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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20. 2017

이 땅에 희망이 없다 느끼는 한국인이 가야 할 곳

안동 하회마을 선비길

한국 생활이 힘들어 조국을 떠나려는 제자들이 많다. 기회를 찾아 떠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한국은 희망이 없다 느끼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떠나기 전에 안동 선비길에 한번 가보라고. 


한국인 정체성을 찾는 사람에게 안동은 고마운 도시다. 도시 곳곳에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의 정체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안동은 필자에게 가장 한국다운 도시다.


안동이 대표하는 한국인 정체성은 유교다. 서원, 서당, 사당, 종가 등유교 건축물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 경관을 자아낸다. 


유교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다를 수 있으나 한국이 유교 강국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안동의 유교 전통은 특히 고무적이다. 이곳에 배어 있는 유학자의 위풍과 기상은 우리나라가 만만한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안동 병산서원의 입교당 마루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그 넘어 보이는 병산 전경



병산서원에서 출발하는 선비길 4km


전통문화 자원이 풍부한 안동에서 한국 정체성을 대표할 장소는 수없이 많다.


가장 강렬하고 매력적인 한 곳을 꼽자면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잇는 선비길이다.


병산서원은 풍광으로 여행자를 압도한다. 주변 자연과 서원이 조화를 이룬 오묘한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은 서원 입구를 지붕처럼 덮은 만대루다. 학교 강당으로 사용됐던 만대루에 앉아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과 그 옆을 흐르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던 조선 유학자의 이상을 공감하게 된다.


서원은 "서당-서원-향교-성균관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국가 교육 시스템에서 공립학교인 향교와 함께 지역 인재를 양성한 400년 전통의 사립학교”로 굵고 짧게 한국 교육의 역사를 웅변한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선비길



낙동강을 품은 자연 속의 조용한 둘레길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본래 서애 선생은 1572년 (선조 5)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풍산읍에 설립한 풍악 서당을 옮겨진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가 일품인 병산서원은 서애 선생을 흠모하는 수많은 유생들이 오고 갔다.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선비길 4 km는 둘레길에 가깝다. 산책길이라고 하기엔 일부 구간의 경사가 가파르고, 등산길이라고 하기엔 평탄한 구간이 길다. 다리와 계단으로 연결된 몇 개의 오솔길과 등산로 주변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다. 하회마을로 넘어가는 언덕 위 정자가 유일하다.


하회마을의 봄과 가을


한국 역사문화의 위상을 간직한 하회마을

 

선비길이 끝나는 하회마을에 도착하면 안동 사대부 가문의 격조가 느껴진다. 고려 때 관직을 맡아 가문을 일으킨 류백의 세손 류종혜가 하회촌에 정착했고, 대대손손 공직에 진출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했다. 수많은 여행객을 유치하는 관광 지면서도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정부가 마을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해 마을이 붐비지 않는다. 관광객을 위한 상업 단지는 2km 떨어진 입구에 조성돼 있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엄격한 유교적 규범과 의식,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한국 전통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왜 전통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할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한국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서애 유성룡 생가 충효당


조선인에게도 꿈과 이상이 있었다


유교적 사회질서를 바탕으로 개인보다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애국적 이상향을 만들고자 한다.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전통 유교적 가치는 이상주의와 애국심이다. 유교적 이상이 실현된 대동사회는 사유 재산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소외 계층을 돌아보며 범죄가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의미한다. 유능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이 법치를 세우고 훌륭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고 질서 있는 조화가 이루어진다.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에서 누구나 능력을 발휘하고 공평한 재화 분배가 이루어지며,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공동의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다. 


하회마을의 랜드마크는 서애 류성룡의 생가 충효당이다. 낙향 후 그가 임진왜란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한 국가 안보 지침서 ‘징비록’을 작성한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 그 어느 곳 보다 충효당에서 한국인의 꿈과 이상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국가 교육은 홀대받지만 올바른 공동체 발전을 위해 정체성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우리 조상이 원하는 세상이 있었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는 것이야 말로 한국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양이다. 




유학자의 일상, 철학 그리고 정체성


이상주의와 애국심뿐만 아니다. 하회마을에서 유교 법도대로 살아가는 유학자와 선비의 생활 철학은 현대인에게 참신한 교훈을 준다. 하루 24시간 공부하고 수양하던 옛 선비를 떠올리면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후세 교육, 평생 학습, 자기 수양, 도덕성, 청렴 등 오늘날 지도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사실 우리의 전통적 가치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가치에 대한 질문과 논의에 인색해졌다.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던 세대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의미와 방향이 없는 이가 젊은 세대에게 ‘너의 길을 가라’고 조언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체성 부재로 인한 한국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 위기는 정체성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다. 1960년대 이후 ‘부국강병’이 한국 경제의 유일한 슬로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 기업을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동안 한국 대기업들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한국 경제의 정체성에 대혼란을 가져왔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미국을 모델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재건은 새로운 정체성 확립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과 진단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오직 정체성이 뚜렷한 사회에서 열정과 소명의식, 자립심 등의 윤리와 가치 덕목이 발현될 수 있다.



전통 없는 정체성은 없다


한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에는 전통도 포함된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제기한 아시아적 가치를 통해 교육, 근면, 질서, 책임, 가족, 복지 등 유교 가치가 한국과 동아시아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교 문화는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정체성의 중요한 축이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 지적한 대로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중국의 부상은 한국 유교 정체성 확립을 더욱 시급한 과제로 만들고 있다.


유교 전통과 선비정신을 가장 먼저 수용해야 할 집단은 기업이다.


2015년 아산서원이 발간한 <한국문화 대탐사>에서 인용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통적인 선비정신 가운데 한국인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가치는 ‘수기와 청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으로 설명하면 현재 사회 지도층을 ‘지나치게 이기적인 물질 추구 계층’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과도한 물질주의와 이기심이 초래한 가치의 위기다.


도전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비판받는 3~4대 대기업 경영인들은 유교에서 새로운 기업가상을 찾아야 한다.


1세대 창업자가 가족주의, 사내 화합, 국민 경제 건설 등 가족주의적 유교 가치를 실현했다면, 3~4대 경영인은 학습, 수양, 청렴, 공동체 정신 등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간과한 유교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전통 한옥 리조트 '구름에'


탈물질주의 시대의 원천 경쟁력, 정체성과 전통


문화적 관점에서 한국 정체성은 다양성이 중시되는 문화 경제 시대의 주요 자산이다. 한국 정체성과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한류다. 미래 융합 경제에서 한류의 가치는 무한하다. 한류를 기술과 산업에 접목하는 등 다양한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전통문화의 재발견과 융합은 교육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국 문화의 DNA를 찾고 응용하고 싶은 사람은 선비문화의 중심지인 안동을 자주 찾아 현장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아직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안동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여러 면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안동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거기에서 뻗어 나갈 수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병산서원, 하회마을, 선비길에서 우리는 한국인이 누구인지, 이 정체성이 어떤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하는지를 고민하고 체험해야 한다.




한국 정체성 발현을 위한 안동의 역할 


최고의 유교 자원을 보유한 안동은 한국문화의 산업화를 선도해야 한다. 최근 안동시는 ‘구름에’ 고택 리조트를 지원하는 등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노력하고 있다. 안동은 유교 가치를 관광산업 자원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야 한다. 전 세계가 공감할 만한 고유의 철학을 가진 기업이 절실한 지금, 


유교를 기반으로 한 ‘한국적’ 기업을 육성하는 일에 안동이 나서야 한다.



지역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유교 철학을 바탕으로 한 기업을 연구하고 교육하여 이를 전파하는 데 힘써야 한다. 안동대학교, 한국국학진흥원 등 안동의 교육기관은 유교적 경영 철학과 인재 육성 교육을 특화해 ‘한국적’ 기업가 양성소 역할을 해야 한다.


작금의 경제 위기는 가치관과 정체성의 위기다.


한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희망적인 해법이다. 한국인이 공감하는 가치와 윤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업가상과 경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 사회 전체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한국식 자본주의 모델의 이념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안동 자본주의’ 모델 정립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미래에 기여함으로써, 한국 사대부의 자존심과 위엄을 지키는 것이 안동의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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