루어진 원주 구도심은 1995년 이후 6번의 신도시 건설의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1차 충격 - 단구동, 1995년 착수
2차 충격 - 무실동, 시청 이전
3차 충격 - 단계동, 시외버스터미널 이전
4차 충격 - 반곡동, 혁신도시 지정
5차 충격 - 지정면, 기업도시 지정, KTX 만종역 유치

6차 충격 - 흥업면, KTX 남원주역 유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 신도시 건설을 당연히 정당화할 수 있지만 1995년과 2019년 사이 원주의 인구는 25만에서 35만 명으로 10만 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과연 원주에 이렇게 많은 신도시가 필요했을까? 1차 충격을 가한 단구동 개발은 주택이 부족한 당시 상황에서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문제는 2차, 3차 택지개발을 하면서 원도심에 위치한 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전한 것이다. 원도심 시설의 이전이 필요했다는 것은 자생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신도시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혁신도시 지정에 따른 4차 개발, 기업도시를 지원하기 위한 5차 개발은 외부 인구와 자원의 유입을 가정한 사업이었지만, 실제 유입된 투자와 이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성과로는 4차와 5차 신도시는 기존 지역의 인구와 자원만 흡수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KTX 역사 주변을 개발하는 6차 신도시도 택지 개발과 분양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분양이 안되면 오히려 지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신도시 개발이 원주 전체에는 이득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원도심에게는 충격으로 작용했다. 현재 원도심은 스타벅스 매장 하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부족하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원도심을 공동화시켜놓고 이제 와서 원도심 재생한다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도심 지역에 희망이 있다면  도시의 원도심에서 유행하는 골목상권이다. 원주 원도심에서 골목상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1970년대 단독주택 지역인 일산동이다. 문화시설, 복합문화공간, 앵커상업시설  골목상권 활성화에 중요한 시설에 과감하게 투자해 일산동을 원도심 경제의 구심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산동을 원주기독병원, 중앙시장, 원동성당, 강원감영, 원주역 등의 원도심 문화 자원과 연결한다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사업이다.

 


골목상권 기반의 로컬 창업 생태계 구축


원도심 재생과 더불어 원주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다. 현재 지역 자산으로 기능하는 협동조합 문화를 활성화하는 한편 원도심을 도시산업 생태계로 탈바꿈할 새로운 소상공인과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유치가 절실하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기업이라도 필요하면 주식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한살림 사례가 아쉬운 이유는 유기농 식품 유통이 잠재성이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기농 식품 슈퍼마켓 시장을 개척한 홀푸드마켓과 같은 기업이 등장했다면 우리나라의 유기농 식품 시장은 지금보다 몇 배 큰 시장으로 성장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 유기농 식품 판매 기업은 아직도 동네 가게 규모의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홀푸드마켓은 창업자 존 맥케이가 자연식품 시장의 잠재성을 내다보고 1980년 미국 오스틴에서 창업한 자연식품 전문 슈퍼마켓이다. 홀푸드마켓이 진출하기 전에는 미국에서도 소규모 협동조합이 자연식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홀푸드마켓은 등장 이후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 인수합병으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지금은 연 매출 23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일하고 싶은 기업이 됐다.


한살림과 홀푸드마켓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시작했다. 두 기업 다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에서 유기농 식품점으로 시작했다. 창업 시기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홀푸드마켓은 1980년, 한살림은 6년 후인 1986년에 창업했다. 한살림과 홀푸드마켓의 출발점은 같았지만 발전 궤적은 달랐다. 한살림은 식품점, 협동조합, 타 지역 개업을 선택했다면, 홀푸드마켓은 슈퍼마켓, 주식회사, 모지역 창업 등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이 한살림과 홀푸드마켓의 역사를 갈랐다.


한 번 상상해보자. 한살림 운동이 시작된 원주에 존 맥케이 같은 기업가가 있었다면, 원주는 지금 홀푸드마켓 같은 글로벌 기업을 향토 기업으로 자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맥케이는 창업 당시 의도적으로 협동조합을 피했다. 그가 창업하기 전 근무했던 협동조합의 경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주식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식품 전문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좋은 식품을 공급하는 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한 협동조합의 회원들은 회사 내부 정치에 더 관심이 많고 소비자 후생은 뒷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좋은 식품을 가장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 사회적 기업의 창업은 환영해야 할 일이다. 자유주의를 신봉한다면 개인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기업 형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협동조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특히 정부가 협동조합을 위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에서 혁신적인 기업을 배출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원주가 ‘협동조합의 천국’이 아니라 ‘로컬 창업가를 꿈꾸는 이들의 천국’이 되길 기대해본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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