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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17. 2020

왜 자본론인가?

<골목길 자본론> 독자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왜 제목에 자본론이 들어갔는지 궁금해한다. 이 질문을 하는 분 중 상당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염두에 두고 <자본론>과 <골목길 자본론>의 관계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발전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된다고 전망했다면, 골목길 자본론은 골목길 경제가 생산양식이 초래한 내부 모순 때문에 소멸한다고 예측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은 골목에서 자본이 형성되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다는 말을 하는걸까? 또 아니면, 히라카와 가쓰미와 같이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것일까.


저자로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출판사가 마지막 단계에서 <골목길 자본론>을 제목으로 제안했을 당시 이 책이 마르크스와 연결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원제는 골목길 경제학이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경제일반 서적으로 분류돼 마르크스 사상 관련 책과 같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제목을 잘 정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솔직히 경제일반보다는 도시인문학이나 도시경제학 서적으로 어울리는 책이다.


출판사가 자본론 단어를 선택하고 저자가 이 단어에 동의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골목길 자본론>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골목 장인이 마즈다 무네야기의 <지적 자본론>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마즈다 무네야키는 1983년 오사카에 처음 문을 열어 30년 만에 일본 전역에 1400여 개 매장을 내고 5000만 명 가까운 회원을 모집한 서점 기업 츠타야의 창업자다. 그의 지적 자본론은 츠타야 서점이 파는 것은 책이 아니고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무네야키의 자본론은 이렇게 전개된다. 라이프스타일을 팔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데 그 능력은 경험, 지식, 그리고 디자인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소품목 대량생산과 다품목 소량생산이 모두 가능한 고도의 소비사회에서 품질과 제품 디자인만 제공하는 전통적인 상품 개발과 판매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각 고객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안해주는 것, 그 기획 능력이 새로운 경제가 요구하는 지적 자본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이러한 新자본론은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시기에 주목을 받는다. 1960년대 미국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인적 자본>에서 “교육이나 훈련에 대한 개인의 투자는 기계나 공장 등에 대한 기업의 투자와 동일하다”라고 주장했다. 인적 자본론은 인간의 노동을 단지 근로자 수나 근로 시간으로 측정하는 생산 요소로만 이해하는 기존 경제학을 비판한다. 대신 노동에 대한 투자, 즉 근로자의 교육 수준과 훈련 정도를 생산성과 소득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자본으로 인식한다.
 
1990년대에 경제와 사회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자본론은 사회적 자본론이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과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저술로 새롭게 조명받은 개념이다.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은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와 협력에 달렸지만, 경제학에서는 공동체 능력을 생산요소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퍼트남과 후쿠야마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구성원들의 공유된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 일체의 사회적 자산을 포괄하여 사회적 자본으로 정의했다. 사회적 자본은 경제학에서 이제 물질적 자본, 인적 자본에 뒤이어 경제 성장의 중요한 자본으로 강조되고 있다.
 
<골목길 자본론>은 어떤 자본을 강조할까? 바로 골목길 자본, 즉 골목길에서 창출되는 문화 자본, 그리고 이에 필요한 지적 자본의 총합이다. 성장과 혁신 중심지로 기능하는 도시가 물리적 자본,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과 함께 꾸준히 개발해야 하는 자본, 미래 도시가 요구하는 자본이다.
 
오랫동안 신도시 개발과 자동차 인프라 구축에 치중한 결과 한국 도시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창출하지 못하는, 독특한 개성과 매력이 결여된 건조하고 획일적인 '자동차 중심 도시'로 전락했다.
 
다행히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상권이라기엔 소박한 골목길에 매력적인 가게, 카페, 음식점이 들어서고,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것, 개성 있고 특별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골목길에서 놀고, 먹고,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대형마트, 백화점, 아웃렛 등 대규모 유통단지에서 쇼핑하는 것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서 시작되어 2000년대 중반 급성장한 골목길 상권은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등 현재 서울 시내 50여 개 지역에 이른다. 전주 한옥마을,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경주 황리단길, 해운대 해리단길, 대구 김광석길 등 다른 도시의 골목도 관광지로 부상했다.
 
골목길은 이제 단순한 쇼핑 장소를 넘어 생활과 산업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골목문화와 독립문화의 중심지 홍대에 스타트업이 들어선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현재 그 수가 200여 개(로켓펀치 등록업체)로 늘어나, 홍대는 이제 강남 테헤란밸리와 구로 G밸리와 더불어 서울의 3대 창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홍대 젊은이들은 예술과 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산업이 형성된 이 지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 아직은 소수지만 홍대의 ‘다운타우너’들은 미래 도시 문화를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다.
 
왜 골목길일까? 일본의 근대 심미주의 작가 나가이 가후는 골목길이 서민의 삶이 온전히 보전된 '문화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골목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서민이 살아가는 공간, 해가 드는 큰길에서 볼 수 없는 생활이 숨어 있다. 고독하고 덧없는 삶도 있다. 은거의 평화도 있다. 실패와 좌절과 궁핍의 최후 보상인 태만과 무책임의 낙원도 있다.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신혼살림이 있는가 하면, 목숨 건 모험에 몸을 맡기는 밀애도 있다. 골목은 좁고 짧기는 해도 풍부한 멋과 변화를 지닌 장편 소설과 같다 할 수 있으리라."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컵스는 골목길의 가치를 세 가지로 표현한다. 다양한 건물, 걷고 싶은 거리, 안전하고 재미있는 장소. 쇼핑객만 만나는 백화점과 쇼핑몰과 달리, 골목길에서는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은 주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살아보고 체험하기를 원하는 요즘 여행자들이 도시마다 골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풍요로운 골목이 가득한 도시는 단순히 옛 정취를 느끼며 향수에 젖는 치유와 힐링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다양한 도시문화를 제공한다는 것은 곧 창조적인 인재와 그들이 도전하는 창조적인 산업을 유치할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 경제의 다양한 공공재를 창출하는 골목길, 여기에서 활동하는 창업가의 지적 자본을 하나의 자본으로 이해해야 한다. 골목길은 기억, 추억, 역사, 감성을 기록하고 신뢰, 유대, 연결, 문화를 창조하는 사회자본인 것이다.


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17110813195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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