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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Nov 12. 2017

전주 한옥마을에서 찾은 전주다움의 미래

한국에서 '아 여기는 다르구나'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도시는 드물다. 전주가 그 드문 도시중 하나다. 차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남문 지역에 위치한 한옥마을 덕분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그냥 관광지가 아니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 경제에서 우리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전통문화 산업화의 테스트 마켓이다. 전주가 한국적 생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방문자가 한 해 1천만 명을 넘으면서 전주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지금, 한옥마을의 지나친 상업화는 전통문화 정체성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해결 방안은 개념적으로 단순하다. 한옥마을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역문화로 생활화해, 지역 정체성, 여행자 수요, 전통문화 산업화를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다.


전통에 충실한 한식, 한옥, 한복, 국악으로 대규모 로컬 소비와 여행자 소비를 유인하는 것이 한옥마을의 미래다.


장기적인 성공은 지역문화의 생활화에 달렸다. 탄탄한 로컬 소비를 바탕으로 고유의 매력을 가치로 생산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발전하는 것이다. 전주 시민이 전통문화의 생활화를 통해 전통문화 상품을 꾸준히 소비함으로써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고급 전통문화 가치가 창출되면, 자연스럽게 이를 찾는 외부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한복 대여 기업 한복남의 박제상 대표, 생활한복 브랜드 리슬의 황이슬 대표 등 전주의 청년 창업가들이 보여주듯이 전주는 이미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주도하고 있다.


전통문화 생활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한옥마을의 규모다. 역설적이지만 한옥마을에 가장 부족한 자원이 한옥인 것이다. 현재 700여 채의 한옥으로는 적정 수준의 한옥 인구를 수용할 수 없다. 한옥마을 주변에 제2, 제3의 한옥마을 조성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한옥 1,500여 채를 보유한 시청 주변 노송동을 한옥마을과 연결시켜 전통문화의 소비를 주도하는 지역 소비 공동체를 구축, 로컬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


다른 한옥마을이 재현할 수 없는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문화 건축물: 전주향교, 오목대, 경기전, 전동성당


전주향교에서 시작하는 한옥마을 투어

 

전주 한옥마을 여행은 400년 전통의 교동 전주향교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국 교육과 학문 전통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곳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힐링을 제공한다. 학자라면 누구나 이이, 김장생, 송시열 등 대성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앞에서 학자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체감하며 숙연해진다.


향교에서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선시대 정자인 오목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소장한 경기전, 호남의 대표 근대건축물인 전동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한옥마을의 중심 축이다. 이들 건물은 전주가 자랑하는 역사적 유산이다. 다른 지역에서 아무리 많은 한옥마을을 짓는다고 해도 핵심적인 한국 역사 자원을 보유한 전주 한옥마을의 독보적 위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도시 속 한옥마을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관광지역과의 자연스러운 공간적 융합이다. 전북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남부시장, 전주 원도심 상업지역, 전주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풍남문, 전주 객사 등 역사와 문화명소가 한옥마을 주변에 밀집해 있다. 국내 도시 중에서 전주와 같이 다양한 문화 지역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보행 중심 도시는 흔하지 않다. 차 없는 거리, 일방 통행로 조성 등 전주시가 계획하는 도로 사업이 완성되면 한옥마을과 객리단길, 남부시장 등 주변 상권 사이의 도보 이동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전국으로 확산된 한복 대여 사업


한옥마을을 개척한 지도자들

한옥마을 성공 사례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과연 이 사업은 누구의 작품일까? 전주를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로 만들고 전국적으로 한옥마을 붐을 일으킨 전주 한옥마을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가 제안해서, 누군가의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한옥마을 역사가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다. 일제 강정기에 형성된 한옥마을의 보존을 시작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전주 한옥마을의 보존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몫 거들었다. 1977[5]년 마을 근처를 통과하는 전라선 철도로 기차를 타고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한옥마을이 들어왔고 그는 “이 마을을 잘 보존하라”고 지시했다."(서울경제, 2021.02.17)


보전 이후 쇠락하던 한옥마을이 다시 부흥하기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2000년 전주시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마을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 해 시 정부는 건축물 규제와 함께 한옥 건물 개보수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공시설을 신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역단위계획을 수립했다. 그 후 다양한 중앙정부, 지방정부, 민간사업을 통해 한옥마을은 관광명소로 발전했다.


한옥마을의 의의는 민속촌 같은 '인공적'인 시설에서만 체험할 수 있었던 2000년 전의 전통 마을 문화를 지역 거주지를 통해 재현한 데 있다. 이 마을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한식, 한지, 한자, 한복, 한방 등 다양한 한(韓) 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한국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진화했다. 편의시설을 갖춘 관광지로 개발된 마을이 '한옥마을 1.0'이라면, 한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마을은 '한옥마을 2.0'에 해당된다. 전주시가 홍보하듯이 "대한민국을 전부 가볼 수 없다면, 대한민국을 전부 가지고 있는 곳"이 된 것이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한옥마을은 체류형 관광지로 변신했다.


한옥마을이 이처럼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사업의 성공을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보도한 주요 인물로는 2000년 지역단위계획을 수립한 김완주 시장, 이를 이어간 송하진 전주시장, 2002년 사회적 기업 '이음'을 세워 2002년 한옥마을 지원 조례 제정을 주도한 김병수 대표, 2014년 시간제 한복 대여 사업을 시작해 한옥마을을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로 채운 '한복남' 박세상 대표를 꼽을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이 제시하는 3대 성공 조건


한옥마을의 성공을 재연하기를 원하는 다른 지역이 얻어야 할 교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주 한옥마을 사업은 지역사회사업으로 출발했다.


중앙정부가 한옥 관련 지원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고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을 발표한 2007년이 돼서야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 조성사업, 고택·종택 명품화 사업 등을 통해 한옥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둘째, 한옥 보존정책이 한옥마을 성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다.


한옥마을 사업은 2000년 지구단위 지원계획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5년 시작된 보존정책은 1995년 종료됐다. 지구단위계획은 보존정책과 달리 건축 규제와 더불어 개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셋째,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전주시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지역 전문가가 참여하는 도시재생 추진단, 도시재생 대학생 서포터스, 마을 만들기 코디네이터, 마을재생 주민리더 양성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시민 참여를 독려했다.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는 시민단체 주도의 한옥마을 지원 조례, 민간단체의 한복 대여 사업 등의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임대사인이 늘어나는 한옥마을 (2017년 3월)


한옥마을에 덮친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해서 한옥마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이 한옥마을의 상업화, 혼잡성,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해 왔다. 이미 '난 개발'의 징조가 나타났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안정적으로 성장해 온 한옥마을에서 2016년에 들어 불길한 사인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적 없는 저가 '먹자 거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는다. 추로스, 꼬치, 치즈구이, 튀김 좌판이 한옥마을 거리를 뒤덮었다. 궁, 행원 등 전통 한정식 식당들은 한옥마을을 떠나고 있다. 한옥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전통 한식을 체험할 기회를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에 정체성 혼란이 와서인지 최근 마을 전역에 임대사인이 늘어나고 있다. 프랜차이즈와 대기업 브랜드 진입은 정체성을 상실한 골목상권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한옥마을을 떠난 전통 한정식 식당 궁 (2017년 3월)


전주시의 정체성 회복 노력


전주시는 음식문화 정체성 문제를 규제로 대응하고 있다. 한식 외의 다른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은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문화행사, 한옥 형태에서도 한옥마을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할 예정이다.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는 한옥마을에 적정 수준의 규제는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규제가 과연 구조적 요인까지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식, 한옥, 한복 등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한국 문화 상품이 한옥마을 시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수요 문제다. 최근 한옥마을의 주 고객이 된 청소년층은 고급문화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이 부족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의 한스타일 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고급 전통문화 시장은 산업화되지 않은 소규모 수준에 불과하다.


남부시장 청년창업몰


로컬 소비와 체류 여행 활성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골목상권 조성


그렇다면 전주시와 한옥마을 주민들은 전통문화 수요 확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통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고객 유치가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옥마을에 필요한 소비자는 일차적으로 전주 지역 주민들이 되어야 하고, 나머지는 타지 여행객으로 충원해야 한다.



주민들이 한옥마을에서 거주하며 전통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로컬 소비는 지속 가능한 한옥마을 발전의 원동력이다.

고급 전통문화에 대한 지역 생활 기반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 , 여행객 소비에 의존하는 한옥마을은 인위적인 민속촌과 박물관에 불과하다. 한옥단지 확대와 더불어 한옥마을 내에 고급 전통문화를 찾는 여행객을 수용할 숙박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현재의 시설은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오랜 기간 휴양하기에는 공간이 좁고 서비스가 부족하다.


대규모 확장이 필요한 전주의 한옥자원


한옥마을에 절실한 자원은 한옥이다


전주 시민을 한옥마을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수용 능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한옥마을이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옥으로는 역부족이다. 주변 지역에 한옥단지를 건설해 적어도 전주 남부 지역 전체를 한옥 지역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 가옥 복원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난개발의 홍역을 치르는 베이징에서는 외국인과 부유층 전통 건물과 가옥 복원에 열을 올린다. 베이징이 부러운 이유는 한국과 달리 중국 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베이징 스타일에 끌려 많은 사람이 찾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전통가옥으로 채워진 독특한 도시 경관은 다양한 지역 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야기 산업으로 성공한 에든버러가 대표적이다. 18세기 유럽 사상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에든버러는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흄 등 명저를 쓴 학자를 대거 배출한 도시다. 에든버러의 역사와 외관은 오늘날 에든버러가 낳은 또 다른 명작가, 해리포터의 저자인 조앤 롤링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판타지 소설의 소재를 제공하는 전설과 건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이 지역 사회의 혁신을 통해 발전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미래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다른 지역이 따라 할 수 없는 역사 자원을 가진 전주 한옥마을은 혁신과 창조로 새로운 관광 자원을 개발해 한층 더 성장한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


한옥마을 3.0 시대를 맞는 전주의 가장 큰 숙제는 무엇보다 한옥마을의 확대다. 기존의 한옥 자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수동적 전략에서 신규 한옥단지 건설을 통해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한옥 전문 건축사무소, 건설사 등 한옥 관련 지역 산업을 육성하며,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 산업을 지원하는 능동적인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주 주민들이 한옥과 한스타일을 생활화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한국 전통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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