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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l 17. 2017

성수동, 이단아 이재웅의 또 하나의 실험

서울의 많은 골목상권 중에서 문화 정체성이 뚜렷한 지역은 드물다. 굳이 꼽으라면, 독립문화의 홍대, 외국인 문화의 이태원 정도다. 


다른 지역도 나름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고는 하지만, 딴 곳에 없는 그곳만의 문화가 무엇인지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다들 카페,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브런치, 파스타, 디저트 전문점, 독립서점, 칵테일바 등으로 구성된 ‘표준 골목길 세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과 차별성이 아쉬운 서울에서 2010년대 초반 새로운 성격의 골목상권이 부상했다.


100여 개의 소셜벤처들이 모여 있어 소셜벤처밸리라 불리는 성수동이다.


그림-파이낸셜뉴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체인지 메이커와 소셜벤처들의 성수동 정착 시기는 대략 2014년이다. 그 해 사회혁신가를 지원하는 루트임팩트가 성수동에 자리 잡았고, 소셜벤처 투자 기업 소풍이 바로 합류했다.


왜 성수동일까.


혹자는 입지조건을 꼽을 것이다. 실제로 소셜벤처들이 새로운 장소를 찾던 2010년대 초반의 성수동은 저평가된 지역이 맞다. 서울숲 개장(2005년), 신분당선 개통(2012년)으로 현격히 개선된 성수동의 환경과 접근성을 인식한 투자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입지조건이 전부는 아니다. 지역 환경과 잠재력을 눈여겨본 ‘첫 기업’이 다른 기업들의 성수동 입주를 이끌어 냈을 것이다. 그래서 성수동에서 선도적으로 소셜벤처를 오픈한 기업가에 주목해야 한다. 필자의 눈낄을 끄는 초기 개척자는 바로 벤처산업의 이단아 이재웅 소풍 창업자다.


다음 창업자 이재웅 (사진-페이스북)



이재웅은 왜 이단아인가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 이재웅 대표는 벤처 창업가, 그것도 항상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연쇄 창업가다.


이단아가 아니라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파괴를 업으로 삼는 창업가가 될 수 있을까?


필자가 그를 이단아로 표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 주류(主流) 산업뿐만 아니라 주류 문화에 유난히 도전적인 그의 기질이다.


한국이 주류 사회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번영할 수 있다는 신념을 최근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3-40대의 미래세대로의 세대 시프트가 적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4년 전에 참여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강금실은 46세였고, 김기춘은 49세에 검찰총장이었고, 우리가 늘 벤치마킹하는 핀란드 교육청 장관은 83년생, 34세다. 왜 우리는 2017년에 69세, 68세 장관들의 3-40년 전 실수를 가지고 장관 자격이 있네 없네 왈가왈부해야 할까?" (페이스북 2017/6/18 포스트).


다음 제주 본사 스페이스닷원



서울 주류에 대한 이재웅의 도전


그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은 2004년 ‘다음’ 본사의 제주 이전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왜 다음이 제주로 옮겼는지 직접 들어보자.


"사람은 제주로 보내고 말은 서울로 보내는 시대가 됐다... 말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 서울은 회색이고 자연이 없다. 서울은 이제 사람보다 말도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선) 하루 직장에서 8시간 일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3-4시간 걸리면 자기계발이 안 된다. 지금은 공부하겠다면 지역에 상관없이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진 시대다. MIT 강의도 인터넷에 오픈했다. 그런 세상에 서울과 제주를 갈라 중앙이다, 지방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우습다는 거다."


"앞으로 제주도가 지식산업 발전의 선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퇴근이 쉽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있는 제주도에... 작은 의미의 실리콘밸리를 생각할 수 있다."


작은 실리콘밸리 구축은 대대적인 실험이었다. 2005년 맨 처음 제주에 둥지를 튼 부서는 인터넷지능화연구소(Net Intelligence Lab)였다. 연구소는 제주 애월 유수암에 펜션을 개조한 건물에 입주했다.


2005년 인터넷 뉴스와 정보 서비스를 운영하는 미디어본부가 이주했고, 2006년 글로벌미디어센터(GMC) 사옥이 완성되자 새 건물로 입주했다. 서울 인력은 스페이스닷원 본사 건물이 완성된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옮겨갔다.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직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업무 몰입도도 상승해, 일과 삶이 모두 즐거운 기업 문화가 형성됐다.

창의적인 근무환경으로 얻은 성과도 적지 않았다. 아고라, TV팟 등 다음이 제주에서 론칭한 혁신적 서비스였다.


그러나 2016년 다음이 카카오에 매각되자 제주 본사 실험은 동력을 잃는다. 카카오가 일부 인력만 남긴 채 대부분을 판교의 카카오 인력과 통합했다. 다음의 혁명적인 지방 이전 프로젝트는 마감된 듯했다.

 



다음은 떠났지만, 지역 발전 정신은 계속된다


카카오 본사는 아직 제주에 등록돼 있다. 연구개발,  제주 기반 사업 등 회사에 중요한 업무가 제주에 남아있다.


제주 개발에 대한 다음의 철학은 카카오가 정부의 권유로 설립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로 이어졌다. 카카오 임직원이 운영하는 센터는 혁신적인 창업가를 제주로 유치하는 '제주 한 달 살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하는 제주 창업가들을 연결하는 '제주 더 크래비티(Cravity)' 등 다른 센터에서 볼 수 없는 자생적 산업 생태계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제주 탑동 쏘카 주차장


제주 실험의 가장 큰 성과물이 카셰어링 기업 쏘카다.


다음의 제주 본사에서 근무했던 김지만 전 대표가 2011년 제주에서 창업한 기업이다. 2017년 6월 현재 7,000대 차량과 260만 명 회원을 보유할 만큼 성장했다. 초기 투자자로 참여한 이재웅 대표는 2016년 쏘카 지분을 추가적으로 매입,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됐다.    

 

김 전 대표는 제주 자동차 시장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제주 주민들은 대중교통이 부족해 자동차를 많이 구입하지만, 실제 사용량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차들이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게 허다했다. 그가 목격한 공급과 수요의 격차에서 착안해 제주의 유휴 차량들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한 것이다.


2013년 서울시가 공유차 공식 사업자로 선정하자 쏘카는 서울에 사업장을 마련한다. 쏘카의 성수동 사업장은 현재 실질적인 본사로 기능한다.


임팩트 투자자 소풍이 입주한 성수동 카우앤독과 건물 앞 쏘카존

 


쏘카, 제주 다음과 성수동 소풍의 연결고리


제주에서 시작된 이재웅 대표의 도전은 소풍과 쏘카를 통해 성수동에서 이어진다. 쏘카를 비롯한 소셜벤처에 투자하는 소풍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류에 대한 도전이다.


첫째, 투자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벤처업계의 통념을 깨고, 사회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소셜벤처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을 설립했다.


둘째, 강남, 판교 등 기존 IT 비즈니스 중심지가 아닌 도심에서 다소 소외된 성수동을 소풍의 사업장으로 선택했다.


제주와 성수동의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재용 대표는 한국 주류 CEO 들과 달리 장소에 가치를 둔다.


원하는 비즈니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특정 물리적 환경이 필요하며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장소를 찾거나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소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다시 들어보자.


"(제주에서) 작은 의미의 실리콘밸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만든 것은 인도인과 중국인들이다. 실리콘밸리의 다양성을 제주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주도는 중국인, 필리핀인, 베트남인에게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출퇴근이 쉽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있는 제주도에 일자리가 있다면 말이다."


성수동 소셜벤처 마리몬드



이단아 이재웅 모델의 미래


이재웅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할까? 제주와 달리 성수동에 이재웅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소셜벤처가 많은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이들은 클러스터를 형성해 다른 지역에 없는 독특한 기업 문화와 지역 문화를 창출한다.


지리적으로도 성수동의 성공 가능성이 제주보다 높다. 허름한 공장들과 숲 사이로 오밀조밀 밀집된 골목 구조는 강한 문화 결집을 촉진한다. 성수동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혁신적 가치 창출을 즐기는 소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집적지가 될 수 있다.


골목 정체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해야 하는 도시와 달리, 골목은 특색 있는 단일 문화로 공동체를 구축하기에 유리하다.


물론 소셜벤처밸리가 완벽하진 않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간판 소셜벤처를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쏘카의 미래에도 불안 요인이 존재한다. 2016년 경영권 재편 과정에서 대주주로 참여한 SK 그룹이 쏘카 경영권을 놓고 소풍과 갈등을 빚게 되면 안정적 성장을 위협할 것이다.


성수동 지역 문제도 녹록지 않다. 소셜벤처가 원하는 성수동 상권은 소셜 라이프스타일 상권이다. 하지만 성수동은 이미 수제구두 거리, 대기업(이마트), 대형 주상복합, 상업적 상권과 사회적 상권이 공존하는 대규모 상업지역으로 발전했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성수동 임팩트 투자자들이 소셜벤처의 성수동 창업을 권장하고 있으나, 소셜벤처만으로 상권 전체의 상업화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수동 소셜벤처밸리는 국가적으로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젝트다.


고령화, 환경, 복지 등 소셜벤처의 역할이 중요한 분야가 산적해 있다. 현재로서는 성수동만큼 성숙한 소셜벤처 생태계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수동은 이단아 문화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한국 벤처문화가 꽃피우려면 더 많은 이단아 창업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이재웅 대표의 새로운 실험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정원오,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후마니타스, 2016

김수종,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희망제작소, 2009

한동헌,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 이전과 제주도의 과제, 제주발전연구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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