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광주는 공공미술의 도시다. 아시아문화전당, 시립미술관 등 미술관이 전시하는 공공미술과 더불어 광주시가 폴리 사업을 통해 기획한 작품이 도시 거리를 장식한다. 광주폴리는 도시 거리에 세계적인 건축가와 예술가의 소형건축예술(Folly)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2011년에 시작해 현재 제3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미술은 어느새 전국 전역에서 낙후지역과 골목 활성화 사업의 단골 메뉴가 됐다.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된 공공미술 사업은 벽화마을이다. 2007년 통영 동피랑 언덕에서 시작된 벽화마을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스코틀랜드 게이츠헤드의 ‘북쪽의 천사’ 조형물 등 해외 성공 사례가 한국에서의 공공미술 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공공미술이 꼭 순수 예술 작품이어야할까? 광주폴리II가 기획한 ‘포장마차’, ‘틈새호텔’ 등 일부 공공미술은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지만, 대부분은 예술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도시인의 삶에 공공미술이 더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매력적인 도시문화를 조성하는 도시재생에서 공공미술만큼 중요한 도구는 없다.
걷기 좋은 거리, 다양한 유형의 저층 건물, 편리하고 품격 있는 공공시설과 거리 경관,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선 상권 등 공공미술이 필요하지 않은 도시 인프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고 특별한 경험과 감성을 제공하는 상업시설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SNS 마케팅 시대에 인스타그램에 잘 나올법한 건축, 사인, 인테리어, 상품 디자인을 가진 가게들이 성공적으로 고객을 유인한다. 한마디로 ‘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가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색다른 경험과 취향을 기록하는 도시여행자에게 거리와 건물 디자인은 도시의 매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특색 있는 디자인과 건축으로 상권의 정체성을 구현하고 점포의 외관을 장식해야 주민의 지역경제에 중요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지역 정부는 상권 조성과 재생을 자신의 업무로 생각하지 않는다. 제조업 공장의 유치를 위해서는 온갖 재정적 지원을 다 하면서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에 더 중요할 수 있는 상업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상업시설을 매입하고 운영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전국의 모든 도시가 낙후 지역의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민하는 와중에 광주에서 혁신적인 상업시설 유치 모델이 등장했다. 경기대 천의영 교수가 총감독하는 제3차 광주폴리가 '먹고 마시는' 쿡폴리를 오픈한 것이다.
제3차 광주폴리는 '도시의 일상성–맛과 멋'을 주제로 뷰(View)폴리, GD(GwangjuDutch)폴리, 쿡(Cook)폴리, 뻔뻔(FunPun)폴리, 미니(Mini)폴리 등 도시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작품으로 구성돼있다. 산수동과 충장로에 들어설 제3차 폴리 작품은 총 11개에 달한다. 제1차, 2차 사업도 기능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목표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예술성에 방점을 찍은 작품 중심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제3차 쿡폴리 시도에 귀추가 주목된다.
흥미롭게도 카페 ‘콩집’과 음식점 ‘청미장’이 입점한 2개의 건물로 구성된 쿡폴리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v포머티브건축 고영성 소장이 광주시가 확보한 공폐가를 재생 건물로 설계했고,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장진우거리’를 조성한 장진우 대표가 쿡폴리의 콘셉트와 콘텐츠를 제공했다. 실제 카페와 식당을 운영하는 기관은 지역 청년창업 협동조합이다.
쿡폴리 건축은 구도심 활성화와 관련하여 긍정적 의의를 갖는다. 무엇보다,
쿡폴리는 상업시설과 공공미술을 융합한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초월한다.
공공미술을 통해 도시의 일상성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식생활과 외식문화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획자의 담대성에서 더 큰 의의를 찾아야 한다.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식생활만큼 중요하고 현실적인 문화를 찾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공미술가들은 공공미술을 식생활 상업시설에 접목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천의영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쿡폴리는 공동화되고 쇠락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 재생형이자 맛집형 폴리로, 옛날 맛을 새롭게 리브랜딩하게 될 것” 이라며 예술, 식생활, 상업시설을 연계할 포부를 밝혔다.
쿡폴리는 또한 도시 체험의 새로운 채널을 제공한다.
광주 시민은 쿡폴리에서 공공미술의 공공성과 상업시설의 일상성, 소비성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거대 담론이나 민족주의적 이념으로 포장하지 않고, 시민의 삶에 스며들어 도시문화를 구현하는 스몰 어반니즘의 프론티어에 서있는 것이다.
쿡폴리 장소에 있던 두 개 가옥은 본래 공폐가였다. 광주시가 동네에서 방치됐던 공폐가 2가구를 폴리로 재생한 것이다. 도심재생의 관점에서 쿡폴리는 혁신적이다. 서울 경리단 지역에 ‘장진우거리’를 개척한 장진우 대표를 초빙해 음식점과 카페의 콘셉트를 잡은 것도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민관 협업 모델이다.
음식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주체로 지역 청년이 설립한 협동조합을 선정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광주시가 세금으로 조성한 폴리 시설을 기업이나 기존 자영업자에게 임대했다면 과연 지역 주민들이 이를 납득했을까? 쿡폴리를 청년창업가들에게 임대함으로써 시당국은 상업시설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쿡폴리 모델은 새로운 상업시설 재생 모델로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 정부가 전통시장에 입주한 청년 창업 가게를 보조한 적은 있으나, 골목상권의 재생을 위해 상업시설에 직접 투자한 사례는 필자가 아는 한 쿡폴리가 처음이다.
쿡폴리에 참여한 장진우 대표는 창업으로 도시를 재생하는 일종의 도시기획자다. 골목대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그는 “외국인들에게 명동, 광장시장, 가로수길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태원 '스핀들마켓', 대구 '마린타코', 영등포 케이크 공장, 세종시 카페 ‘I got everything’ 등 국내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상업시설을 창업해 "우리나라의 전국적 문화 콘텐츠 개발을" 꿈꾼다.
장진우 대표를 쿡폴리 작가로 추천한 것은 다름 아닌 쿡폴리 총감독 천의영 교수다. 천교수의 궤적을 따라가면 쿡폴리 사업이 우연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말 방영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의 업소와 주택 재생 프로그램인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최근에는 성수동 수제구두 거리를 기획하는 등 도시 일상 속의 건축을 오랜 기간 꾸준히 추구해 왔다.
건축과 디자인이 어떻게 소상공인 업소를 재생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 신장개업은 여러 측면에서 시대를 앞선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정신은 그 후 현대카드, 호텔신라 등 디자인과 컨설팅을 통해 전통시장과 자영업 음식점을 지원하는 대기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소상공인 역량 강화보다는 소규모 융자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 등 보호 중심의 소상공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쿡폴리는 2017년 1월에 개장해 이제 막 시작된 사업이다. 사업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상업시설인 쿡폴리는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광주시 입장에서도 많은 시민이 쿡폴리를 찾고 그 서비스에 만족해야 사업에 대한 지원을 합리화할 수 있다.
첫째, 지역 소상공인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소상공인들은 광주시가 서울 기업인 주식회사 장진우를 쿡폴리 파트너로 영입한 것에 대해 상당한 소외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쿡폴리가 새로운 유동인구를 창출하는 지역 상권의 앵커 시설로 기능해
같은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줘야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들의 여론도 바뀔 것이다.
둘째, 광주시가 쿡풀리 사업이 초래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관건이다. 쿡폴리가 위치한 산수동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동명동과 인접한 상권이다. 쿡폴리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 사업이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확산을 유발할 것이다.
현재 광주시는 쿡폴리 주변의 건물을 매입하고 여기에 폴리, 문화시설 등 공공시설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시설의 공급이 효과적인 반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인지는 확실치 않다.
임대료 인상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젠트리피게이션 위험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기술 발전과 가치의 변화는 우리를 공유경제, 탈물질주의경제, 제로한계비용경제 등 아직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경제로 이끌고 있다. 미래 경제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도전의 세계다.
새로운 공유경제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가 순수 상업 영역과 순수 정부 영역을 무리하게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광주 쿡폴리 사례가 보여주듯이 낙후 지역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정부-민간 파트너십이 쿡폴리가 우리 도시에 제시하는 상업시설 재생 모델이다.
아래는 참고한 글입니다.
장진우, 장진우식당, 8.0, 2016
천의영, 그리드를 파괴하라, 세종서적,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