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힘든 지역을 위한 좋은 경제학’으로 읽었다. 실험 기반의 접근법(무작위 통제 실험, Randomized Controlled Test, RCT)으로 빈곤 퇴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책은 개도국과 선진국의 빈곤자뿐만 아니라 이민자, 난민, 힐빌리(미국 중남부 백인 노동자), 중산층 등 다양한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솔로우, 루카스, 로머의 경제성장이론 등 많은 경제학의 통념이 현실에서 무너짐을 보여준다.
배너지와 뒤플로의 ‘좋은 경제학’은 한국 지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일관된 서사를 위해 제조업 사양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미국 산업도시의 노동자 문제 중심으로 ‘좋은 경제학’을 설명하고자 한다.
무역 피해 노동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에 대해 기존 경제학은 그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그들은 고향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책의 상당 부분을 왜 노동자가, 그가 난민, 농부, 저숙련 노동자든 관계없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한다.
왜 노동자는 고향을 떠나지 않을까? 저자는 다양한 원인을 논의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이중 새로운 것은 없다. 지역사회와 가족의 유대, 이주에 따른 위험과 불확실성, 이주 비용 등 우리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요인이다. 그동안 경제학이 자유무역의 효과를 평가함에 있어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 세계의 노동 비이동성을 간과한 것이다.
무역 피해 노동자가 피해 지역에 머무르고,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같은 지역의 다른 산업으로도 이동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정부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방치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공동체 파괴는 질병, 기대 수명, 인구, 환경 등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유발한다.
배너지와 뒤플로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안은 보편기본소득이다. 조건을 달지 않는 소득 이전 프로그램이 복지에 대한 낙인 효과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보편기본소득 정신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현재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무역 조정 지원금(Trade Adjustment Assistance)을 (대폭) 확대하고 수혜 조건을 (대폭) 완화하는 정책을 추천한다.
보편기본소득과 더불어 새롭게 제시하는 대안이 장소 기반(place based) 정책, 즉 지역발전정책이다. 저자는 지역 지원보다는 개인 지원을 선호하는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면서, 고향에 머물고 싶은 노동자가 머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유럽의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모델이다. 공동농업정책이 농사를 짓는 농부를 지원하는 것처럼, 지역발전정책으로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고 실업자가 지역 상권에서 창업하는 것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된 상권과 제조업 기반이 농지와 숲과 마찬가지로 사회에게 공동재를 제공하는 환경이 될 수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농부가 수공예 스타일의 농업을 선택하는 것처럼, 정부 지원을 받는 노동자도 창의적인 자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청년 창업자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파리의 미시옹 로칼(Mission Locale)을 성공적인 일자리 정책 사례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청년들이 자영업을 선택하는 이유다. 그들은 한결같이 존엄, 자존감, 자율성이 중요해 자영업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발전정책이 폐쇄적으로 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날 의사가 있는 노동자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 지역경제 모델로 제시되는 자급자족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도 간디와 모택동 사례를 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논리도 경계한다. 소기업은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쇠락하는 산업도시의 노동자를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그들이 트럼프와 같은 우파 포퓰리스트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그들은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가난한 백인 노동자를 인종주의자로 비판하기 전에, 그들이 그런 편견을 갖게 된 구조적 원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절망적인 경제적 상황에 처한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이민자와 소수자에게 관대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확산은 실효성 있는 소득과 일자리 정책으로 백인 노동자들이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저지할 수 있다.
배너지와 뒤플로의 주관심사는 빈민층 구제다. 가난한 노동자를 돕기 위한 다양한 지역발전정책을 논의하지만, 지역발전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지역발전정책이 빈민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국가경제 전체를 견인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지역발전은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며, 인구 유입으로 한 지역의 인구가 늘었다면 다른 지역의 인구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외가 있다면 일부 개도국 상황이다. 선진국과 달리 개도국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한 두 곳에 집중될 수 있으며, 이런 국가에서는 새로운 도시의 진입이 전체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성장 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도 그런 개도국형 국토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독립적인 창조 역량을 보유한 지방 도시를 늘어나면 한국 전체의 성장이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의 지역은 또한 오랜 국가 중심 산업정책으로 선진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자생적인 지역산업이 형성되지 않았다. 지역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 자원이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국이 지역발전정책을 로컬 콘텐츠를 지역산업 수준으로 사업화하는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추진하면 배너지와 뒤플로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배너지와 뒤플로가 골목상권 기반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을까? 공동농업정책이 창출하는 수공예 농업, 파리 청년 창업지원센터가 지원하는 자영업 크리에이터 등 현재 한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창조적인 소상공인과 유사한 성격의 직업과 일을 언급한다. 하지만 창조적 자영업과 소상공인 산업이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도시산업 생태계로 진화할 가능성은 논의하지 않는다. 골목상권 생태계는 신도시와 원도심이 공존하는 한국 도시에서 예외적으로 형성된 생태계일지 모른다.
지역발전을 연구하는 필자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힘든 지역을 위한 좋은 경제학'으로 읽었다. 일반 독자는 무엇을 얻었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모든 독자가 기억할 것 같다. 단기적인 경제 이익만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떠나거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자존심 상하는 복지를 받아들이거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타율적인 노동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 진정한 인본주의자라면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을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