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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14. 2020

라이프스타일에서 미래를 찾습니다

한국의 지역은 연구자의 무덤일까? 수도권 중심 문화의 뿌리가 너무 깊어, 어떤 지식과 이론도 이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필자는 지역의 미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한국에도 로컬 지향의 트렌드가 확산된다. 가장 가시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제주의 부상이다. 유명 연예인 이효리가 2010년 제주로 이주하면서 제주이민 붐을 촉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이민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가 2013년 지역발전 연구를 시작했을때 선택한 미래 지역키워드는 라이프스타일, 골목길, 그리고 로컬이었다. 이 세 단어가 한국의 지역을 바꿀 것으로 믿었고 제주이민을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제주이민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라이프스타일과 로컬이다.


지역발전의 목표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한다. 탈산업화 시대에는 독립적인 기업생태계와 문화창조산업의 육성이 목표가 돼야 한다. 균형발전이 아닌 독립발전이 지역에 필요한 발전 모델이다.


그 후 연구는 두 트랙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라이프스타일 연구, 또 하나는 로컬 창업 연구다. 둘 다 로컬 창업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으로 귀결되지만, 연구 범위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라이프스타일 연구가 한국이 직면한 탈산업화 도전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지역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면, 로컬 창업 연구는 지역에서 탈산업화의 미래를 개척하는 창업가와 기업의 스토리다.


첫 번째 책이 2014년에 출판된 <작은 도시, 큰 기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국 지역이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면 기업 생태계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로벌 대기업을 잉태한 작은 도시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책에서 소개한 사례는 모두 미국, 유럽, 일본의 '작은' 도시였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의 핵심 메시지는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스타벅스, 나이키, 이케아 등 '작은 도시 큰 기업'은 공통적으로 출신 지역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했고,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창업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았다.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이 지역 정체성을 규정할 뿐 아니라 지역 산업의 소재로 중요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은 탈산업화 시대의 모든 도시에게 중요한 과제다. 모든 도시가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개발하고, 이를 인재 유치와 지역산업의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도시의 미래는 라이프스타일이다'라고 말하며 책을 마친 이유였다.


두 번째 책인 <라이프스타일 도시>에서는 '작은 도시 큰 기업' 논리를 한국 도시에 응용했다. 외국과 달리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국내의 작은 도시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가능성 중심으로 지역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논의했다. 제주 화장품과 녹차 산업, 양양의 서핑산업, 강릉의 커피산업을 '작은 도시 큰 기업'을 배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지역산업으로 소개했다.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또한 골목길과 골목상권을 지역 라이프스타일, 로컬 브랜드의 중심지로 주목했다. 2000년 중반 서울을 중심으로 2-30대가 여행을 떠나는 골목상권이 부상했고, 이곳을 도시산업 생태계로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상권이 도시산업 생태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과 다른 도시의 골목상권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또 쇠락하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골목길 자본론>(2017)이다.


라이프스타일 연구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는 2014년 <작은 도시 큰 기업>, 2016년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후속 편이다. 필자의 지역발전 연구에서 여러 주제를 연결하는 책이기도 하다. 전작이 라이프스타일을 지역과 도시산업의 원천으로 소개했다면, 이번 책은 라이프스타일의 역사와 인문학적 기원을 탐구한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라이프스타일 혁신은 주류 문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반문화의 연장이다. 보헤미안, 히피, 보보, 힙스터, 노마드 등 서구에서 19세기 이후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반문화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반문화가 주는 새로운 기회가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의 주요 관심사다.


미래 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사회과학적 이해다. 현재 많은 미래 인재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일과 비즈니스를 찾는다. 자신이 선택한 라이프스타일의 사회과학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때, 라이프스타일을 소명으로서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래 왔듯이 이 책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의 지역성을 강조한다. 6개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도시와 기업을 소개하여 라이프스타일로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지역 산업을 제시한다. 라이프스타일에서 생업의 기회를 찾고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미래 인재에게 라이프스타일로 성공한 도시와 산업은 롤 모델이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커뮤니티다.


필자의 지역 연구는 궁극적으로 로컬 창업 가이드북을 작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라이프스타일과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역사, 골목상권의 가능성과 미래 등 지금까지의 연구는 결국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로컬 창업가, 그리고 로컬 창업가를 육성하는 지역 정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연구다.


필자가 작업 중인 마지막 책은 '로컬 창업자의 일'(가제)이다. 사례 중심의 로컬 크리에이터 입문서로 기획한다.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로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관련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고 있으나, 로컬 크리에이터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교재는 아직 정리돼 있지 않다.


스타트업과 스몰 비즈니스와 비교해 로컬 크리에이터의 차별성은 지역성과 콘텐츠다. 지역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첨단 기술과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해 혁신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경쟁력이다. 이 책은 로컬 창업가와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로컬 비즈니스 성공에 필수적인 지역성과 콘텐츠 역량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분석 툴을 소개할 것이다.


‘로컬 창업가의 일’에서 제시할 이상적인 로컬 크리에이터는 인문학으로 세계관을 세우고, 사회과학으로 지역과 상생하는 마인드를 키워 경영학으로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 책은 목차도 정체성 확립, 로컬 경제의 이해, 로컬 비즈니스 모델 등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요구되는 ‘일’의 순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지역과 상생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사업뿐 아니라 도시에 대해서 명확한 철학이 필요하다. ‘로컬 창업가의 일’에서 모델로 제시할 도시는 미국의 포틀랜드다. 스스로를 작은 창작자와 메이커의 도시로 브랜딩하는 포틀랜드는 지속 가능성과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문화와 도시산업을 개척해 창조도시의 모델로 부상한 교과적인 도시다. 한국의 포틀랜드는 어디일까? 한국의 로컬 크리에이터가 개척할 다수의 ‘포틀랜드’가 번성하는 한국 도시의 미래를 기대한다.


로컬 크리에이터 연구의 맥락으로 설명하면, '로컬 창업가의 일'은 로컬 창업 3부작의 마지막 책이 된다. <골목길 자본론>이 1부,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가 2부가 되는 셈이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가 로컬 창업가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하고 <골목길 자본론>이 로컬 창업가가 활동하는 로컬 경제 환경을 설명한다면, '로컬 창업가의 일'은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 상황에서 어떤 로컬 비즈니스가 가능하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로컬 창업가의 일'이 2021년에 출판된다면 라이프스타일, 골목길, 로컬 이렇게 세 단어로 시작된 필자의 지역발전 연구는 일단락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말을 찾는데 오랜 시간, 많은 글을 쓴 것 같다. 2013년에 지금 아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책 하나로 필자가 '로컬 크리에이터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 탈산업화 사회의 지역발전론을 완성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필자의 강연은 항상 ‘라이프스타일에서 미래를 찾는다’는 구호로 끝난다. 한국 지역을 미래를 라이프스타일 변화에서 찾는다는 의미다. 그동안 응원해 준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필자의 연구 어젠다 관점에서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를 읽으면 집필 의도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바람에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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