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도시 포틀랜드

by 골목길 경제학자

탈물질주의는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고, 이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산업화도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나이키, 홀푸드마켓, 스타벅스, 애플 등 현재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70년대 창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나이키, 홀푸드마켓, 스타벅스 모두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를 구현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의 산업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실리콘밸리도 탈물질주의 산업으로 기존 산업에 도전한 라이프스타일 도시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새 시대를 연 애플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개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탈물질주의 기업입니다. 애플이 개척한 PC 자체가 역사적으로 중앙정부, 대기업 등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저항하기 위해 개발한 상품입니다. 1960년 대 반전 운동자들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장본인으로 중앙정부와 대기업을 지목했으며, 개인을 이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정보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컴퓨터 산업은 IBM, DEC 등 동부의 대기업이 장악한 산업이었습니다. 동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대항해, 서부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개인 컴퓨터, PC를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실리콘밸리 첨단산업은 PC 이후에도 스마트폰, 블록체인, 공유경제 등 개인이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개척한 또 하나의 도시가 포틀랜드입니다. 제가 80-90년대 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시골이라 생각했던 도시였는데 지금은 동부의 브루클린과 함께 미국의 힙 문화를 선도하는 도심 문화 중심지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포틀랜드, 유럽에서는 베를린이 라이프스타일의 성지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서 일하고,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인데 그 비밀은 간단합니다. 도시 자체의 문화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스포츠와 아웃도어를 사랑하고, 서부 도시답게 도시 분위기가 역동적이고 자유롭고 진보적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한 히피들의 영향을 받아, 독립기업 문화가 강하고 환경을 중시합니다. 1960년부터 환경을 위해 도시 성장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의 대표적인 압축도시입니다.


포틀랜드 도시 문화는 다양한 산업을 창출했는데, 대표적인 산업이 아웃도어 산업입니다. 현재 1,000개의 아웃도어 기업이 대규모 생태계를 이루고 있고, 이 생태계의 앵커 하는 대기업은 나이키, 아디다스 미국 본사, 컬럼비아 스포츠웨어입니다. 이 중 나이키가 78년에 진입한 나이키가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기업입니다. 포틀랜드 아웃도어 산업은 처음에는 운동화로 시작했지만, 그다음 스포츠 용품, 자전거,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연관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산업화가 된 또 하나의 포틀랜드 문화가 심플 라이프입니다. 포틀랜드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과격한 경쟁을 피하는 편하고 여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 유기농, 개인 브랜드, 홈퍼니싱 등 심플 라이프, 슬로 라이프 관련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포틀랜드 슬로 라이프를 콘텐츠로 만든 잡지가 킨포크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리 욕심이 없을까 궁금하셨다면, 이 잡지가 원인입니다. 이런 잡지들이 ‘소소한 일산을 즐겨라’,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살라고’ 부추기는 겁니다^^.


포틀랜드 문화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산업이 독립기업입니다. 포틀랜드에는 유난히 독립기업들이 많습니다. 문화적인 성향이 그렇다 보니, 시 정부도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도심 진입을 가능한 규제 하려고 합니다. 실제 도심을 걸어 다니면, 맥도널드, 세븐일레븐 등 미국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독립기업 문화 덕분에 독립서점, 수제 맥주, 도심 양조장, 메이커, 패션, 커피 등 크리에이터 분야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독립서점 포웰,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스텀프 타운 커피, 커뮤니티 호텔 산업을 개척한 에이스 호텔이 포틀랜드 본사를 둔 지역 브랜드입니다.


포틀랜드에는 나이키, 인텔과 같은 대기업도 활발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독립 기업 중심입니다. 작은 건물, 작은 도시, 작은 거리, B도시의 원형이 포틀랜드입니다. 대기업을 다수 배출한 보면 아웃도어 산업만 봐도, 1,000여 개의 독립기업이 활동하는 거대 생태계입니다.

.

포틀랜드의 아웃도어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까요? 이곳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전문인력 그리고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생태계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수많은 기업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소비자 또한 포틀랜드의 경쟁력입니다.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하고, 아웃도어 상품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포틀랜드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걷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연히 아웃도어 소비가 다른 도시보다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화장품 산업의 경쟁력이 소비자이듯이, 까다롭고 소비를 많이 하는 포틀랜드 소비자들이 이 도시 아웃도어 산업의 경쟁력입니다. 포틀랜드에 집적된 전문 인력도 경쟁력입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 등 아웃도어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도시에 거주하다 보니, 신발 기업을 창업하려는 한국 창업자들도 포틀랜드 현지에서 창업합니다.


그런데 포틀랜드 생태계가 무서운 것은 참여 주체들이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생산자, 소비자, 전문인력 모두 포틀랜드 아웃도어 문화를 공유하고 즐깁니다. 이렇게 똘똘 뭉쳐서 유지하는 생태계와 경쟁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지역 라이프스타일이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하는 것은 포틀랜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수많은 기업들이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창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안 해서 그렇지 절대다수의 기업이 처음에는 동네 가게로 시작합니다. 동네 환경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한 기업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에서 시작한 그 모델을 다른 시장에 진출할 때에도 그대로 갖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스웨덴 남부 가난한 농부를 위해 만든 간편하고 값싼 가구를 다른 시장에서 그대로 파는 기업이 이케아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바드와 MIT 출신 엘리트들이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글로벌 대기업을 창업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벤처 캐피털이 발전한 미국에서도 벤처 투자를 받고 성장한 기업은 전체 상장 기업의 20%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상장 기업은 소상공인으로 출발해 중소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현대, LG 등도 따지고 보면 모두 소상공인 기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창업을 기술창업, 벤처 캐피털 투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상공인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전통적인 기업생태계가 작동하지 않는 거죠. 작은 기업으로 시장에서 자리 잡고, 자신감을 얻은 후 전후방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사업을 키우는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작은 도시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전 05화라이프스타일 경제의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