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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30. 2017

다시 동네 상가로 돌아간 골목길

누군가가 골목상권이 관광지가 되기 전인 1995년에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상권이 어디냐고 물었다면, 필자는 이대 후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고급 한식당, 커피전문점, 프랑스 식당, 피자전문점을 즐길 수 있었던 그곳은 당시 번잡한 일반 상권과 차별화된 오늘날 기준의 골목상권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대 후문은 그저 평범한 동네 상가다. 매력적인 모습이 일부 남아 있지만, 여행자가 찾아 올만큼 개성 있고 아기자기한 골목상권이 아니다. 2000년 중반 이후 연남동과 연희동 골목상권이 급격히 성장하는 동안 이대 후문은 조용히 자신의 1980년대 자리, 즉 관광객이 아닌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동네상권으로 회귀했다.


이대 후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3년 이후 서울의 다른 골목상권에서 발생한 유형의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상권 쇠락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쟁력 상실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상권이 확장하자 고립된 공간 디자인이란 구조적 한계가 상권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대 후문 상권의 중심 도로 성산로



1980년대 이대 후문의 상권화

 

이대 후문 상권의 역사는 198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전통 한정식을 제공하는 품위 있는 음식점'을 모토로 내건 석란이 1981년 이대 후문 대로변에 문을 연 것이 지역 상권화의 시작이다.

 

석란에 이어 마리가 1984년 이 동네에서 둥지를 텄다. 마리는 개성음식을 기반으로 깔끔하고 효율적인 한식 코스를 개발, 한식 발전에 기여했다.

 

1990년 중반 담소원과 방비원이 합류했다. 담소원은 마리가 1995년 연 냉면·고깃집, 방비원은 이대 앞에서 오랫동안 분식집 가미를 운영했던 주인이 1996년 시작한 징기스칸 요리 식당이었다.  

 

고급 한식당에 이어 카페와 서양음식점도 속속 들어섰다. 1992년 압구정동에서 한국 최초의 케이크 전문 카페로 시작한 카페 라리가 1997년 2호점을 이대 후문에 열었다. 카페 라리는 커피전문점 달마이어, 프랑스 음식점 작은 프랑스와 더불어 이대 골목에 고풍스러운 유럽 색깔을 더했다.

 

1995년 완공된 5층짜리 쌍둥이 빌딩 하늬솔 빌딩도 거리 변화에 기여했다. 담소원, 카페 라리, 그리고 피자전문점 제시카 피자리아 등이 이 건물에 입점했다.

 

방비원, 담소원, 마리, 작은 프랑스, 카페 라리는 당시 강북에서 보기 어려웠던 고급 식당과 카페였다.

 


1990년대 이대 후문 전성시대를 이끈 석란과 마리


2000년대 후반 품격 있고 낭만적인 레스토랑의 창업이 이어졌다. 프렌치 이태리 퓨전 레스토랑 지노 프란체스카티, 샌드위치 전문점 로드샌드위치, 타르트 전문점 라본느타르트 등

 

특색 있는 가게들이 자리한 이대 후문은 선구적인 골목상권의 개척자였다.

 이대 후문 골목의 부상은 문화와 감성이 담긴 가게 정체성과 함께 입지 조건도 작용했다. 1970년대 이 지역은 연세대와 이대 교직원들이 모여 살던 조용한 고급 주택가였다. 상권으로 부상한 계기는 1979년 금화터널의 개통이었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자동차로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상권이 된 것이다. 세브란스 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등 인근에 병원과 교육기관이 많은 것도 상업시설 유치에 유리했다. 


경의선 책 거리의 개통으로 홍대 상권은 또 하나의 문화 거리를 얻었다


골목상권의 부상과 연세대 상권

 

골목상권 선두주자로 발돋움하던 이대 후문이 2000년대 후반 예상치 못한 도전에 직면했다. 홍대 상권이 경쟁 상권으로 급격히 부상한 것이다.

 

홍대 상권은 연남동, 연세대 서문 지역인 연희동까지 확장됐다. 조용한 주택가였던 연희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이 동네의 랜드마크인 ‘사러가쇼핑센터’ 뒤 작은 골목, ‘연희로 11가 길’이 그 중심이었다.

 

2000년대 초반 연희동에서 먼저 자리 잡은 깔끔한 디자인의 브런치 카페 뱅센느, 단독 주택을 개조해 만든 제니스 커피, 아담하고 분위기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 몽고네, 브런치 맛집 엘리, 커피의 매력이 느껴지는 매뉴팩트 등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성장했다. 연희동이 홍대 상권 확장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홍대 상권의 부상으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곳은 오랫동안 연세대 상권을 주도해 온 신촌이었다.

 

1990년대까지 명동, 종로와 함께 강북의 3대 상권으로 군림한 신촌은 신촌블루스, 해바라기, 한경애의 활동 무대로 7080 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00년대 청년과 패션 문화가 홍대로 이동하면서, 신촌은 직장인 유흥가로 퇴보했다.

 

이대 후문도 홍대 확장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꾸준히 발전하던 이 지역에 이상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방비원이 폐업한 2010년이었다. 한 때 연세대 교직원들이 많이 찾아 연세대 교수식당으로 불렸지만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 후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던 마리와 석란도 방비원의 뒤를 따랐다. 마리는 다른 사업자에게 가게를 양도했고, 석란은 영업을 중단하고 건물을 매도했다. 2016년 카페 라리 마저 지역 상권 판도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카페 라리의 폐업으로


 1990년대 이대 후문 전성시대를 이끈 가게들이 모두 사라졌다.


대형 매장과 프랜차이가 늘어나고 있는 신촌 연세로


연세대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권 삼국지

 

이대 후문(연대 동문), 신촌(연대 정문), 연희동(연대 서문), 이 세 지역은 연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상권이다. 상권 추이를 보면 연희동이 질적인 면에서 타 지역을 능가한다. 소위 ‘맛집 골목’으로 주목받으며 질 좋은 음식과 개성을 갖춘 이색적인 레스토랑이 증가하는데 반해, 신촌과 이대 후문은 프랜차이즈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 수 역시 2012년 이후 연희동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두 지역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희동 부상의 배경에는 독특한 문화적 개성이 한몫했다.

 

오랫동안 예술가가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졌던 연희동은 200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더 미디엄, CSP111 아트스페이스 연희동 프로젝트, 연희 문학 창작촌이 자리 잡으면서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연희동 골목길에서 작업실을 마련하는 공예 작가들이 늘었다.

 
이대 후문을 지키는 한가게의 주인은 "연세대가 캠퍼스 안에 상가를 조성하고 이 지역 상인이 단결을 하지 못해 쇠락한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문의 상인들은 서울시가 2014년 시작한 대중교통 전용지구 사업을 탓한다. 연세대 정문과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을 잇는 연세로가 '차 없는 거리'로 바뀌면서 이면도로의 상점을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목길 경제학은 연희동의 경쟁력을 보다 근본적인 요인에서 찾는다.

 

이대 후문, 신촌, 연희동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 디자인이다.

 

신촌은 구조적으로 '걷고 싶은 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대중교통 전용지구 사업을 완성하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이곳은 대형 매장과 프랜차이즈 가게, 좁은 골목과 자동차 길이 혼잡하게 얽혀 있는 전형적인 대로변 상권이다.


이대 후문은 마치 고립된 섬처럼 산(안산), 고가(봉원고가차로), 대형 건물(세브란스빌딩, 연세대와 이대 캠퍼스)로 둘러싸여 다른 지역의 유동인구가 넘어오기 힘들다. 빌딩 위주의 상가 구성은 아기자기한 골목 가계의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 가장 큰 제약이 골목 자원의 부족이다. 중심 도로인 성산로가 대형 고가와 이대 캠퍼스에 인접해 아기자기한 거리가 형성되기 어렵다. 성산로의 이면 도로인 300 미터 길이의 연대동문길이 양쪽으로 상가가 조성될 수 있는 유일한 거리다.

반면, 연희동은 연남동, 홍대와 보도로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접근하기에 용이하다. 임대료가 저렴한 주거전용지역의 골목길에는 작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대규모 단독주택 지역으로 특유의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역시 특징이다.


공방, 갤러리, 독립서점이 즐비한 연희동 골목상권


이대 후문의 역사와 골목상권 발전


우리가 이대 후문 상권의 부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골목상권은 수요, 공급, 시장 경쟁이 단위 상권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하나의 산업이다.

 

서울 골목상권 전체가 산업이라면, 단위 골목상권은 그 산업에 속한 기업인 셈이다.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를 받지 않은 이대 후문이 쇠락한 것도 골목상권 간 경쟁의 결과다.

 

둘째, 골목상권의 성공은 지역 공간 디자인이 관건이다.


특히, 다른 지역과의 연결성을 확대하는 도로와 대중교통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이대 후문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제한된 골목 자원과 낮은 접근성은 다른 상권과의 경쟁에서 치명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모든 골목상권이 극복해야 하는 중대한 위협 요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대 후문 사례가 보여주듯이 젠트리피케이션 시대 전에도 골목상권은 흥하고 쇠했다. 골목상권의 성쇠를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쟁력이다. 골목상권이 늘어나고 경쟁이 격화되는 미래에는 확장성, 접근성, 정체성, 다양성 등 골목상권의 원천 경쟁력이 더욱 중요한 성공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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