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골목길을 찾고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 왜 우리가 골목길을 좋아하는지, 어떤 골목길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난감해진다. 우리에게 좋은 골목길은 “만나보면 알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런 곳이다.
좋아하는 골목길이 누구인지에 대한 탐구는 골목길의 정의에서 시작한다. 골목길은 골목과 길의 합성어다. 골목은 어원이 불확실한 단어이기에 오히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건축가 천의영은 골목을 골짜기 같은 통로가 꺾이는 지점으로 이해한다. 꺾여가며 연결된 길이 골목길인 셈이다. 건축가 김영섭은 다르게 해석한다. 골목은 마을의 입구를 의미하고, 골목길은 마을의 입구에서 시작하는 동네 안의 길로 설명한다.
그럼 동네 밖의 길은 무엇일까?
동네가 하나의 독립된 마을로 형성됐던 농경 사회에서 동네 밖의 길이란 건,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신작로가 됐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어사전은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신작로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면, 골목길은 사람들이 오래 사용해오던 동네의 옛 길이다. 골목길이 신작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면서, 그 이미지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신작로가 근대를 상징한다면 골목길은 전근대, 그러니까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낙후된 장소로 각인되었다.
골목길이 항상 더럽고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서울의 부촌은 현대 기준으로 모두 골목 동네였다. 골목길 이미지가 악화된 것은 한국 전쟁 이후 서울 도심에 판잣집 빈민촌이 늘면서 시작됐다. 주택 공급이 대규모 이주민의 유입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잣집이 들어선 골목길 빈민촌이 서울의 주변 산록과 소개공지대를 차지했다. 도시학자 안창모는 빈민촌의 확대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쟁으로 인한 전재민, 남하 해온 월남 피난민, 거듭되는 홍수 피해와 화재로 인한 수재민과 화재민, 그리고 초근목피의 춘궁기를 견디다 못해 농촌을 떠나 상경해온 영세민들이 노숙을 피하기 위해 가장 손쉬웠던 주거 마련의 방법은 판잣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민아파트 건설, 집단이주정착지 조성 산업, 도시 재개발 사업, 신시가지 개발 등 정부가 1960년대 이후 주거 환경 개선과 주택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한 사업들이 도심 골목길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 정책이 공통적으로 도심의 골목길 빈민촌을 '현대적인' 대로변 상가와 고층빌딩 지역으로 대체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은 골목 동네를 주류 주거 문화에서 완전히 퇴출하는 계기가 됐다. 아파트 단지가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서 주민들은 북촌, 서촌, 명륜동, 동교동, 서교동 등 도심과 주변에 남아있던 중상층 단독주택 지역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쇠락의 길을 걷던 도심의 골목길 지역이 부활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중반이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중심으로 시작된 골목길 문화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으로 확산된 것이다. 2000년대 골목상권의 부활은 1960년대 이후 대세로 자리 잡은 주거와 쇼핑의 단지화에 역행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 후 골목 상권은 서울 전역, 그리고 지방도시로 번져 이제는 전통적인 대로변 도심 상권, 그리고 몰링(malling) 상권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상권으로 부상했다.
골목길의 문화적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발전한 현대 도시 생활에서 골목길이 추억과 사유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서울 문래동 철강 문화거리,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등 골목길이 문화 기반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골목길이 중요한 관광과 문화자원으로 부각되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둘러 경쟁적으로 골목길과 골목상권을 조성하고 있다. 대구의 근대문화거리, 전주의 한옥마을 등이 지역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골목 상권이다. 새로운 골목 자원의 발굴도 지역 정부의 관심사가 됐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시의 숨겨진 골목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시민이 발로 찾은 서울 골목길 명소 30선' 책자를 발간했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골목길을 좋아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은 공통적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걷기 좋은 골목길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거나 다녀도 혼잡하지 않은 1차선 또는 왕복 2차선 도로다. 그 길은 대개 3층 이하의 낮은 건축물에 둘러 쌓인 이면 도로일 가능성이 높다.
걷고 싶은 거리는 대로와 신호등에 의해 발걸음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다. 가능한 골목길과 골목길로 계속 연결되는 길이 걷기 좋은 길이다. 우리가 홍대를 좋아하는 이유도 골목길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홍대 지역은 골목길을 타고 연남동, 연희동, 상수동, 합정동으로 확장해 나갔다. ‘연결된 골목길이 왜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연희교차로 굴다리다. 연남동과 연희동을 도보로 연결하는 연희교차로 굴다리가 없었다면 홍대의 골목 상권은 연희동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걷기 좋은 길이 다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는 볼거리가 풍부해야 한다. 놀거리, 먹거리, 살거리 등 풍성한 볼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골목길이 우리가 좋아하는 길이다. 꽃과 나무가 장식하는 조경, 보도, 간판, 건축물이 자아내는 경관과 디자인, 공원, 미술관, 박물관, 벽화, 공공미술, 문화시설, 벼룩시장, 마을 축제로 구성된 문화 시설과 행사 등 골목길은 수없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골목길의 상업 시설이 골목 상권의 가장 큰 매력으로 부상했다. 서울시가 선정한 골목길 30선에 소개된 골목길은 남대문 칼국수 골목, 홍대 땡땡거리, 성수동 수제화거리 등 모두 개성 넘치는 상업 시설 중심의 먹자, 보자, 놀자 골목이다.
작은 숍들을 헤집으며 조금은 독특하고, 좀 더 아기자기하고, 좀 더 희소성 높은 물건들의 매력
작가 김미리와 최보윤이 표현한 것처럼, 흥미롭게도 독특한 골목길의 매력과 문화를 창출하는 상업 시설은 맛집, 독립서점, 공방, 보세 가게 등 고숙련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독립 가게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기업 브랜드 점포, 편의점 등 기업형 가게는 일반적으로 독립 가게가 골목길을 개척한 후 진입하는 가게로 골목길 문화와 정체성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소비자들이 골목길 속의 상업 시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골목길의 밀도와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쇼핑센터와 달리 골목길의 구조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게를 품을 수 있다. 가게 주인의 저마다의 취향대로 가게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고, 가게 자체도 지표면뿐 아니라 지상, 지하 등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다.
골목길 구조의 다양성과 밀도는 볼거리의 우연성을 유발한다. 골목길에서는 전혀 예측 못 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골목과 가게가 열린다. 입점 가게 지도만으로 가게의 위치와 종류를 파악할 수 있는 쇼핑몰과 백화점과 달리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은 사전에 예상할 수 없는 볼거리를 시사한다.
골목길과 상업시설의 상승 작용을 인식한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자)들은 새로 건설되는 쇼핑몰, 리조트, 아파트 단지에 골목상권을 임의적으로 재연하기 위해 노력한다. 뉴욕을 예로 들면, 28개 공장 건물의 벽을 터서 건설한 첼시 마켓은 뉴욕의 골목 시장을 그대로 옮겨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 건물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 건물의 통로를 동선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리드(Grid) 구조의 전통적인 쇼핑센터가 아닌, 밀도와 우연성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 상권 구현을 성공해냈다.
한국에서도 골목형 쇼핑몰이 늘어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대구 동대구역점에 전국의 유명한 골목 맛집들을 영입했을 뿐 아니라 식당가를 루앙 스트리트로 불리는 골목형 거리로 조성했다. 서울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도 식당가 거리를 연상시키는 미식 골목 '322 소월로'를 오픈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골목길이 가장 소중한 이유는 골목길의 정체성과 진정성 아닐까? 걷기 좋고 상업 시설만이 매력적인 골목길을 만든다면 골목길은 임의적으로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목길의 진짜 매력은 임의적으로 조성할 수 없는 진정성에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은 단순한 상업 지역이 아니다.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골목길의 가치를 세 가지로 표현한다.
다양한 건물, 걷고 싶은 거리, 안전하고 재미있는 장소
뿐만 아니라, 골목길에서는 쇼핑객만 만나는 백화점, 쇼핑몰과 달리 거기서 삶의 터전을 잡은 주민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여행자들이 원하는 살아보고 체험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골목길인 것이다. 일본의 근대 심미주의 작가 나가이 가후는 일찍이 골목길에서 서민의 삶이 온전히 보전된 문화의 보고를 목도했다.
골목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서민이 살아가는 공간, 해가 드는 큰길에서 볼 수 없는 생활이 숨어있다. 고독하고 덧없는 삶도 있다. 은거의 평화도 있다. 실패와 좌절과 궁핍의 최후 보상인 태만과 무책임의 낙원도 있다.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신혼살림이 있는가 하면, 목숨 건 모험에 몸을 맡기는 밀애도 있다. 골목은 좁고 짧기는 해도 풍부한 멋과 변화를 지닌 장편 소설과 같다 할 수 있으리라.
자, 이제 우리가 글머리에 물은 질문에 답할 시간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은 어떤 길인가? 여유롭게 걸으면서 흥미로운 작은 가게들과 고유의 특색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길이다. 골목길의 길이와 동네의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골목길로 이끄는 좋은 가게만 있다면 50미터의 짧은 거리도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독점할 수 있다.
마치 수제 펜 가게 하나로 우리의 감성을 뒤흔드는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처럼...
아래는 참고한 글입니다.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정은문고, 2016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 그린비, 2010
김미리·최보윤,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 RHK, 2010
안창모, "서울 도시 개발사"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한국의 도시문화 강의자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