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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14. 2021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대안 경제학 들어보셨나요?


로컬 현장에 가면 생각보다 많은 로컬 비즈니스 종사자가 로컬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인식한다. 아마도 로컬을 다양한 대안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한 일본 문헌의 영향을 받아서인 것 같다.


시장경제 안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전형이라면, 대안 경제는 환경, 커뮤니티, 지속가능성, 자아실현 등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고, 경제 활동 방식에서도 기업의 독자 활동보다는 협동, 상생, 연대, 공유 등 대안적 행동을 강조한다.


방대한 대안 경제학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어디서 시작하던 꼭 한 책을 거쳐가야 한다.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다. 슈마허의 작은 것은 작은 일, 작은 조직, 작은 지역이다. “인간은 작은 존재임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p.204).”


그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환경과 인간성의 회복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모든 사람이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건설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누가 환경과 인간성 가치를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슈마허가 주장한 대로 산업사회 엘리트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명분에 빠져 산업화 과정에서 이 두 가치를 경시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감성적 제목의 책으로 경고한 그가 고전으로 읽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현대 기술사회에 사는 우리가 슈마허의 대안적 가치는 모르겠지만 대안적 해법까지 수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미 삶의 질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소셜 벤처, 임팩트 투자사 등 대안적 가치를 지향하는 순수 민간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


현재 진행되는 기술의 변화를 보면 앞으로 더 많은 기업과 분야가 시장경제에서 슈마허 가치를 실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PC, 인터넷, 스마트폰, 플랫폼, 블록체인 등 1970년대 이후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은 이제 큰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작은 지역에서 작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문화 변화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크리에이터 경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라인 셀러, 인플루언서 등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해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의 일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환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슈마허의 지속 가능성 기준을 만족한다.


SNS, 위치 기반 서비스를 활용해 지역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공간을 운영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기술 발전의 혜택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을 한다.


그렇다면 크리에이터 경제로 발전하는 로컬 비즈니스를 대안 경제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의 발전으로 로컬 비즈니스가 굳이 협동 경제나 커뮤니티 자산화를 수용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슈마허의 언어를 빌리면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와 같은 작은 것이 시장경제 안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로컬이 실제로 크리에이터 경제로 진화한다면, 로컬을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닌 자본주의의 미래로 봐야 한다.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

기술이 충분히 진보하지 못한 시대에 활동한 슈마허는 적정기술, 대기업 소유권의 분산, 커뮤니티 자산화, 지역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의 가능성을 찾는다.


특히,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는 자급자족 지역경제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서 그 지역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경제생활이다(p.78).” 저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지역의 규모를 최대 50만 명으로 산정하고, 각 지역이 내적 응집력과 정체성을 확보해야 주체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슈마허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좋은 일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슈마허는 초지일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노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위해서만 일하고 여가 시간에서만 즐거움을 기대–대부분 절망적으로–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p.31)”고 주장한다.


슈마허가 상상한 좋은 일은 자영업과 협동이다. 기술이 허용한다면 “사람들은 자영업자가 되거나 생존과 지역 시장을 위한 자율적인(self-governing) 협동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p.48)”이라는 헉슬리(Aldous Huxley)의 예측에 동의한다.


슈마허 철학의 기원

슈마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조나선 포리트는 추천사에서 그를 좋은 일의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을 강조한 윌리엄 모리스, 유기농법과 토양 비약도 유지를 중요한 가치로 제시한 밸푸어와 더블데이, 그리고 산업사회의 한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멈포드와 간디의 사상을 계승한 인물로 설명한다.


하지만 슈마허 본인은 불교 경제학이 물질주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불교 철학에 애정을 보인다. 경제 활동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불교가 강조하는 종교적, 정신적 해탈, 그리고 중용에서 찾는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1960년대와 1970년대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서구 지식인도 선불교에서 인간성과 창의성의 본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은 어떨까도 궁금하다. 참선과 자기 수양에 치우쳐 현실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약한 한국 불교에서도 슈마허 방식의 공동체 경제를 실천하는 불자들이 있다. 남원 산내면 실상사가 운영하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님, 신도, 주민을 포함한 100여 명이 어린이집, 학교, 농장을 함께 운영한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지속 가능한 경제

공동체 경제만이 슈마허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소개한 크리에이터 경제도 슈마허 가치와 비전에 부합한다.


슈마허가 크리에이터 경제라는 단어는 쓰지 않지만 크리에이터 경제의 도래를 예측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기술과 크리에이터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허용하면 인간은 자영업이나 협동을 선택한다는 그의 전망에서 그가 자영업과 협동을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인식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크리에이터로 만드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 정확하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 기술(p.47)"이다.


슈마허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공간과 건축 환경의 중요성이다.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온라인이 대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간과 장소가 로컬 비즈니스를 큰 조직에 자유로운 독립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크리에이터 경제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웹 3.0과 탈중앙화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크리에이터 중심의 플랫폼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진행 중인 일이다. 오프라인 기술도 다수의 로컬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만드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슈마허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 '완전체' 크리에이터 경제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미래다.  



1차 수정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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