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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23. 2017

여의도 미스터리

2009년 서울시와 정부는 여의도를 아시아 금융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했다. 2006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단계적으로 완공해나가고 있던 IFC(국제금융센터)는 아시아 금융 허브 여의도의 위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서울시와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큰 논란 없이 받아들여졌다. 금융 관련 정부 기관과 대부분의 증권사 본사가 집결해 있던 여의도는 이미 금융 중심지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여의도를 동북아 금융 허브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국제금융 중심지에 걸맞은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고, 금융사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시키지도 못했기에 이 같은 평가는 지극히 당연하다.


외국인 투자 유치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건축한 대규모 복합단지 IFC는 실적 부진으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준공 후 몇 년 동안 오픈조차 하지 못했던 IFC 오피스 타워 3동의 공실률은 2015년 말 기준 70%가 넘는다.


단지 안의 IFC몰 역시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초기 기대와 달리 IFC몰 소비자는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한정돼 점심시간에만 반짝 직장인들로 붐빌 뿐이다.


운이 따르지 않은 측면도 있다. 정부가 2008년 상반기 금융중심지 조성 사업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9월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모든 금융 기관이 국제 금융 비즈니스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내 증권사마저 여의도를 이탈하고 있다. 대신증권이 명동으로, 미래에셋증권과 유안타증권은 을지로로, 메리츠 자산운용은 종로로, 삼성자산운용은 태평로로 각각 본사를 이전했다.

‘국제금융도시’ 여의도의 부진을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신도시 여의도


여의도는 우리 정부가 1968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주거, 상가, 업무 지역을 한 곳에 조성한 최초의 계획도시다. 이후 여의도에 대하여 정부는 거의 특혜에 가까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회, 증권거래소, 공영방송국 등 모든 지역이 탐낼 만한 공공기관이 여의도로 이전했으며,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아파트가 속속 건설됐다.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별도의 학군까지 조성했다. 63빌딩을 시작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랜드마크도 적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의도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 곳이 돼버렸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독립된 도시로 조성된 여의도가 과연 중심지로서 제대로 기능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의도는 주말과 저녁이 되면 사람이 떠나는 반쪽짜리 도시였다.


왜 그럴까? 사실 여의도는 신도시이자 계획도시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신도시의 기능은 대개 대도시의 위성도시로서 중산층에 주택을 제공하고 넓은 사옥을 찾는 기업에 공간을 공급하는 것에 한정돼 있다.


세계적으로 신도시가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테헤란로에 골목상권과 같은 아기자기한 상가가 들어서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거대한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신도시의 공간 디자인은 촘촘하게 배치된 개성 있는 가게보다 단지형 상가에 더 어울린다. 여기에 도로망 문제까지 더해졌다. 대규모 자동차 전용도로로 이어진 도로망으로 인해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볼거리 없고 걷고 싶지 않은 도시는 살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은 여의도 같은 신도시가 아니라 도시 문화가 살아 있는 삼청동, 연희동, 한남동, 이태원 등 강북의 도심 지역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 등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의 서울지점도 광화문을 중심으로 강북 도심에 위치해 있다. 외국인들은 근무지의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고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쿄 시부야 재개발 청사진


외국인이 사는 지역을 외국인 투자 특구로 지정한 일본


최근 글로벌 트렌드도 도심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도시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고, 가족이 있는 경영자들도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통근시간을 최소화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의도를 아시아 금융 허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것이었다. 이렇게 외국인의 선호를 무시한 채 진행했다가 실패한 외국인 특구 사업 사례가 여의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동해안권, 충북 등 정부가 건설한 8개 경제 자유구역은 모두 외국인이 살고 싶어 하는 장소와 거리가 먼 신도시이거나 산업 지역이다.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 역시 도시 문화나 영어 환경처럼 외국인이 실제로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외국인학교, 영리 병원 등 규제 특혜를 노린 내국인 투자 사업에 집중해왔다.


한국을 반면교사 삼아 의욕적으로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은 한국의 ‘실수’를 피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특구를 조성하고 있다.


2010년 일본 정부는 시부야, 신주쿠, 롯폰기, 시나가와, 다마치등 도쿄 도심 지역을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 본부를 유치하기 위한 ‘아시아 헤드쿼터 특구’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은 하나같이 일본인과 외국인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도쿄 최고의 상업·주거 지역이다.


진정으로 외국인 투자와 전문직 외국인 유치를 원한다면 이미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외국인 유치 정책으로 전국의 모든 외국인 특구는 정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쿄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야외 카페


자동차 도시에서 보행자 도시로 리모델링해야


여의도에 또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여의도를 어떻게 서울 도시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도시로 재창조할 수 있을까?

골목길 경제학은 도시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을 모으는 지역의 비밀을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공간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에서 찾는다.  


6대 조건의 영어 이니셜을 조합해 만든 문구가 '문화가 준비돼야 성공한다'로 해석할 수 있는 C-READI다.

C-READI 중 여의도 발전을 가장 제약하는 요인은 공간 디자인이다. 여의도도 선진국 도시처럼 자동차 중심 도로를 보행자 도로로 리모델링해야 하며,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로 하나를 차 없는 도로로 전환해야 한다. 그 길을 여의도를 대표하는 쇼핑 거리로 개발하면 더욱 바람직하다.


도쿄역 빌딩 숲에서 사람과 자연이 숨 쉬는 쇼핑 거리로 다시 태어난 나카도리를 여의도에서 만나고 싶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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