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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30. 2020

일류대학 공급에 대한 신화와 규제

*2008년 발표한 보고서의 요약입니다.


한국의 대학 진학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보자. 첫째, 일류대학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격은 대학 입학 후 지불하는 등록금이 아니다. 자녀를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부모가 지불하는 비용이 진정한 일류대학 진학 비용이다. 그 일류대학 진학 비용이 적어도 일인당 수억 원에 달할 것이다. 자식 한 명의 해외연수 연수 비용으로 연 5,000만 원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한국 학생의 해외 대학 진학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해외대학에 진학하는 한국 학생은 크게 주재원 및 외교관 등의 해외 장기체류자 자녀, 조기유학생, 그리고 국내고 유학반 재학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최근 이들 세 그룹의 해외대학 진학이 증가하고 있다.


셋째, 한국 진출에 대한 해외대학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의 유학 시장이 큰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 정부가 해외대학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이해해야 하는가? 시장논리를 대학 진학 시장에 적용하면 현재 대학 진학 시장의 상황은 한마디로 일류대학 품귀현상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일류대학의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국내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과다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고 동시에 새로운 일류대학 공급처를 찾아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일류대학 공급에 대한 신화


한국에서 일류대학의 공급이 부족한 것은 확실한데 한국 전문가들은 무슨 이유인지 대학 진학 비용을 분석할 때 일류대학에 대한 ‘과잉’ 수요만을 지적하고 공급 상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이 일류대학의 공급과 역할에 대한 세 가지 신화에 있다고 본다. 첫째가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과열 경쟁이 일류대학의 숫자와 정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실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극성과 욕심 때문이라는 인식이고, 두 번째는 세계의 다른 명문대학들도 우리나라 일류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업능력 중심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는 편견이며, 세 번째가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만이 세계적인 수준의 학부교육을 할 수 있는 일류대학이라는 오해다.


일류대학 공급과 기능에 대한 이 같은 신화는 대학 정원과 입학제도에 대한 과도한 정부 규제와 일류대학 위주의 대학 지원정책을 초래함으로써 대학의 서열을 고착시키고 일류대학의 추가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일류대학 공급의 실제 추이를 보면 공급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여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교육열과 경제구조의 지식 경제화 등의 요인이 더해져 일류대학에 대한 수요는 1970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나, 일류대학의 숫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3개 대학에서 정체되어 늘어나지 않고 이들 3개 대학의 정원은 1981년의 최고 15,913명에서 2008년에 10,688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일류대학 수요자는 늘어나고 일류대학 정원은 감소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4년제 대학 진학자의 일류대학 진학률은 1973년의 16.2%에서 2006년에는 3.4%로 급격히 하락했다. 4년제 대학 진학자의 3.4%, 고등학교 졸업자의 2.0%만이 SKY 대학에 진학하는 구조는 70-80년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이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경쟁구조다.


일류대학 정원은 제한적이지만, 대학 진학 희망자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실업계를 포함한 총 고등학교 졸업자 수는 1970년의 145,062명에서 2006년에는 568,055명으로 늘어났다. 이중 4년제 대학 진학자 (교육대학 포함)는 1970년에는 31,928명에 불과했으나 2006년에는 그 수가 329,976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SKY가 아닌 다른 대학들이 일류대학으로 진입했으면, 일류대학 공급 문제가 완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시장은 1950년대 형성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SKY)의 과점구조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KY 대학의 우월적 위치는 대학의 평판도 순위에서 확연히 나타나는데 2008년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KAIST, POSTECH, 성균관대의 평판도 순위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이어 각각 4, 5, 6위이지만 평판도 총점은 각각 58, 54, 51(100점 만점)점으로서 90점 이상을 얻은 SKY 대학에 크게 못 미친다.  


과학영재 대학, 의과대 등 특수대학이 일류대학으로 인정받지만, 특수대학 전제 정원이 입시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크지 않다. KAIST, POSTECH의 2008학년도 학부 정원은 각각 850, 306명, 전국 의과대학의 정원은 2,172명에 불과하다.



일류대학 공급 확대 방안


이러한 일류대학 공급 부족 상황에서는 그 공급을 늘리는 것이 일류대학 진학 비용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일류대학을 늘리는 것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다. 반대자들은 모든 소비자들이 일류대학 진학을 희망하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려면 결국 모든 대학을 일류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류대학의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수월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류대학의 공급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한 일류대학 품귀현상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일류대학은 정의상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품귀현상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니고 현재 자신들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일류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소비자의 선호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높은 일류대학 진학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일류대학의 공급 확대보다는 개성화 및 특성화 교육 강화를 통해 학생들을 일류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진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한다.


진실은 아마도 공급 확대 주장과 수요 억제 주장의 중간에 있을 것이다.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해 공급을 확대하고 이와 함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류대학 품귀현상도 공급 확대와 수요 억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수요 억제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이 글에서 공급 확대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일류대학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면 얼마나 늘려야 하고 어떻게 늘려야 하는가? 우리나라에 몇 개의 일류대학이 필요한지를 객관적으로 산출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관적이지만 상식적인 가정을 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상위 10%는 기본적으로 아주 우수한 학생이며 최소한 이들은 일류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이 그 가정이다.


현재 국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연 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의 10%, 즉 5만 명을 일류대학교에 보내려면 우리나라가 필요한 일류대학의 수는 2,000명 정원 기준으로 25개 대학이 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어느 대학이 일류대학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일류대학의 수가 적정 수준인 25개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여기서 논의하는 일류대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적인 대학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세계적인 대학은 기본적으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 중심 대학이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대학평가 기관은 대학의 연구 능력을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교육을 잘하는 대학이 반드시 연구를 잘하는 대학일 필요는 없다. 미국의 경우, 최고의 명성을 가진 Williams, Amherst 등의 대학들은 대학원이 없는 학부 중심대학 (liberal arts college)들이며 이들 학부 중심대학은 적어도 학부교육 분야에서는 Harvard, Stanford, Yale 대학 등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현재 필요한 일류대학은 학부교육을 잘하는 25개의 대학이지 연구를 잘하는 25개의 대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25개의 학부교육 일류대학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우선 기존 대학들이 대학원 중심대학에서 학부 중심대학으로 전환하는 것을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대학 지원의 상당 부분을 연구사업보다는 학부교육지원에 투입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와 동시에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정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대학 서열화의 가장 큰 원인은 대학입시시험의 국가관리이다. 예비고사라는 획일적인 국가고시가 도입되기 전인 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서열화 문제는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 대학이 자체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대학과 학생의 수준을 획일적인 잣대로 비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수능을 전면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게 수능시험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자율권을 주자는 것이다. 일본과 같이 국립대학만이 국가수학능력시험을 이용하고 사립대학은 국가시험을 반영하지 않고 자체 본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 서열화의 약화를 위해서는 학부교육의 기본 성격을 재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부교육은 기본적으로 기초교육이며 인성교육이다. 수월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공계 분야에서는 학업능력만으로 입학을 결정하는, 소위 영재교육 트랙을 허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가 모두 연구인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는 학업능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일류대학들이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만을 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바드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일류대학처럼 하바드대학도 미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하바드 대학 입학생의 30-40 퍼센트는 운동선수와 졸업생 자녀로 채워진다. 이들 학생들도 일정 수준의 학업능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한국의 일류대학이 선호하는 학업능력 상위 1퍼센트 학생들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60-70 퍼센트 학생들도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지역할당제를 상당 수준 반영해서 선발하는 학생들이다. 하버드대학이 단지 학업능력만 고려한다면 입학생 전부를 동부의 명문 사립고 출신들로만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하바드대학은 하바드대학 학부를 이야기한다. 물론 하바드대학 대학원은 전적으로 학업능력 기준으로 대학원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하바드대학이 학업능력만으로 학부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우수학생의 기준을 학업능력으로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부금에 의존해야 하는 사립대학의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바드대학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부 계층의 지도자가 아니고 나라 전체의 지도자가 되는 훈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사회의 구성이 중요하다.


또한 미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두 한국에서 말하는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큰 주립대학에 가면 하바드대학에 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평균적으로 보면 하바드대학 학생들이 주립대학 학생들보다 뛰어난 학생들이지만, 주립대학에도 하바드대학 학생들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출신 대학이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획일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대학교육의 선진국인 미국의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면 앞으로 한국도 상위 10% 학생들이 25개 정도의 일류대학을 중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대학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대학 순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 대학들도 평균성적으로 1등과 25등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등 대학의 모든 학생들이 25등 대학의 모든 학생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평균적으로는 1등 대학 학생들이 우수하지만 25등 대학의 일부 학생들은 1등 대학의 평균 학생보다 우수한, 즉 대학 간 학생 수준이 겹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학생 선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국립대학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국립대학의 본연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적어도 학부교육에 있어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만을 교육하는 것이 국립대학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대의 경우, 전체 입학생을 지역할당제로 선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사립대학에게는 학생 선발에 대한 자율권을 완벽하게 보장해야 한다. 일부에선 사립대학의 기여입학 허용을 우려하지만 사립대학들이 학교 평판을 포기하면서까지 기여입학을 확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기여입학제도는 대학 서열화를 약화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기여입학을 허용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이 명문 사립대에 진학하는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른 일류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 결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분포가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있다.


기존 대학만으로 일류대학을 25개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기존 대학의 서열화가 이미 상당 수준 고착화되어 있어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류대학의 진입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해외 명문대학을 국내에 유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설 대학의 진입을 유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학의 진입이 가능한 이유는 진입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진입하는 대학은 학부 중심 대학일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대학 설립과 운영 비용이 높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부 중심 대학인 Williams대학의 일 년 예산이 1,700억 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 규모가 15조 원인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면 적어도 10-15개 정도의 새로운 일류 학부 중심 대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25개 일류대학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를 추진하지 못한 이유는 대학교육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 때문이다. 다른 복잡한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문제 해결의 핵심은 학부 중심 대학과 대학원 중심 대학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도 세계적인 수준의 학부 중심대학을 25개 만들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대학개혁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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