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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19. 2021

서천 판교마을이 던진 군산-장항 문화권의 숙제

우리는 목포, 군산, 마산, 인천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새롭게 조성된 도시를 근대도시라고 부른다. 하지만 근대가 미친 영향은 이들 개항도시에 그치지 않는다. 개항도시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권이 구축된 대표적인 지역이 군산장항(군장) 경제권이다. 이 경제권에는 군산과 장항과 같은 근대도시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철도를 매개로 서천 판교마을 같은 근대마을도 만들어졌다. 그동안 근대도시들은 일본식 건축물과 근대문화를 복원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해왔다. 근대마을은 다를까? 근대도시와 다르다면 근대마을은 어떤 방법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까?


마을에도 골목상권이 가능하다


근대마을은 근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을 일차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현재 세계적인 관광 트렌드는 소도시와 작은 마을에 유리하다. 코로나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나 대도시 중심부보다는 인적이 뜸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장기 체류하는 디지털 노마드식 여행이 인기다.


작은 마을에서 여행자는 그 마을만이 제공하는 작고 사소한 일상을 즐기기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컬리티는 작은 마을 여행의 중요한 요소다. 여행자가 찾는 로컬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필자는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에서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이 어떻게 도시와 마을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로컬 문화와 가치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을 브랜딩과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로컬 콘텐츠는 또한 상업시설에 이식돼야 한다. 농촌의 작은 마을도 2-30대가 여행 가듯 방문하는 골목상권을 조성해야 한다. 골목상권의 가장 큰 특색은 업종이다. 외국 음식,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공방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업종이 모여있어야 골목상권이라고 불린다. 골목상권이 상권으로 주목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30개 골목상권 업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한 상권도 처음부터 많은 가게로 시작하지 않는다. 골목상권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업종은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등 4개 업종이다. 문화자원만 풍부하면 아무리 작은 마을도 이렇게 4개 업종으로 매력적인 상권을 조성할 수 있다. 월정리, 사계리, 종달리, 세화리 등 제주의 수많은 리단위 마을뿐 아니라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양양시 현남면 죽도해변, 홍성군 홍동면 갓골마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완주시 고산면 읍내리,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등 많은 농촌 마을이 골목상권 업종을 보유한 작은 상권으로 관광객을 유치한다



판교마을의 문화 정체성


판교마을은 이 마을이 속한 군장권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군장권은 일제강점기에 새롭게 재구성된 경제권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아니면 그 이전에도 금강을 중심으로 통합된 경제권으로 기능했다. 2010년 군산 장항권 광역개발계획에 따르면 군산장항권에는 충남지역 2개시 2개군(보령시, 부여군, 서천군, 논산시 - 강경읍, 연무읍, 채운면, 성동면), 전북 지역 3개시(군산시, 익산시, 김제시)가 포함됐다.


오랫동안 한 경제권으로 기능하다 보니 언어와 문화도 통합됐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사투리가 쓰이고, 인구와 인재 교류도 활발하다. 과거에는 지역 인재들이 출신 지역 관계없이 군산상고, 강경상고, 공주고 등 지역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군산-장항 통합 문제는 계속 논의되고 있는 이슈다. 장항 주민은 대체로 찬성하나 서천 내부 지역 주민들은 반대한다고 한다. 음식문화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대, 젓갈 등 지역 식자재가 지역 전역에서 유통된다. 충청도에 속한 서천의 음식 수준이 높은 것도 전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판교마을과 군장권 건축물의 중심 테마는 쌀이다. 정미소, 양조장, 미곡창고 건물이 많이 남았다. 서천군은 판교마을의 근대, 현대 건축 자원을 바탕으로 '시간이 멈춘 마을'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재생하는 5개 건축물이 상업적으로 성공할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5개 거점 공간을 공공 문화 시설로 운영해 마을의 문화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다음 민간 기업 유치로 판교마을을 머물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 베이커리, 커피전문점,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등 민간 앵커 스토어를 유치하고, 민간 창업 지원을 위한 장인대학 운영과 로컬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지원이 필요하다.
 


판교마을의 미래와 장항의 미래


판교마을과 장항은 장항선으로 연결돼 있다. 물리적, 문화적 거리를 고려할 때 두 지역은 통합된 방식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장항도 판교와 비슷한 상황이다. 1970년대까지 지역 경제를 주도한 산업이 쇄락해 근대문화 자원으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장항 경제의 3대 축은 장항역, 장항항, 장항제련소였다. 장항역은 외곽으로 이전되고, 장항항은 군산항, 평택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장항제련소 생산 기능은 울산으로 옮겨졌다. 남은 것은 압도적인 규모의 미곡창고 단지다. 돌이켜보면 창고 단지를 체계적으로 보호했으면 전체를 재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창고들은 개별적으로 재건축되거나 방치됐다. 서천군이 이들 중 4-5개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했으며 남은 창고도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격자형 거리 구조로 쾌적한 장항 중심부의 상태도 생각보다 양호하다. 프랜차이즈라곤 편의점, 파리바게트, 이디야커피 정도며 거리는 대부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음식 수준은 상당히 높다. 과거 전성시대 실력이 남아서 그런 것 같다. 아쉽게도 1세대 식당 중 상당 수가 세대교체를 하지 못해 사라진다고 한다.


장항도 로컬 크리에이터가 들어가야 합니다. 건축 자원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광어, 도미, 박대, 아구, 쌀, 포도, 블루베리, 도토리 등 서천의 압도적인 식자재를 MZ세대 취향에 맞게 새롭게 해석한 로컬푸드 외식업이나 식가공산업이 유망해 보인다.



도시문화 관점에서 장항의 가장 큰 제약은 대학의 부재다. 서천군은 장항제련소 부근 공터에 한국폴리텍대학 건립 부지를 마련했지만, 도심에서 떨어진 그곳이 적절한 장소라고 보기 어렵다. 그 대신 장항 도심에 작은 캠퍼스를 조성해야 한다. 이미 문화공간으로 조성된 다수의 창고 건물을 활용하면 작은 대학은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


판교마을 사례가 제시하는 미래는 권역단위 지역재생이다. 근대도시와 주변 마을은 철도, 하천, 항구로 연결되어 있으며, 중심부 도시만큼 매력적인 근대 자원을 보유한 판교마을과 같은 근대마을은 권역 전체의 재생에 기여할 수 있다. 지금 막 재생을 시작하는 판교마을의 1차적인 과제는 마을 상권 활성화다. 마을 상권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장항과의 연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중교통을 통해 접근성과 연결성을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농업, 해산물, 미곡창고 등 공동 자원을 바탕으로 도시와 마을이 공동으로 로컬 브랜드를 개발하는 사업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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