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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21. 2021

작은 도시 큰 기업의 조건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국가 과제는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그 답으로 설정했고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실현 전략인데 도시가 그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문화가 융성하고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기업과 산업을 보유한 도시가 많이 필요하다. 문화와 창업으로 도전하고 경쟁하는 도시가 많은 나라가 우리가 꿈꾸는 문화융성, 창조경제 국가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문화가 융성하고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기업과 산업을 보유한 도시가 많이 필요하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조도시가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핵심 고리인 것이다. 경제 지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도시의 부상을 설명하면서 창조도시는 창조산업을 만드는 인재가 선호하는 문화를 가진 도시라고 주장한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시대의 창조 도시는 또한 자신의 가치와 문화를 키워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다. 우리가 눈을 밖으로 돌리면 자신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성공한 창조 도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모종린, ‘작은 도시 큰 기업‘).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키우는 도시가 반드시 대도시일 필요가 없다. 작아도 문화의 힘을 가진 도시라면 창업과 문화로 대도시와 경쟁할 수 있다.



세계의 작은 도시 큰 기업


시애틀이 매력적인 도시 문화로 큰 기업을 키운 대표적인 도시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카페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다. 그건 날씨와 연관이 있다. 그곳은 늦가을에서 늦봄까지 거의 매일 비가 온다. 해도 일찍 져 시애틀의 하루는 어둡고 우울해서인지 시민들은 유난히 커피 마시며 대화하는 걸 즐긴다. 또한 시애틀엔 새로운 기업을 지원하는 문화와 자원이 풍부하다. 시애틀 투자가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한 스타벅스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코스트코 등도 시애틀에서 시작했다.


실용적 가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케아의 실질적인 본사는 스웨덴의 남부 도시 알름훌트에 있다. 알름훌트가 속한 ‘스몰란드’라는 지역은 예로부터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근검절약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고, 그래서 이케아는 화려한 디자인을 멀리하고 단순하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뿐 아니라 매장 위치와 구조에서도 지역 환경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끝까지 다 둘러봐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매장을 설계했고 직접 차를 몰고 오는 고객을 주 소비층으로 정해 임대료가 싼 도시 외곽에 문을 열었다.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나이키 역시, 그곳에서 발전한 이유가 있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로 불린다. 그에 걸맞게 지역 전체에 산책로가 많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운동을 즐긴다. 이런 활동적인 도시에서 나이키가 운동화 개발을 위해 노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포틀랜드는 또한 자유와 새로움이 넘친다. 우리나라의 ‘홍대’처럼 개성 넘치는 옷과 자전거를 즐기는 젊은이가 많다. 포틀랜드는 자유로운 도전을 강조하는 나이키의 경영 철학과 어울렸다.


미국 최대의 자연식품 슈퍼마켓 홀푸드마켓은 1980년 히피족 2명이 사우스 오스틴, 정확히는 사우스러마 거리에 세운 1호점에서 시작했다. 사우스 오스틴은 오스틴의 대표적인 히피 지역이다. 홀푸드마켓이 히피 지역에서 처음 개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히피 이전에도 미국에는 자연식품 운동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계기는 1960년대 대항문화의 시작이었다. 히피 문화는 1980년대 생태주의 운동과 최근의 로하스 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히피족은 기존의 권위와 주류 문화를 거부하고 대안적 삶을 사는 사람이다. 친환경, 자연과 가까운 삶을 추구하는 히피족이 대기업이 만들어낸 상업적 인공 식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네슬레는 단순하고 순수한 삶을 닮은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다. 네슬레의 고향인 스위스는 작은 도시를 제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브베라는 작은 도시에 본사를 둔 네슬레도 작은 공간을 제약이 아닌 경쟁력의 원천으로 여긴다. 네슬레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세계 시장으로의 접근성이다. 브베에서 제네바 국제공항은 1시간, 취리히 국제공항은 2시간 거리다. 개방적인 문화와 순수하고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이, 많은 외국인을 브베로 끌어당긴다. 그런데 수많은 외국인이 정착해도 브베의 라이프스타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쪽은 오히려 외국인이다. 네슬레와 브베는 언뜻 보기에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개방성과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한다. 글로벌 기업인 네슬레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꾸렸던 본사를 철수하고, 다시 브베로 본사 기능을 일원화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쿄가 19세기에 교토를 대신해서 일본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교토 사람은 전통적으로 도쿄를 경쟁과 견제 상대로 여긴다. 도쿄에 대한 경쟁심은 교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표출되는데 그 결정체가 교토를 최고 도시로 생각하는 ‘교심’ 또는 ‘교 문화’이다. 교토 기업 대부분은 도쿄 기업에는 질 수 없다는 오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교 문화는 기업이 서로를 도와주는 상생의 산업 문화를 만들었다. 교세라를 포함한 교토의 대기업들은 지역의 창업 기업을 지원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창업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기업들은 나중에 새롭게 창업한 기업들에게 투자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는 등 서로서로 도와주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도시


이처럼 지역 특유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연계해 산업을 발전시킨 창조도시가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 전체 인구의 90%가 사는 한국의 도시도 창조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도시가 문화를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중요한 단위인 것이다. 한국 도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도시 문화를 키워야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는 도시 문화에 따라 '살고 싶은 도시'를 결정하며,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미래 도시의 성패는 젊은 세대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만족시키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 도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문화의 변화는 문화 거리의 확산, 귀농의 증가, 문화 도시의 등장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둘레길, 홍대앞, 가로수길, 정동길 등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도시 내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연을 음미하고 걷거나, 구석구석을 누비며 맛과 쇼핑을 즐기기 위해 주변의 거리와 동네를 찾는다. 우리에게 좋은 동네는 더 이상 살기 좋은 주거지 또는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동네는 새로운 도시 문화를 체험할  있고 문화적으로 매력이 있는 동네인 것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귀농, 귀촌 인구도 다양한 도시 문화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지난해 귀농, 귀촌 인구는 5만 6,0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도시 탈출은 혼잡함과 각박함 등 대도시 중심의 획일적인 도시 문화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도시와 농촌으로 이주한 사람은 그곳에서 여유와 자연이 있는 삶을 추구하고, 때로는 마을공동체 등 새로운 도시 문화를 창조하기도 한다.


제주, 전주, 통영, 부산, 강릉 등에서는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로 바뀌고 있다. 문화도시로 발전한 이들 도시는 지역 문화로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제주의 청정 환경과 문화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무려 230백만 명에 이른다. 2011년에 제주도를 방문한 외국인이 100만 명에 불과했으니 외국인 관광객이 불과 2년 사이에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전주는 전주한옥마을로만 연간 500만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한다. 제주와 전주뿐만이 아니다. 강릉의 커피 문화, 부산의 리조트 문화, 통영의 바다문화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지역의 문화 자원은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 함평군은 2013년 함평나비대축제에 총 24만의 관광객을 유치했고 이 행사를 통해 입장료 수입만도 7억 원을 능가했다. 탄광의 도시로 알려진 정선은 지역 문화를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지난해 정선 5일장을 방문한 관광객은 무려 46만 명에 달했다.


지역 문화 덕분으로 발전하는 산업은 관광산업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문화가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다. 대구는 일찍이 야외에서 치킨과 맥주를 같이 즐기는 식문화로 유명했다. 대구의 ‘치맥문화’는 치킨 가공 산업을 배경으로 시작됐으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치킨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치킨 산업 발전의 발판이 되고 있다. 대구시는 매년 지역의 치킨 산업을 문화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매년 ‘치맥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대구의 치킨 전문점처럼 많은 지역 브랜드가 전국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서울로 진출해 성공한 지방 맛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산의 무학소주, 부산의 파크랜드, 경주의 경주법주 등 대기업 수준의 지역 기업도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 기업이 됐다. 현재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의 소도시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것이다.



포항과 라이프스타일 산업


포항이 독립적인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포항 지역 기업과 기업인이 지역 기업으로도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포항의 리더들이 기업가 정신을 지닌 리더가 된다면 포항의 발전은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은 작은 도시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 개방성, 세계화, 기업가 정신을 지닌 리더로 정리한다. 4가지 조건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업가 정신과 지역 문화의 접목과 시너지다. 포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포항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산업과 기업을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포항의 문화 정체성은 무엇인가? 포항의 정체성을 현대사에서 찾는다면 포스코가 포항의 가장 두드러진 정체성임을 부인할 수 없다. 포항의 정체성은 포스코이며 포스코로부터 파생된 철강 문화다.


물론 포스코가 포항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포항도 나름대로 `포스코 이후 포항`을 준비할 필요는 있다. 일부에선 철강도시에서 의료와 IT 중심지로 변신한 피츠버그를 포항의 모델로 제시한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을 포기한 도시다. 포스코와 지역 철강산업이 아직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철강산업을 포기하는 시나리오는 시기상조다.


경쟁력의 변화에 따라 제조업 산업 전체가 새로운 생산 국가로 이전하는 프로덕트 사이클 이론은 현대 경제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포스코도 철강 경쟁력을 바탕으로 첨단 신소재, 그린 에너지 사업을 개척하고 있다. 포항과 포스코의 미래 산업이 굳이 다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문화 분야에서도 포항과 포스코는 동반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포항은 포스코에 의해 시작된 철강 문화를 라이프스타일로 발전시켜야 한다. 포항이 추구해야 하는 철강 라이프스타일은 철강 구조물 중심의 도시 디자인과 신소재 중심의 생활과 레저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


웅장한 제철소 구조물이 포항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지만 제철소를 벗어나면 철강 도시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포스코를 제외한 포항의 모습은 여느 지역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포항과 포항시민은 철강 도시인 포항에 왜 에펠탑, 골든게이트브리지와 같은 철조 랜드마크가 없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스틸하우스, 스틸 아키텍처, 스틸아트가 공공 건축물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포항다운 도시 디자인이 아닐까? 한국, 그리고 세계를 대표하는 철강 건축 도시가 된다면 포항은 자연스럽게 스틸하우스, 스틸 아키텍처 산업의 중심지로 잡을 것이다.


철강 문화를 기반으로 개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신소재 생활 산업, 신소재 레저 산업이다. 신소재로 만든 주방기기가 대표적인 신소재 생활 산업이며 거의 모든 레저산업이 신소재 레저 산업이다. 신소재가 중요하지 않은 레저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소재는 레저산업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포스코가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소재 상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아니면 그런 기업을 지원한다면 포항은 새로운 신소재 생활 산업과 신소재 레저 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로 하나가 된 포항과 포스코, 포항과 포스코가 한마음으로 일군 라이프스타일 도시 포항을 응원한다.



한국 창조도시 과제


그렇다면 한국 도시의 도시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이 지역에서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사실에 주목한다. 전통문화 보호, 예술가 지원, 문화 시설 건립 등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일부는 문화 발전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를 강조한다. 문화 자원을 지역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려면 우수한 문화 자원만으로는 부족하며, 문화 자원과 문화 소비자가 연결될 때 지속 가능한 문화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화정책의 성패는 문화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문화의 획일성으로 고민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도시 문화의 다양화가 가장 시급한 문화정책 과제일 것이다. 1960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모든 도시가 하나의 발전 모델을 따랐고 그 과정에서 각 도시의 개성과 문화가 많이 훼손됐다. 우리 도시가 문화와 창업으로 경쟁하는 창조도시가 되려면 도시 문화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도시가 자신이 다른 도시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그 도시다운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 때 매력적인 도시 문화를 창달할 수 있다.


도시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은 반드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부 도시가 이미 실행하고 있듯이 각 도시는 지역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계승하거나 현대 문화에 맞춰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지역 문화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초중등 학교에서 지역 정체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국민통합을 위한 국민교육을 강조했으나, 이제는 세계화, 다문화, 개인 창의성, 지역 분권 등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다양한 문화 정체성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초등학교 사회 과목에서 지역 교육을 확대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지역 문화와 역사를 독립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배출하는 도시가 많은 나라를 꿈꾼다. 창조도시의 전제 조건은 매력적인 도시 문화이며 매력적인 문화를 가진 도시가 늘어나면 이들 도시의 경쟁이 다수의 창조도시를 만들 것이다. 도시문화가 우리 경제의 미래인 것이다.



출처 : 기조연설, 포항의 미래 성장동력, 2014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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