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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29. 2017

여행자가 찾는 기독교 마을

광주 양림동

불교는 일종의 관광산업이다. 우리는 여행을 위해 사찰을 찾고, 사찰 음식, 템플스테이, 명상원 등 사찰이 제공하는 여행 서비스를 일상에서 즐긴다. 그런데 기독교 마을이나 시설로의 여행은 생소하다. 절과 달리 교회가 시설을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장소성의 결여다. 불교와 달리 한국 기독교는 순교자 성지 몇 곳을 빼곤 기독교 문화가 집적된 장소가 없다.

호남 지역에서 기독교 유적이 가장 많은 광주 양림동이 유일하다.
 

20세기 초 서양인 선교사들은 광주성 남쪽을 선교의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이들이 세운 교회, 신학교, 병원, 학교, 사택의 건축물이 근대 문화 자원으로 보존돼 있다.


광주 선교 역사의 중심인물은 1895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된 유진 벨(Eugene Bell) 목사다. 광주와 전남에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광주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비롯하여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우고, 광주기독병원도 설립했다. 선교사 묘역, 선교사 사택, 양림교회, 기독병원 등 양림동의 기독교 유적지는 유진 벨 목사, 그의 가족 그리고 동료들이 활동하고 영면한 장소다.



호남신학대 선교사 묘역


양림동 골목길은 다른 도시가 부러워하는 도시문화 자원이다.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기독교 유적과 골목길을 배경으로 개성 있는 카페와 가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양림동의 매력은 외적인 도시 경관이 아닌, 내적인 가치에서 뿜어져 나온다. 다른 도시의 골목길이 관광자원으로만 활용되는 것에 비해, 양림동은 점잖고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동네의 품격을 높인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들도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아 좋다.


반가운 소식은 많은 여행자들이 기독교 마을이라는 이색적 풍경에 매력을 느껴 양림동을 찾는다는 것이다. 관광자원으로 양림동의 가치를 인식한 광주시는 2009년부터 호남신학대와 함께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대학 자체적으로 기독교 문화 유적을 성지순례지로 개발하고, 광주시가 이를 기반으로 역사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2010년 공식적으로 시작된 사업은 현재 커뮤니티센터, 주차장, 경관개선 등 제3단계 관광지 인프라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1-2차 사업에서는 순교자 기념공원 조성, 선교사 사택 보수, 의료원 기념관 건립 등 역사유적 복원 사업에 역점을 뒀다.


시는 또한 양림동의 문화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하고, 양림동과 주변 남구 지역을 연계해 새로운 관광 지역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5년 주 남구를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해 3년간 양림동 관광 활성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펭귄마을의 설치 미술


정부 사업과 별도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사업도 양림동 관광지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양림동의 대표 관광지로 부상한 펭귄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래된 생활용품을 모아 정크 아트 작품들이 구석구석 전시된 골목길이 가득한 펭귄마을은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의 뒷모습과 걸음걸이가 마치 펭귄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의 전통적인 골목 문화와 골목길에 사는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문화를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장소여서 인기를 끌고 있다. 광주시는 펭귄마을을 공예 창작소로 육성할 계획이다.


도시문화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양림동의 기독교 유적이 '살아있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교회, 학교, 병원 등의 활동이 왕성한 양림동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기독교 시설과 교인이 집적된 마을이다. 기독교 교육 기관과 병원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 주민의 약 60%가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양림동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느끼지 못하지만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 주민의 보수성을 이야기한다. 보수적인 교회의 영향을 받아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에게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고, 세상 변화에 크게 반응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기독교적 특색이 있다면 유난히 술집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주민들의 '눈길' 탓에 늦게 까지 문을 여는 주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한다.


 양림동을 기독교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독교 도시라면 기독교 마을의 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기독교 서점, 선교사 기념 카페, 선교사 의복 대여점 등 기독교 관련 상업시설이 일부 눈에 띄지만, 양림동 상권만의 기독교 문화 상품과 서비스는 찾기 어려웠다.



양림교회 어버슨 기념관과 카페


왜 그럴까? 종교는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정부의 인구 총주택 조사에 따르면 전체 내국인 4700만 명 중 기독교인은 860만 명 (18%), 불교인은 1073만 명 (23%), 천주교인은 515만 명 (11%)으로, 전체 인구의 52%가 종교인이다. 말하자면, 종교의 선택과 함께 그 종교가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한다는 암묵적 약속을 한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사회적 행동에 있어 종교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예컨대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기업이 다른 종교인이나 무신론자의 기업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지 않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한국에 적용되지 않은 것일까?


지역 단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가까운 목회자에게 한국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도시가 어디냐고 질문했다. 그런 도시가 없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기독교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경기, 호남 지역의 몇몇 도시는 기독교 성격이 강한 도시로 떠오를 수 있을 법함에도,


기독교 문화를 표방하는 한국 도시는 없다.


다른 나라는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남부 지역인 바이블 벨트(The Bible Belt)의 중심 도시 애틀란타를 가보면 기독교의 영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주거지역에 가면 십자가나 다른 기독교 사인을 정원이나 문 앞에 걸어 높은 집이 흔하다.



기독교 기업으로서 일요일 휴무를 고집하는 패스트푸드 체인 칙필레


슈퍼마켓의 잡지책 판매 구역도 인상적이다. 잡지는 벽에 붙은 책장에 진열되어있어 특별한 점이 없지만, 진열대 앞에 기독교 서적 전시대가 따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타 도시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스스로를 기독교 기업으로 홍보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 칙필레(Chick-fil-A)였다. 패스트푸드 음식을 판매함에도 불구하고 주일인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한국과 달리 애틀란타 곳곳에서 종교를 생활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은 지금 다양한 문화를 가진 도시를 필요로 한다. 적어도 외관적으로는 불교 도시, 유교 도시, 원불교 도시가 존재하고, 이들 모두 종교 유산을 적극적으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독교만이 굳이 이런 추세를 외면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양림동이 한국 기독교 마을로서 명성을 더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독교색이 가득한 골목길 자원에 기독교가 제일 우선시하는 사랑의 개념을 접목시킨 ‘힐링’ 산업을 고려해볼 수 있다. 명상원, 수양원, 치유 리조트 등 이타심과 배려의 덕목을 쌓으며 힐링하는 기독교 문화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양림동다운 색깔을 지닌 산업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양림동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물심양면 지원하는 정부도 양림동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여행지로 만들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양림동 선교사들의 생활과 활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이야기를 근대 서양사와 한국사 이야기와 섞어서 흥미로운 콘텐츠로 제작하고, 근대 기독교 시설을 현대 디자인을 접목시켜 리모델링 함으로써 차별화된 근대 문화유산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양림동 선교사 의복 대여점


양림동 역사 문화 자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근대와 선교 문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해야 한다. 예컨대 기독교 역사와 서양 역사를 분리할 수 없는 점에 착안해 서양 역사 도서관을 건설하는 것도 양림동에 적합한 사업이다. 뮤직, 미술, 여행 등 다양한 테마를 전문으로 하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처럼 기독교 문화 향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양 역사 도서관은 광주에 위치한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아시아 문화 사업을 도와 양림동 서양사 서적을 제작하거나 영상 자료를 제공하는 등 광주의 문화적 역량과 영향력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기독교 가치가 근대 유럽의 시장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막스 베버 이론이 맞다면, 기독교 도시는 다른 도시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발휘할 수 있다. 근면, 절약, 저축, 성과주의가 국가경제에 필요한 미덕이라면, 그 가치가 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미국의 기독교 도시들이 보여주듯이 기독교 라이프스타일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문화를 발산한다. 건축, 음악, 미술, 음식 등 기독교 문화가 도시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무수히 많다.


기독교가 가장 큰 종교의 하나로 자리 잡은 한국에서도 기독교를 도시 문화 자원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기독교인 많이 사는 도시에서는 종교 자원을 새로운 지역 산업의 소재로 활용하는 실용적인 사업을 추진해 지역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 기독교는 광주 양림동에서 지역에 대한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창의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지역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를 희망한다.
 

지역 교육과 복지 향상을 위한 교회의 많은 노력들이 지역산업과 경제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인 주거지구에 기독교 문화에 기반한 독특한 생활과 산업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기독교를 위해서도,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자연스럽고 생산적인 일이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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