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문화지구 조성의 방향성 C-READI

by 골목길 경제학자

우리 도시가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어떤 산업을 선택하던지, 그 산업의 전시장은 골목상권이 돼야 합니다. 골목상권이 이처럼 중요하다면, 이를 원하는 도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골목상권의 역사에 있습니다. 뜨는 골목길의 비밀을 드러내는 역사. 저는 그 비밀을 C-READI 조건으로 정리합니다. C-READI를 골목길에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시, 동네, 골목길, 가게 관계없이 C-READI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이 성공하며, 저는 이를 공간 조성 불변의 법칙이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공한 골목상권은 일정한 패턴을 보입니다. 문화자원(Culture)이 풍부하고 임대료(Rent)가 싼 지역에 한 가게, 첫 가게(Entrepreneur)가 들어갑니다. 이 가게가 잘되는 것을 보고 다른 가게가 따라가 상권을 형성합니다. 이 상권이 상권 경쟁력에 중요한 접근성(Access), 공간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을 잘 유지하고 보완하면 경쟁력을 가진 성공한 골목길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한 골목길의 조건은 이 6가지입니다. 영어단어의 이니셜을 모으면 우연하게도 ‘문화성이 준비돼야 한다’는 의미의 C-READI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문화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C-READI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입니다.



건축가들은 골목 디자인, 건축, 공간 자체가 성공 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골목이 떠야 되는데 전국에서 뜬 골목은 1%도 안됩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골목 지역 중에서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활성화된 골목 지역은 15개에 불과합니다. 예술가들은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물론 저도 C-READI에서 문화자원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런데 문화자원, 특히 순수 문화시설이 다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광화문 국립현대미술관은 분명 매력적인 공간이고, 중요한 문화자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술관을 자주 가는 이유가 미술관 때문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술관도 중요하지만, 미술관 주변에 형성된 매력적인 북촌, 삼청동 골목상권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상인입니다.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매력적인 가게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줍니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많은 골목이란 결국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상인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어떤 상권이 망가지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면 그 상권은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뚜렷한 상권일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이태원하고 홍대가 그런 상권입니다. 이태원은 너무 당연합니다. 이태원은 기본적으로 교포와 외국인이 개척한 골목상권입니다. 그러니까 이태원을 복제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외국인을 몇만 명 수입해다가 이주시키기 전에는 이태원을 만들 수 없습니다. 거기 다 외국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미국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사람들 다 모여있습니다.


홍대는 어떤 지역입니까? 홍대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 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예술가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취향은 운동권 성향입니다. 시민단체 활동하는 저항적인 사람들, 독립정신이 강한 예술가, 어떻게 보면 진보적이고 ‘삐딱한’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가 성향의 사람을 몇만 명 이주시키기 전에는 홍대를 절대로 복제할 수 없습니다. 지방에 가면 홍대 같은 보헤미안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홍대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가 큰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는 지역이 우연히도 정체성이 강한 홍대와 이태원입니다.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정체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감히 다른 데가 복제하기 어려운 거죠. 그런데 압구정동, 삼청동은 다릅니다. 단지 가게가 있었지 독특한 주민 문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정체성이 약하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서 비슷한 상권이 생기면 그냥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해야 될 일은 문화자원에 많이 투자해서 지역의 특색을 살려야 하면, 이는 결국 주민이 참여하기 전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입니다. 연희동에 가면 손님 중에 70%가 주민이고 30%가 관광객입니다. 주민 문화를 ‘파는’ 몇 안 되는 골목상권이 연희동입니다. 주민 소비, 로컬 소비가 받쳐주는 연희동 상권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주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곳에 비해 경쟁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C-READI에는 여섯 가지 조건이 담겨있지만, 세부 조건으로 분류하면 총 15개에 이르는 조건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문화자원도 보통 이야기하는 문화예술 시설뿐만이 아니고 공방, 공예, 생활 문화 시설을 포함합니다. 소상공인의 문화, 임대료 문제도 단순히 규제 문제가 아니고 공동체 문화도 중요합니다. 기업가 정신도 상권을 개척하는 첫 가게, 상권의 중심 가게 역할을 하는 거점 가게, 역동적인 소상공인과 스타트업 창업 문화, 그리고 골목길 전체를 기획하고 그것에 투자하는 골목길 기획자 등 다양한 유형의 기업가가 필요합니다.


접근성도 외부 접근성과 내부 접근성을 모두 봐야 합니다. 우리에서 중심 상권으로 자리 잡은 네 개 권역은 모두 2호선 안에 위치에 있고, 서울의 도심과 강남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접근성이 좋은 상권입니다. 내부 접근성 또한 중요합니다. 홍대가 이렇게 확장되는 이유는 도보로 계속 넘어갈 수 있는 골목 지역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경의선 숲길이 홍대의 내부 접근성을 더 좋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로도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서울로는 서울역의 여섯 개 지역을 하나로 묶어준 보행로입니다. 저에게 서울로 7017은 공원이 아니고 길입니다. 서울로 가장 큰 가치는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온 외국인 관광객이 걸어서 명동으로 가는 통로라는 데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만족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도쿄역에 내려 황궁에 걸어가듯이, 서울역에 내려 명동지역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죠.


일단 골목 자원이 풍부해야 되고, 건축 자원이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건입니다. 마지막 조건이 정체성입니다. 주민 문화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주민 문화에 특색이 있어야 하고, 상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동체 문화도 정체성에 중요합니다. 복잡하다 생각하시죠?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권이 있다면 홍대입니다. 이렇게 다 성공 조건을 리스트 하면, 이태원보다도 홍대가 더 완벽한 골목상권입니다.


C-READI는 골목상권을 분석할 때 유용하지만, 활성화 과제를 도출하는 수단으로도 유용합니다. 서울역 지역을 C-READI 모델로 분석해보시죠. 서울역 지역이 본연의 중앙역 비즈니스 중심 지역으로 부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C-READI의 15가지 조건이 그 과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C-READI를 신촌 지역에 응용해보겠습니다. 신촌 지역은 연세대 서문(연희동), 동문(이대 후문), 정문(신촌) 지역을 포함하는 거대 상권입니다. 한국 도시의 다양한 발전 경로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 도시의 실험실, 마이크로코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서대문구와 서울시의 관심사는 정문, 신촌 지역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수십억의 예산을 신촌 지역 재생에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신촌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90년 이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직장인 유흥가입니다. 블루리본 맛집 수는 오히려 크게 줄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먼저 연대 동문 지역을 보겠습니다. 연대 동문 지역은 200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던 ‘골목상권’이었습니다. 제가 연세대에 부임한 1996년에는 강남 압구정동과 경쟁하는 핫플레이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동네상권으로 돌아간 골목상권’이 됐습니다. 그 당시 상권을 이끌었던 식당과 가게들이 모두 그곳을 떠났습니다. 동문 쇠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공간 디자인입니다. 아시다시피 동문 지역은 산, 대형건물, 고가로 사방이 막혀있는 고립된 지역입니다. 신촌 등 다른 상권과 연결하는 구조물을 구축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리고 연세대, 이대, 세브란스 병원이 건물을 사서 대형 건축물을 지였기 때문에 소상공인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동문 지역에서는 C-READI 중 공간 디자인 D가 결정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동문 지역과 상반된 역사를 가진 지역이 서문, 연희동 지역입니다. 1996년 당시 연희동이 말 그대로 동네 상권이었습니다. 80년대 잠깐 고급주택 단지로 각광받았으나 교통이 안 좋아 사람들이 떠나는 동네가 됐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홍대가 확장하면서 연희동이 덩달아 떴습니다. 지금은 연세대 3개 지역 중 가장 힙하고 쿨한 골목상권이 됐습니다.


홍대 확장이 어떻게 연희동에 이르렀을 까요? 지도를 보면 답이 안 나옵니다. 홍대와 연희동은 대로로 연결돼 있고, 연결고리인 연희교차로는 고가가 있고 차들이 빨리 다니는 지역입니다. 도보로는 홍대에서 연희동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런데 골목길을 보면 어떻게 홍대 유동인구가 연희동으로 뻗어 나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로 바로 뒤에 있는 골목길이 두 개의 굴다리를 통해 연희동과 연남동을 연결합니다. 이 길로 가면 경희선 숲길에서 10분만 걸으면 연희동에 도착합니다.


홍대에서 유입된 문화자원도 연희동 부흥에 큰 기여를 합니다. 홍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연희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서대문구도 연희동의 장점을 인식해 연희 창작촌 등 많은 시설을 연희동에 유치했습니다. 연희동 내부 문화도 중요했습니다. 연희동이 활성화되면서 연희동 주민 문화, 특히 연희동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노포들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활발한 곳입니다. 이처럼 C-READI 모델은 공간 디자인, 기업가 정신, 접근성 등으로 연희동의 부상을 설명합니다.


그럼 연세대 지역의 중심상권 신촌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신촌은 대로변 상권으로 발전했습니다. 대로변 뒤 이면 도로에 골목상권이 형성됐지만, 청년문화, 대학문화 정체성이 부족한 가게들로 채워졌습니다. 서대문구가 중심 도로인 연세로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했지만, 이로 인해 이면도로 접근성이 크게 악화됐습니다. 연세로에 유동인구 늘었지만 이 인구가 배후 상권을 지원할 수 있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연세로 행사를 구경하러 온 구매력이 낮은 소비자라고 합니다. C-READI 관점에서 보면 연세로 사업은 지역 상권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지 못한 제한적인 접근성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C-READI 모델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신촌은 문화자원을 늘리고 이를 통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 문화자원이란, 거리 문화 행사가 아닙니다. 서점, 북카페, 공연장, 창업시설 등 대학문화, 청년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정체성이 뚜렷한 문화시설입니다.

어쩌면 대학문화 복원은 연세대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연세대가 신촌 활성화가 대학 미래에 중요하다고 인식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도시 문화를 살리기 위해 미대를 도심 지역으로 이전한 미국의 시라큐스 대학처럼, 연세대도 유동인구를 유발할 수 있는 학교 시설을 신촌으로 이전할 수 있습니다. C-READI를 분석틀로 활용하면 어떤 골목길이 잠재력이 있고, 기존 골목길에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재로선 가장 포괄적인 분석틀이라고 자부합니다.


골목길을 활성화하려면 골목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쳐야 합니다. 언론은 골목길을 건물주와 상인 간의 갈등하는 장소로만 소개하는데, 골목길에 참여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소비자, 주민, 기획자, 정부 다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골목길에 참여하는 인재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골목 산업에는 기술 스타트업 수준의 인재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골목상권의 가치가 높다 보니 인재뿐만 아니라 자본, 대기업, 글로벌 기업도 골목길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골목 기획자들이라는 새로운 업종이 생기고 그리고 공익 차원에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 도시 재생 스타트업들도 진입하고 있습니다. 골목길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인 공동체가 돼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골목상권은 장소와 네트워크 측면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전반적으로 공동체가 약화되는 환경에서 유일하게 공동체가 강화되는 장소입니다.


장인 공동체 골목길은 사회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은 지역 공동체 복원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위기의 해법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된 것입니다. 제가 골목상권에 왜 큰 의미를 두는지 이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골목상권에서 공동체 문화가 강화되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가 컸지만 그 덕분에 골목 상인과 건물주가 한배에 탔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이런 공동체 인식이 계속 발전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에도 일본,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타운 매니지먼트, 에어리아 매니지먼트 컴퍼니가 등장할 것입니다. 건물주들이 임대 사업을 공동 투자한 새로운 법인에 이전하고, 그 법인이 골목상권 전체를 위해 임대사업을 진행하는 사업 모델입니다. 마치 부동사 개발회사가 쇼핑센터를 운영하듯이, 타운 매니지먼트 컴퍼니가 골목상권을 운영하는 겁니다.


뜨는 골목길, 뜨는 공간


뜨는 골목길의 비결, C-READI. 이 법칙이 뜨는 공간에도 적용될까요. 네, 문화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뚜렷한 골목길, 걷고 싶은 거리,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동네가 뜬다면, 마찬가지로 문화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뚜렷하고, 가고 머물고 싶고, 그리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공간이 뜹니다. 구체적으로, 성공한 공간도 성공한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C-READI 모든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으며, 접근성이 좋고, 공간 디자인이 창의적이며, 가격이 착해야 합니다. 임대료가 착해야 창의적인 가게를 유치하듯이, 가격이 착해야 같이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공간 디자인에서는 개방성이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은 공통적으로 계단, 도서관, 루프탑, 빈티지 등을 통해 거리, 자연, 지식, 역사와 소통하는 공간을 만듭니다. C-READI 조건에서 문화자원, 접근성, 공간 디자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개방적 공간을 통해 동네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연결하는 것이 동네를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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