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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11. 2021

노르베리 호지의 '로컬'은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코로나 위기로 인해 생활 반경이 좁혀지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동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동네에 대한 관심은 집 근처(Home Around) 소비, 동네 주민 간 중고품 거래,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 등 동네 경제 활동의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들도 새로운 수요를 만족하게 위해 발 빠르게 당근마켓, 네이버 이웃서비스, GS25 우리동네 딜리버리 등 동네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한다.


정치권도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생활권 재편에 부응하여 동네 중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콤팩트 도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국민의 힘의 조은희 후보는 콤팩트 도시 모델로 각각 ‘21분 도시’와 ‘25개 다핵도시’를 제안한다. 짧은 시간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접근할 수 있는 도시가 콤팩트 도시다.


한국의 도시가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중앙 도시는 오랫동안 유지한 중심부 기능을 상실한다. 경제, 생활, 거버넌스의 중심이 중앙 도시(의 중심부)에서 중앙 도시나 지역의 생활권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한 자치분권이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치분권의 시간이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 생활권의 미래, 로컬을 생활권으로 정의한다면 로컬의 미래를 논의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가 ‘강요’하는 로컬화를 어떤 비전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



노르베리 호지의 로컬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에도 학계와 언론에서는 세계화의 대안으로 로컬화를 논의했다. 대표적인 저서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로컬의 미래’다. 노르베리-호지는 이 책에서 로컬화를 “현재 거대 초국적 기업과 은행에 유리한 재정과 여타 지원을 끊고 지역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고 수출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것”으로 정의한다(p65). 그가 원하는 로컬은 분권화, 지역화된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다. 지역화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줄이고 환경과 공동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로컬화의 본질이다.


노르베리-호지가 로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세계화의 폐해다. 19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가 대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의 이동, 즉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세계 시장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기회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평등의 원인이었다. 세계화를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산업, 노동자는 세계화에서 큰 혜택을 얻었으나, 그렇지 못한 지역, 산업, 노동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을 지불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지식인들은 '과도한'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 불평등, 금융 불안정, 환경 파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했고, 그중 많은 이들이 로컬화와 지역 공동체 복원을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로컬화 방법이다. 노르베리-호지는 책에서 고립주의, 농경사회 복귀를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도시화, 산업화, 무역, 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은 그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한다. 전작 ‘오래된 미래’에서 소개한 인도 라다크와 같은 농업과 공동체 기반의 전통사회를 이상적인 로컬로 생각하는 것이 본심에 가깝다. 그는 실제로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컬 식량 경제의 재건 등 농업사회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한다(p.138).  



한국 로컬의 미래


노르베리-호지가 제안하는 ‘자급자족 지역경제’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다. 특히, 중앙 중심 경제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 한국에서 더욱 어렵다. 정치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자급자족 지역경제’가 지역과 지역 주민에 좋은 대안인지도 확실치 않다. 세계화가 없이 과연 유럽과 일본의 지역 산업과 로컬 브랜드가 생존할 수 있었을까? 와인, 치즈, 공예품 등 로컬 브랜드를 실제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지역 주민이 아닌 외지인이거나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세계화를 통해 지역 산업과 브랜드가 판로를 찾은 것이다.  


노르베리-호지의 ‘자급자족 지역경제’가 한국 로컬의 미래가 아니라면, 한국은 어떤 로컬 모델을 추구해야 하는가? 한국 로컬의 미래를 한국 맥락에서 다시 개념화하면, 현재 한국 로컬이 선택해야 하는 대안은 건축환경, 대도시 관계, 산업 구성 등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한국 로컬의 건축환경이다. 한국 로컬을 어떤 도시로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다. 한국의 선택은 신도시와 원형 유지 중 하나다. 로컬을 신도시로 재개발할지, 아니면 원구도심 또는 농촌 마을 형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재생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가 중심부와의 관계다. 한국 로컬은 대도시나 대도시 중심부의 베드타운/근교농업도시, 즉 대도시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도시가 될지, 아니면 대도시에 독립적인 도시가 될지를 결정해야 한다. 더 독립적으로 간다면, 직주락이 가능한 생활권/자족도시, 노르베리-호지가 선호하는 자급자족 도시 등 다양한 수준의 독립성을 선택할 수 있다.


세 번째가 산업 구성이다. 현재와 같이 지역산업을 국가산업체제에 귀속된 산단으로 운영할지, 아니면 국가산업과 독립된 산업을 육성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중간 단계로 국가산업은 유지하되 지역 상권 중심으로 지역의 자원과 장점을 활용한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할 수 있다.


필자가 ‘골목길 자본론’,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등 ‘로컬 비즈니스 3부작’에서 제안하는 로컬 모델은 세 개 항목에서 각각 원형, 자족도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선택한, 즉 원형-자족도시-로컬 브랜드 생태계 체제다. 기존 도시의 건축환경을 유지하면서 골목상권 중심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 이를 통해 생활권/자족 도시에 필요한 일자리, 주택, 교육 등 도시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이 선호하는 신도시-베드타운-국가산업 체제보다 로컬화 수준이 높지만, 노르베리-호지의 원형-자급자족도시-지역산업 체제보다는 현격히 낮은 '중도적' 모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노르베리-호지가 강조하는 로컬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할 것이다. 총론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어도, 대안 무역, 로컬 금융, GPI, not GDP, 세제 개혁, 재생 에너지 분산, 다품종 유기농 생산, 소규모 로컬 생산자를 위한 규제 완화, 토지 사용 규제 개선, 시장과 공공장소 투자, 로컬 미디어와 로컬 엔터테인먼트 지원, 로컬 기반 교육, 중앙 집중형 의료 체계의 개선 등 그가 제시한 각론과 대안은 대부분 지역 공동체가 약화된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합리적인 대안이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지역 사회가 풀뿌리 운동을 통해 로컬 금융, 바이 로컬, 로컬 기업, 로컬 에너지, 로컬푸드, 로컬 미디어, 대안교육, 로컬 기반의 보건 의료, 로컬 계획 공동체의 건설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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