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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12. 2017

미네소타 나이스 (Minnesota Nice)

미니애폴리스의 공동체 경쟁력

우리가 제조업 사양산업화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 탈산업화의 진앙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대부분의 국민은 아직 탈산업화가 어떻게 산업도시를 파괴하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가 무심한 사이 산업도시의 공동화는 이미 시작됐다. 조선업 불황으로 중소 조선소가 밀집한 통영과 거제도 공단은 오래전 빈 공단이 됐다. 대우조선의 부실로 이제 거제도 전체가 공동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미국 탈산업화의 재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미국의 탈산업화는 주민의 도심 탈출, 남서부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와 동시에 진행되면서 러스트 벨트(RustBelt) 산업 도시들을 초토화시켰다.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버펄로의 현재 인구는 가장 융성했던 1950년의 40~50% 수준에 불과하다. 전쟁 폐허같이 버려진 산업도시 도심은 대규모 인구 감소가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운타운 미니애폴리스


미국에서도 성공한 산업도시가 많다


그러나 미국 중서부(Midwest)의 모든 산업도시가 탈산업화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콜럼버스(Columbus),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캔자스시티(Kansas City), 오마하(Omaha), 매디슨(Madison), 디모인(Des Moines), 앤아버(Ann Arbor) 등 많은 도시가 탈산업화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왔다. 그중 한국 도시에 모델이 될 수 있는 산업도시가 대기업과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한 미니애폴리스다.


미니애폴리스는 19세기 이후 미국 북중부의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초기 산업 유치 과정에서는 미국 중북부에서 유일한 대도시라는 지리적 위치가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자동차로 8-9시간 떨어져 있는 시카고다.


다른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미니애폴리스도  중심 산업이 농업에서 제조업, 그리고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그들과 달리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


목재와 광산물 교역으로 시작한 미네소타는 농업이 발달하면서 농산산의 중심지가 된다. 지금도 미니애폴리스에는 북중부에서 생산되는 농산품과 낙농제품을 가공하는 기업이 많다. 다양한 제조업도 발전했는데, 대표적인 제조업 산업이 미국 최대 규모의 의료기기 산업이다. 주요 서비스 산업으로는 보험, 유통, 금융 산업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균형된 산업구조 덕분에 이 도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대기업 경쟁력도 탁월하다. 이 곳에 본사를 둔 포천 500대 기업만 해도 2015년 기준 17개로, 미국 대도시 중 9위를 자랑한다. 전 세계 창조 기업의 모델 쓰리엠(3M), 세계 최대 곡물기업 카길(Cargill), 미국을 대표하는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General Mills),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유통기업 타깃(Target), 인공심장판막 제조 기업 세인트 주드 메디칼(St Jude Medical)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이 여기서 창업해 지금껏 성장 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팸, 스카치테이프, 페이스메이커(심박 조율기) 등은 모두 이 곳에서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고 지리적으로도 고립된 이 도시가 과연 어떻게 이 같은 산업 경쟁력을 가지게 된 걸까? 전문가들은 그 비결로 공동체 경쟁력을 꼽는다.


미국 어느 곳보다도 기업가 정신,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다.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미네소타 사람들의 문화를 '미네소타 나이스(Minnesota Nice)'라고 부른다. 친절에 바탕을 둔 배려와 존중 문화가 사회 전체의 신뢰자본으로 승화돼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공동체 정신이 강한 시민들은 기업에 대해 항상 우호적이었다. 이 친기업 정서는 미국에 예외적이다. 바로 인접한 서부 지역만 해도 프런티어 정신 유산으로 인해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  


미니애폴리스의 공동체 경쟁력


미니애폴리스의 공동체 경쟁력은 주택, 교육, 교통, 환경 등 공동체 분야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지역 인재를 교육하고 첨단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명문 미네소타 대학을 보유하는 등 미네소타는 전통적으로 교육이 강한 지역이다.


주택과 안전도 도시 경쟁력의 원천이다. 미국 경제 TV 네트워크 CNBC는 2015년이 미니애폴리스를 '사업하기 좋은 도시 No.1'로 선정했는데, 그 이유로

공동체 도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교육과 삶의 질(낮은 범죄율과 주택 가격 등) 지표에서 최고 점수를 얻은 사실을 지적했다.


특히, 주택 가격은 이 도시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2014년 하버드-버클리 공동 연구에 따르면, 도시 주택의 50% 이상은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 범위 안에 있었다. 동부와 서부의 대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합리적인 가격에 주택이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정적 주택시장 덕분에 일단 이 곳으로 온 가정은 웬만하면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일스 세이버(Myles Shaver) 미네소타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 가격이야 말로 기업 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강조한다. 미니애폴리스가 제공하는 높은 삶의 질에 힘입어 기업의 허리인 중간 관리자층이 지역에 정착하고, 덕분에 기업은 인재 유출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도시가 젊은 층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를 보여주는 통계는 많다. 대학 졸업자 비율, 중간 소득 수준(Median Income), 빈곤자 비율 등 35세 이하 주민에게 중요한 생활 지표에서 이 도시는 당당히 미국 톱 10에 올라있다.  

미니애폴리스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세수를 전략적이고 생산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 곳 시민의 조세 부담은 미국 51대 대도시 중 중간 수준이다. 그러나 법인세 수입 중 전년 대비 증가분을 전 지역에 골고루 배분하는 생산적 투자 증진 정책은 주민 삶의 질을 크게 높였다. 또한, 시 정부는 부자 동네를 포함한 모든 지역이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미니애폴리스 소재 포춘 500 기업


미니애폴리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역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남다르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12월에 특집기사로 미니애폴리스 기업들의 뿌리 깊은 사회공헌 전통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특집기사에서 특히 비중 있게 다뤄진 곳은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 이 매주 모여 지역 사회 현안을 논의하는 이타스카(Ithasca) 프로젝트다.

이타스카 그룹은 다른 도시의 사업자단체와 달리 세금 인하와 규제 완화를 요구하지 않고, 기업 경쟁력에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논의하지 않는다.


대신 빈부 격차, 고용 창출, 복지 증대 등 지역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주립대학 재정 확충, 투자유치,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로컬 구매 확대 등 최근 이타스카 그룹이 논의한 이슈들을 보면 그룹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공동체 문화는 지역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됐다. 스칸디나비아, 독일 이민자들이 정착한 미네소타는 전통적으로 실용주의와 평등주의를 강조해왔고 사회복지 확대에 우호적이었다. 19세기에 가족농장을 운영한 주민들은 대기업과 철도회사의 독과점 가격 정책에 저항하는 진보운동(Progressive Movement)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이후로도 진보주의 정당을 지지한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1976년 선거 이후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미네소타의 진보성은 외부인에 대한 개방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네소타는 난민을 많이 수용한 주로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13만 명의 몽족 이민자가 정착한 지역이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난민도 다수 미니애폴리스에 정착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네소타 진보주의는 다른 나라와 지역과 다른 유형의 진보주의다. 진보주의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반기업적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 전통을 도시와 기업의 경쟁력으로 승화시킨 성장 친화적 진보주의를 추구한다.

제조업 불황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한국 산업도시는 미니애폴리스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 이 곳 기업과 산업에서 기술과 경영뿐 아니라 공동체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공동체 정신을 배워야 한다. 공동체 경쟁력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동시에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미니애폴리스가 한국 산업도시의 모델이 돼야 한다.

* 『라이프스타일 도시』에 수록된 "성장 친화적 진보주의 공동체 미니애폴리스"를 기반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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