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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08. 2021

철강도시의 상상력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도시는 자생적인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철강산업의 중심지인 포항도 더 이상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2015년 포스코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내는 등 포항을 지탱해온 철강산업이 현재의 불황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이 자생적인 산업 기반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창조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포항 지역 기업과 기업인이 포항에서 새로운 글로벌 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세계의 작은 도시를 연구한 <작은 도시 큰 기업>은 작은 도시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 개방성, 세계화, 기업가 정신을 지닌 리더를 제시한다. 특히 기업가 정신과 지역 문화가 접목할 때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크다. 포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포항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산업과 기업을 키워야 한다.

철강도시 포항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철강 문화가 포항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포항에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철강 문화와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 정체성이 포스코와 포스코로부터 파생된 철강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포항이 아직 포스코에 의해 시작된 철강 문화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큼 생활화하지 못한데 있다. 포스코가 강조하는 것과 같이 "철과 우리의 삶은 오랜 연관성과 친밀성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문화와 문명을 창조해 왔다."

포항은 철강 문화와 산업을 통해 도시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 철강 건축과 디자인 산업, 신소재 생활과 레저 산업 등 철강 문화에 기반해 개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무궁무진하다.

포항은 철강도시지만 외관은 여느 지역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웅장한 철골 구조물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제철소 지역을 벗어나면 철강도시의 면모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포항과 포항시민은 철강도시인 포항에 왜 에펠탑, 골든게이트 브리지와 같은 철조 랜드마크가 없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스틸하우스, 스틸 아키텍처, 스틸아트가 공공 건축물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포항다운 도시 디자인이 아닐까? 한국, 그리고 세계를 대표하는 철강 건축 도시가 된다면 포항은 자연스럽게 스틸하우스·스틸 아키텍처 산업의 중심지, 철강·신소재 건축자재의 테스트 시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충북 음성에 소재한 철박물관 정원의 철판 지붕 정자


포항이 한눈을 판 사이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이 철강 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산업을 개척하고 있다. 철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철 박물관’은 포항이 아닌 충북 음성에 있다. 철 박물관은 특이하게 철조 구조물로 야외 전시장을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철제 가로등, 철판으로 만든 정자 지붕, 스틸하우스와 스틸아트 등 철조 구조물로 단장한 철강도시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


와인병을 주변 철공소의 파이프 더미처럼 전시한 서울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한 식당



철을 소재로 한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조성한 지역도 있다. 서울 문래동의 문래창작촌이다. 철공소가 몰려 있는 지역 곳곳에 공방, 작업실, 갤러리, 커피 전문점, 카페, 식당, 바가 들어서며 상권이 만들어졌다. 이 지역의 가게 대부분이 철강 소재로 실내외를 장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문래창작촌은 스틸 인테리어와 스틸 건축의 생활화와 산업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소재 생활·레저 산업 역시 철강 문화를 기반으로 개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이다. 등산장비, 골프채, 자전거 프레임이 보여주듯이 신소재는 생활·레저 제품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핵심적 요소다. 포스코가 신소재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신소재 소비재를 직접 생산하거나 관련 기업을 지원한다면 포항이 신소재 생활과 레저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철강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포항의 일부 지도자들은 포항의 미래를 철강과 무관한 첨단산업에서 찾는다. 이들은 철강도시에서 의료와 IT 산업 중심지로 변신한 피츠버그를 포항의 롤모델로 제시한다.

피츠버그가 포항에 적합한 모델일까. 철강산업을 포기한 피츠버그와 달리 포항은 철강 분야에서 아직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산업을 철강 관련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확대하는 정책이 포항의 비교우위를 살리는 산업정책이다.

스틸아트와 스틸 아키텍처로 장식된 포항운하


포항은 최근 포항운하를 정비하면서 스틸아트와 스틸 아키텍처로 주변 공간을 장식했다. 뒤늦게나마 도시 경관 정체성을 오렌지색, 은색, 고동색 등 철의 색에서 찾은 것이다.

포항 미래에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포스코는 철강이 다시 한번 우리의 삶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하고, 포항은 신소재를 활용한 문화산업과 생활산업을 육성하는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철강 문화 라이프스타일 도시, 이것이 바로 포항과 포스코가 지향해야 하는 창조도시 모델이다.



출처: 조선비즈, 2016.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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