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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l 13. 2020

원도심 경제학 101


저성장과 인구감소, 문화경제 시대의 도래는 주택 공급과 복지 중심으로 진행된 원도심-신도시 논쟁을 새롭게 조명한다. 신도시의 산업 유치가 부진하고 오히려 원도심 골목상권의 산업적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원도심에 창조도시와 압축도시를 건설하는 일이 국가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원도심 문제는 이제 원도심 주민의 복지를 넘어 국가 경쟁력 이슈가 됐다.


원도심을 경제 중심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원도심 경제를 움직이는 동학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 즉 원도심 경제학이 필요하다. 전국의 원도심이 동일하게 신도시 압박에 직면했지만 현재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다수의 도시가 원도심 활력을 상실했지만, 일부 도시는 이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원도심 경제학은 원도심 상황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필자는 원도심 활력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으로 전통문화와 반골정신의 보유 여부 , KTX 역사, 시청, 대학의 위치를 주목한다.



1. 전국 원도심의 현재 상황


필자에게 원도심 경제학의 영감을 준 곳은 청주다. 2019년 가을 방문 시 신도시-원도심 갈등이 한창이었다. 오송생명과학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의 도전에도 꿋꿋이 버티던 청주 원도심이 서청주 테크노폴리스 3차 확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요즘 산업단지는 과거와 달리 도시 안에 건설된다. 이미 중심 상권으로 자리 잡은 서청주 상권을 더 확장하는 사업에 대한 원도심의 위기의식은 당연한 것이다. 원도심 위축만이 문제가 아니다. 상인들은 SK 하이닉스의 LNG 발전소를 반대했다. 청주는 주변에 화학산업 공장이 많아 이미 미세먼지가 전국 1위라고 할 만큼 대기 상황이 좋지 않다.


그래도 다른 도시에 비해 청주 원도심 상황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도청, 향교, 성공회 성당, 중앙공원 등 많은 문화자원이 원도심에 집중돼 있다.


필자의 관찰과 현지 주민과의 대화를 근거로 전국 원도심 상황을 평가하면 아래와 같다. 보다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아래의 평가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소멸위기 - 인천, 원주, 천안, 김천, 군산, 목포, 여수, 충주, 포항, 속초

쇠락위기 - 부산, 대전, 울산, 청주, 안동, 진주, 전주, 수원, 통영, 순천, 구미, 공주

현상유지 - 대구, 춘천, 강릉, 제주, 광주, 경주, 서울


원도심 쇠퇴와 연동된 현상이 신도시 개발이다. 원도심 활력과 신도시 개발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원도심과 신도시는 상생할 수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신도시를 많이 개발한 도시의 원도심이 공동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신도시가 몇 개인지는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구 35만 명도시에 6개의 신도시가 들어선 원주의 원도심이 공동화를 피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7개 동으로 이루어진 원주 구도심은 1995년 이후 6번의 신도시 건설의 충격을 흡수해야 했다.


1차 충격 - 단구동, 1995년 착수

2차 충격 - 무실동, 시청 이전

3차 충격 - 단계동, 시외버스터미널 이전

4차 충격 - 반곡동, 혁신도시 지정

5차 충격 - 지정면, 기업도시 지정, KTX 만종역 유치

6차 충격 - 흥업면, KTX 남원주역 유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 신도시 건설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1995년부터 2019년 사이 원주의 인구는 25만에서 35만 명으로 10만 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1차 충격을 가한 단구동 개발은 당시 상황에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문제는 원도심에 위치한 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전한 2차, 3차 택지개발에서 시작됐다. 4차, 5차 개발은 외부 인구와 자원의 유입을 가정했지만 투자와 이주의 부진으로 성과가 미미한 수준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존 지역의 인구와 자원만 흡수했다고 봐야 한다. 6차 사업도 원칙적으로는 지역에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택지 개발과 분양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분양이 부진하면 오히려 시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원도심 관점에서는 모든 신도시 사업이 충격으로 작용한다. 신도시 건설로 원도심을 공동화시키고 지금에 와서 원도심을 재생한다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주가 예외적인 도시가 아니다. 다른 도시들도 원도심 재생과 신도시 개발을 동시에 추진한다.



2.  서울과 대구의 원도심 경쟁력


현재 전국 도시 중 원도심 상황이 가장 양호한 곳은 역설적으로 원도심 공동화가 처음 발생한 서울이다. 서울 원도심은 1990년대 공동화 위기를 극복하고 회생했으며 관리하기에 따라 신도시에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서울 원도심의 부흥을 이끈 건 골목상권이며 소멸위기의 지역 원도심도 골목상권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 사례가 다른 도시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는 어렵다. 서울 원도심은 계속 팽창해온 수도권 지역에 속한 것에 반해, 지역 원도심은 대부분 수축 지역에 위치해 있다. 서울 원도심은 또한 다른 원도심에서 찾을 수 없는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기업, 대사관은 한 번도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슈퍼리치(Super Rich,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는 항상 한남동, 이태원, 성북동, 평창동, 가회동에서 살고 있다. 동부이촌동, 연희동, 청운동, 효자동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고급 호텔은 원도심에 남았다.

대학도 원도심 지역을 지켰다.

언론, 은행, 정부기관, 대기업을 보유한 원도심이 비즈니스 중심지로 기능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항상 원도심 지역을 선호한다.

막대한 규모의 공공투자가 원도심 문화시설에 투입됐다.


서울이 보유한 원도심 자원 중 산업사회 엘리트가 간과한 자원이 외국인이다. 탈산업화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 외국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는 어디를 가든지 그 도시의 개성과 특색을 찾고 체험하길 원한다. 원도심을 미래 관광산업을 염두에 두고 재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주 외국인도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원도심을 선호한다. 외국인 은행과 대사관은 강남 개발에도 불구하고 한강을 넘은 적이 없다.


서울의 미래에도 원도심은 중요하다. 서울이 글로벌 도시로 더 발전하려면 원도심을 중심으로 국제금융중심지를 포함한 외국인과 외국인 투자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아쉽게도 경제자유구역, 금융중심지 정책은 이제 잊힌 2000년대 세계화 정책이 됐다. 외국인 투자 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기업을 외국인이 선호하지 않는 지역으로 유치한데 있다. 경제자유구역도 지역의 산업단지 중심으로 조성했고, 금융중심지도 신도시 여의도를 지정했다.


지금이라도 강북 원도심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고, 도시형 주택 공급, 영어 상용화 등 외국인 정주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서울은 동아시아 금융중심지로서 경쟁력을 가진다. 원도심의 매력과 더불어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인 민주주의와 개방성도 중요한 특징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나라고, 주변 다른 큰 나라에 비해서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개방적이다. 최근 586세대의 영향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졌지만, 586세대의 '거품'이 걷히면 한국인 본연의 개방성이 다시 발현될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서울만큼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외국문화에 개방된 도시를 찾기 어렵다. 그동안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해온 홍콩과 싱가포르의 미래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밝지 않다. 홍콩 위기는 돌이켜보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이번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홍콩의 권위주위화는 불가피하다. 홍콩의 민주주의와 베이징의 권위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홍콩 사태로 일부 글로벌 기업이 홍콩 대신 서울에서 임원 세미나를 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올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싱가포르도 장기적으로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싱가포르는 권위주의 체제로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모든 사회과학 이론의 예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싱가포르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커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민주화 압력이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싱가포르가 한국처럼 안정되게 민주주의로 이행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대구도 서울과 광주와 더불어 원도심 체제를 잘 유지한 도시다. 원도심을 잘 지킨 도시들과 그러지 못한 도시들의 차이는 상대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파악해야 한다. 원도심 중심 구조를 지킨 서울, 대구, 광주에서조차 정주인구, 소매 매출 등 원도심의 경제 지표는 하락세를 보인다.


그러나 원도심을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원도심을 상대적으로 잘 유지한 도시의 비결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동대구 지역이 부도심으로 부상하기 전까지는 대구 원도심의 지배력은 압도적이었다. 광역시는 물론 중소도시까지 포함해도 단핵도시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도시로는 대구가 거의 유일하다. 단핵구조가 좋은 이유는 이로 인해 대구 원도심이 청년문화의 중심지가 됐고, 이 청년문화는 수많은 외식, 패션 브랜드를 배출한 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인들은 대구가 단핵도시를 유지한 원인으로 지형과 보수적인 지역 문화를 지적한다. 강이 흐르지 않는 분지고 평지여서 도시가 원도심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사방으로 확장했다. 강이나 산을 넘어 새로운 타운을 건설할 필요 없이 기존 도심의 옆에 있는 농업지역을 새로운 주거지와 산업지역으로 활용한 것이다. 큰 변화를 원하지 않는 대구의 보수성도 원도심 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원도심 기업과 상인의 영향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는 대구은행, 대구백화점 등 원도심 기반의 지역 브랜드가 강한 도시다. 도시 기능 분산을 원하지 않는 원도심 기업이 원도심 중심의 도시계획을 지지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구 지하철 1, 2, 3호선은 모두 도심 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원도심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원도심 투자도 기여하고 있다. 대구 시는 근대문화거리, 김광석길, 오페라하우스, 삼성창조캠퍼스 등 창의적인 사업으로 원도심 경제를 지원했다. 동성로 상권이 삼덕동, 봉산동(봉리단길) 골목상권으로 확장된 것도 젊은이들을 계속 원도심으로 유인하는 요인이다.


대구가 단핵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을 고르자면 시청의 원도심 고수라고 볼 수 있다. 시청 이전을 계획하던 대구시는 2019년 말 신청사 위치를 발표했다. 아쉽게도 동대구역 개발, 원도심 시청 이전 등 대구의 가장 큰 장점인 단핵도시 구조를 위협하는 요인이 늘고 있다.


대구 지하철 노선도



3. 원도심 경제학


사회과학적으로 원도심 쇠락과 신도시 부상은 동일한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맞다. 지금부터 어떤 도시가 신도시 건설 압력을 슬기롭게, 즉 원도심과 상생하며 대처했는지를, 원도심 활력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원도심 상황에 영향을 미친 변수로는 전통문화, 반골정신, KTX 역사, 시청, 대학을 들 수 있다.


전통문화


1990년대 이후 모든 도시가 교외 신도시 건설의 압박을 받았는데 선택은 도시별로 차이가 많다. 대구, 광주, 춘천, 청주, 경주, 강릉 등은 원도심을 지켰고, 그 결과 지금도 원도심 상권과 경제가 살아있거나 비교적 살아있는 편이다. 반면 대전, 인천, 부산, 천안, 원주 등은 적극적은 신도시 성장 전략을 선택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책 한 권 분량의 주제지만 정체성의 차이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도시의 문화는 크게 전통, 근대, 산업 도시로 분류할 수 있다.[1] 전통도시는 조선시대 태종이 정립한 지방행정도시다.[2] 근대도시는 개항과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형성된 신도시이며 산업도시는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단지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다.


전통도시 - 서울, 광주(경기도), 수원(화성), 경주, 전주, 안동, 창원, 강릉(명주), 양주(경기도), 광주(전남), 파주, 충주, 공주, 청주, 홍주(홍성), 원주, 나주, 제주, 상주, 진주, 성주, 순천(승주)

근대도시 - 부산, 인천, 목포, 군산, 마산, 대전, 춘천

산업도시 - 울산, 포항, 거제, 구미, 여수, 천안, 서산, 아산, 당진, 광양


전통도시, 근대도시, 산업도시 중 어떤 도시가 탈산업화와 고령화 압력에 먼저 '무너질'지 생각해보면 도시 역사의 역순으로, 즉 역사가 짧을수록 도시 생존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고 싶은 도시 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순위가 올라간 도시는 제주, 경주, 강릉, 전주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도시들이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신도시 '피해'도 산업도시, 근대도시, 전통도시 순으로 크다.


경제, 정치, 문화, 정책, 인물, 자연재해 등 도시의 흥망을 결정하는 변수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도시 정체성만큼 장기적으로 중요한 변수는 없다. 정체성이 뚜렷한 도시는 '중심을 지키고 오래간다'. 한국에서 정체성이 강한 도시는 전통도시다. 정체성이 강한 전통도시가 한국의 탈산업화를 주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골정신


전통문화 더불어 도시 정체성에 중요한 문화유산이 반골기질이다. 조선시대에 야당도시였던 개성과 안동이 반골기질이 강하다. 현대에 들어서 겪은 건국과 민주화 과정은 광주, 대구, 제주, 원주 등을 반골도시로 만들었다. 반골기질은 독특한 지역문화와 지역산업을 동반했다. 개성의 개성상인, 안동의 유교산업, 원주의 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골정신이 강한 도시가 원도심 정체성도 강하다. 광주와 대구가 원도심 중심 체제를 유지한 것도 반골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젊은 세대는 모두 ‘나다움’을 추구한다. 도시도 예외이지 않다. 반골도시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나다움’을 통해 공동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른 도시와 차별화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반골기질의 중요성은 해외 사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도시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Bilbao)다. 쇠락한 항만지역에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해 원도심을 재생시킨 사례로 소개된다. 구겐하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빌바오 시는 미술관을 건설하면서 미술관과 원도심을 대중교통(트램)과 보행로로 연결하는 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미술관 하나만 재생한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통해 원도심 전체를 재생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빌바오 사례를 더 들여다보면 구겐하임미술관 성공의 원동력은 지역의 공동체 문화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시민들도 나중에는 구겐하임을 지원했다. 이들의 공동체 문화는 도시가 갖고 있는 독립정신에서 비롯되는데 빌바오가 속한 바스크 지역은 다른 스페인 지역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독립정신이 강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스페인에서 독립을 원하는 지역으로 오랫동안 분리파 테러로 고생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반골기질과 지역산업의 관계다.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에서 가장 산업이 발전하고 소득도 높은 지역 중의 하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역 퀴진(Cuisine)도 갖고 있다. 반골정신은 또한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으로도 승화된다. 협동조합의 모델로 항상 인용하는 몬드라곤도 바스크 기업이다. 2주 전 한 세미나에서 몬드라곤의 기업 이념이 소개됐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MCC)는 바스크의 전통적 문화에 뿌리를 두고,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설립된 사회적 경제 기업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일본 아이치,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텍사스, 미국 오레곤 등 자생적인 지역 산업을 지향하는 다른 지역도 모두 독립정신과 반골기질이 강한 지역이다.


KTX 역사


원도심 정체성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변수지만, 중단기 요인으로 주목해야 하는 변수는 KTX 역사, 시청, 대학의 위치다. 정체성 수준을 떠나 여러 가지 물리적, 경제적 이유에서 시청, 역사, 대학 캠퍼스를 이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 용어를 따르면 시청과 기차 역사 위치를 독립변수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검증 대상 가설은 시청/역사 위치와 원도심 활력의 관계다. 자의든지 타의든지 시청과 KTX 역사를 원도심에 남겨둔 도시가 원도심 활력을 유지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KTX가 통과하는 주요 도시는 총 25개다. 코레일이 주요 KTX역으로 분류한 역을 보유한 도시들은 아래와 같다.


강릉, 경산, 광명, 광주, 김천, 구미, 대구, 대전, 목포, 밀양, 부산, 서울, 수원, 순천, 경주, 여수, 울산, 익산, 전주, 창원, 천안, 청주, 평택, 평창, 포항 (가나다순)


이 중 총 11개의 도시가 원도심 구역사를 KTX 역사로 사용하고 있다.


강릉, 경산, 대전, 목포, 부산, 서울, 수원, 순천, 익산, 전주, 평택 (가나다순)


아직 KTX 역사와 원도심 경제 활력의 관계를 찾기는 어렵지만 원도심에 역사가 위치한 도시의 대부분이 원도심 활력을 유지한다. 원도심 역사를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기에 처한 원도심은 목포, 익산, 평택 정도다.


원도심 KTX역의 영향은 이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에 달렸다. 서울은 서울로7017 사업으로 서울역 지역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KTX 역사 보유가 원도심 재생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KTX 역사를 보유한 11개 원도심이 도시재생의 유리한 위치에 있다.


시청


시청 효과는 더 명확하다. 전국 원도심 상황을 자극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상, 중, 하 3 그룹으로 나누고 시청이 원도심, 혹은 신도심에 남아있는 지를 구분하면 아래 표와 같다.


원도심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급 도시 7개 중 5개가 원도심에, 2개가 신도심에 시청이 있다. 중간 등급 14개 도시 중 9개가 원도심 시청을, 6개가 신도심 시청을 갖고 있다. 원도심 상황이 좋지 않은 도시 9개 도시 중 8개 도시의 시청이 신도심에 위치한다.


시청을 신도심으로 이전했지만 원도심 상황이 양호한 경주와 광주는 신도심이 구도심과 연결돼 신도심 '피해'가 적었다고 추정된다. 시청이 원도심에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원도심 상황이 좋지 않은 상주는 주요 문화시설을 도심에서 15킬로 떨어진 낙동강 수변 지역에 배치한 것이 원도심 역량을 분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학


청년층이 집적된 대학의 위치도 원도심 경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대학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대학은 지역 국립대 등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 대학이다. 중심 대학이 원도심에 위치한 도시가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원도심 상황이 양호할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원도심 상황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구, 춘천, 강릉, 제주, 서울, 경주, 광주 모두 중심 대학이 원도심 또는 원도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이들 중 중심 대학을 신도시로 옮긴 사례는 찾기 어렵다. 서울이 서울대학교를 1970년대 종로구에서 관학구로 이전한 것이 유일한 사례다.


반대로 원도심 상황이 심각한 인천, 천안, 원주, 김천, 여수, 충주, 포항, 상주는 중심 대학이 원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거나 중심 대학을 신도시로 이전했다. 중심 대학을 신도시로 이전하거나 신도시에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가 인천과 포항이다.


  


4. 원도심 반격의 시작


과연 원도심의 인기가 상업지에서 주거지로 확산될까? 2019년 7월 말 중앙일보가 조사한 생활만족도 통계를 보자. 7월 말 중앙일보가 조사한 생활만족도 통계에 따라 전국 229개 시군구 중 한국인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상위 20개다.


지역발전에 희망적인 뉴스는 제주 제주시, 제주 서귀포시, 부산 해운대구, 세종시 등 Big 4 비수도권 도시가 최상위권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강남 3구 중 강남구가 1위, 하지만 송파구와 서초구는 비수도권 Big 4에 밀려 6위와 7위에 그쳤다. 비수도권 도시 중 대전 유성구, 대전 서구, 강원 강릉시, 대구 수성구도 Top 20에 진입했다.


신도시와 원도심을 비교하자면 Top 20위 도시 중 원도심으로 간주할 수 있는 도시는 서울 마포구, 서울 용산구, 서울 종로구다. 원도심이 아닌 나머지 17개 도시 중 서귀포시, 제주시, 강릉시를 제외한 14개 도시는 100% 신도시에 가깝다. 즉, 원도심 3개, 신도시 14개, 복합지역 3개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도시 선호도가 강하다. 1970년대 이후 신도시 투자가 도시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를 이렇게 바꾼 것이다.


하지만 원도심 3곳이 Top 20에 진입한 것은 괄목할 만하다. 특히, 종로가 들어간 것이 의외다. 상권을 중심으로 원도심의 반격이 시작됐다. 서울 마포구, 용산구, 종로구가 보여주듯이 상권 활성화는 주거지 활성화로 이어진다.


원도심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원도심 상가 상황이 신도시보다 양호하다. 신도시의 경우, 전국적으로 호황인 상권은 자급자족 도시 형태를 갖춘 분당이 유일한 것 같다. '신도시 상가 공실'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가 나온다. 특히, 위례 신도시, 세종시 공실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감정원의 2019년 2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 자료에 의하면 원도심 공실률과 신도심 공실률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원도심 중심 체제를 유지한 서울, 대구, 광주에서는 원도심 공실률이 신도심 지역보다 낮다. 신도심 '피해'가 큰 대전과 울산은 반대다.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세종시 상황은 심각하다. 수도권 2기 신도시 상황은 감정원 자료에서 따로 분리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신도심 상권이 원도심 상권보다 활발하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신도시 상권의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 강북 골목상권 고객의 다수는 여행자다. 그러나 신도시 상가는 구조적으로 여행자를 유인할 수 없다. 임대료가 비싼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으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공간의 규모와 획일성이다.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는 골목 장인은 신도시 상가의 획일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가 없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대표적인 사례다. 셰프 한 명이 서브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5명이다. 오너 셰프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개성 있고 작은 공간은 골목상권에서나 찾을 수 있다.


결국 신도시 상가는 독립가게와 독립식당의 개성과 품질, 가게와 거리의 공간적 매력, 그리고 볼거리의 밀도와 우연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그래서 여행자를 유치하지 못한다. 네오밸류 광교 등이 신도시 상가에서도 골목길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고 골목상권 개발에 나섰다. 네오밸류의 도전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신도시가 계속 공급되고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신도시 상가의 불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5. 정부의 역할


현재 원도심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문화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중요성이다. 전통문화 자원이 풍부한 조선시대 도시가 아니라도 근대, 현대 도시문화 자원을 활용해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원도심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이다. 반드시 부존자원이 아니어도 된다. 영주의 공공건축, 대전의 성심당, 강릉의 테라로사가 보여주듯이 정부나 기업이 그 도시를 상징하는 도시문화를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다.


두 번째 교훈은 압축도시다. 원도심에 KTX 역사, 시청 등 도시 자원이 집중된 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활력을 유지한다. 신도시 건설을 억제하고 원도심에 도시 역량을 집중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교통, 주택, 복지, 교육, 산업 정책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골목길 자본론>에 소개된 도야마 사례가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 교훈은 원도심 상권이다. 원도심 경제의 비교 우위인 상권과 관광산업을 원도심 경제의 기본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원도심 상권 재생의 전문성을 가진 부처는 의외로 관광산업과 문화산업을 관장하는 문체부다. 관광산업 업종뿐만이 아니라 공예공방, 독립서점, 갤러리, 공연장, 스포츠시설 등 콘텐츠가 주도하는 2세대 골목상권의 중심 업종도 문체부 소관이다.

 

그러나 도시재생과 골목상권 논의에서 문체부의 목소리는 미미하다. 국토부가 도시재생 사업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문체부도 책임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골목상권의 골목산업이 문화산업으로 전환하는데, 문체부는 고급문화만 문화산업으로 인식할 수 있다. 향후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국토부와 문체부가 공동으로 주요 원도심 상권을 '도시형 관광단지'로 지정해 원도심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관광과 문화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네 번째 교훈은 원도심 인구다. 서울, 대구, 청주, 순천 등 원도심이 강한 도시가 보여주듯이, 원도심 활력은 복합 용도와 인구 밀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도심의 상주인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원도심 상권과 문화의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다. 원도심 인구를 늘리는 하나의 방법은 도심 주거 지역의 용적률을 5-6층 높이의 상가주택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여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황두진, 무지개떡 건축). 문화재와 전원도시를 중시하는 저밀도 정책으로는 원도심을 재생하는데 한계가 있다.


원도심 문제는 결국 도시의 문제다. 원도심을 하나의 독립된 도시로 인식해 그에 필요한 주거, 상업, 편의 시설을 공급해야 한다. 상업지역, 주거지역 또는 문화지역 등 하나의 용도로 제한된 원도심은 도시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다. 주거, 상업, 편의 시설 중 우선적으로 활성화해야 분야가 있다면 상업시설이다. 현재 많은 원도심이 골목상권의 힘으로 활력을 유지하고 있고, 서울 마포구, 성동구 등 그중 일부는 상권의 활성화으로 기업, 주택, 교육시설의 유치에 성공했다. 원도심 골목상권의 활성화가 가장 현실적인 도시재생 모델로 부상한 것이다.

          




[1] IT산업과 반도체 호황으로 새로운 IT도시로 성장한 평택, 이천, 성남(판교)은 분석에서 제외.


[2]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관은 대체로 1403년(태종 3)부터 세조 때까지 정비되었다. 이때 유수부(留守府)를 둔 읍은 개성 하나뿐이었고(뒤에 광주·화성 추가), 부윤(府尹)을 둔 읍은 경주·전주·평양(뒤에 함흥·의주 추가)의 셋, 대도호부를 둔 읍은 안동·창원·강릉·영변·영흥의 다섯이었으며, 목(牧)을 둔 읍은 양주·광주(廣州)·연주·파주·충주·공주·청주·홍주·원주·황주·해주·나주·광주(光州)·제주·상주·진주·성주·안주·정주·의주 등 20곳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차 수정 2020년 11월 8일

* 커버 포토 크레디트 한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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