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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16. 2021

라이프스타일 있는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 아닐까요?

어떤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일까요? 그 잣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맛집, 안전, 시설 등 기본을 만족하는 곳, 그다음은 숨겨진 로컬 콘텐츠를 찾아 자신만의 여행 코스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머물고 싶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현지인처럼 살고 싶은 곳, 나와 어울리는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입니다.


기준 상승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곳이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를 보유한 동네를 선호하는데, 주민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만드는 동네 라이프스타일만큼 복제하기 어려운 콘텐츠는 없습니다. 결국 머물고 싶은 동네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동네,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이 동네의 라이프스타일이  된 곳입니다.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이 머물고 싶은 동네를 만든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요? 2010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시작될 즈음 유행하던 단어를 보시죠. 나다움, 슬로라이프, 저녁 있는 삶, 워라밸, 친환경 등 삶의 질, 다양성, 개성, 사회적 윤리를 표현하는 가치입니다.


LG경제연구원은 2011년 한국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건강, 워라밸, 나다움, 실리주의, 가족, 느슨한 연대, 모바일로 분류했습니다.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트렌드입니다.


서울시는 2020년 빅데이터를 활용해 서울 시민의 47개 라이프스타일을 발굴했습니다. 가사생활, 자기 계발, 건강관리, 맛집 나들이, 여가생활 등 서울 시민의 관심사를 5개 영역으로 분류하고, 동네 스터디 카페, 빵 투어, 공연 노마드, 퇴근 후 러닝 클럽 등 각 영역에서 혼자 하는지 아니면 함께 하는지, 그리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즐기는지, 아니면 이동하면서 즐기는지에 따라 47개 활동을 찾았습니다. 서울시는 전체적인 삶보다는 여가생활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했습니다.


과연 라이프스타일은 여가 중심의 트렌드에 국한될까요? 일본 작가 스가쓰께 마사노부는 '물욕 없는 세계'에서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패션은, 그 경향이 현저해 강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것과 바닥에 침전해서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 있다." 유행처럼 흘러가는 것이 트렌드라면, 라이프스타일은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리는 가치인 거죠.


그런데 자연주의, 웰빙, 미니멀리즘, 독립문화 등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 유형은 거의 예외 없이 수입품입니다. 캘리포니아, 북유럽, 일본 등 라이프스타일 선진국에서 수입한 용어입니다. 물론 선비문화가 대표하는 한국의 자생적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지만, 현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라이프스타일 유형을 서양사에서 찾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에서 부르주아, 보헤미안, 히피, 보보스, 힙스터, 노마드 등 서양사에서 발견한 6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합니다.


이쯤 되면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하시죠. 출판사가 재미로 간단한 테스트를 개발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넥서스 스티브 잡스 히피'를 쳐보시죠. 설문지에 6개 질문이 나오는데요, 하나하나 답해보세요. 그럼, 6개 라이프스타일 중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나에 적합한지 알려줍니다.


어떠세요? 의외의 결과가 나왔나요? 부르주아 나왔다고 실망하시지 마세요.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부르주아입니다. 보보스, 즉 보헤미안 가치를 추구하는 부르주아도 상당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이 보헤미안, 히피, 힙스터, 노마드입니다. 오늘 오신  MZ세대 중에는 이들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를 선호하는 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라이프스타일 차이를 설명드립니다. 저는 물질을 삶의 중심에 두는 라이프스타일을 부르주아로 정의합니다. 물질에는 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분, 질서, 안전, 경쟁, 근면도 물질주의 가치입니다. 한마디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이 부르주아입니다. 학생을 모범생으로 교육하는 한국에서 부르주아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라이프스타일은 물질 외에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합니다. 보헤미안, 히피, 보보, 힙스터, 노마드가 추구하는 제2의 가치는 각각 예술과 자연, 자연과 공동체, 사회적 가치, 도시와 창의성, 이동성입니다. 제가 제2의 가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도 물질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물질 + 제2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비해 부르주아는 일정 수준의 물질적 안정을 확보했음에도 계속 물질만 추구하는 물질 + 물질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은 서구 사회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부르주아에 저항하면서 찾은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소비나 여가뿐만 아니라 일과 선호하는 장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각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일과 도시가 있는 거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구 사회는 부르주아 중심의 물질주의에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탈물질주의로 전환합니다. 가치는 물론 탈물질주의로 이동하고, 기술도 탈물질주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진전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거죠. 기술도 그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 원하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가 캘리포니아라면, 캘리포니아가 만드는 기술은 캘리포니아가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실리콘밸리가 19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가치인 '개인 해방과 느슨한 연대'를 실현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 전체가 '자기표현'이 대표하는 탈물질주의 가치로 이동합니다. 미국은 전통가치, 즉 기독교 가치를 유지하면서 자기표현 가치를 수용합니다. 북유럽은 더 세속적, 자기표현적 가치로 변화합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달리 1981-1996년 사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물질주의 사회로 남은 것이죠.


최근 한국의 물질주의가 언론의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10월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가장 중시한 나라인 것을 발표합니다. 다른 선진국은 가족, 친구, 직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미시간 대학 세계가치조사도 한국 사회의 물질주의를 확인합니다. 2005년 기준, 다른 선진국에선 50% 수준에 머무는 물질주의자 비중이 한국에서는 무려 86%에 달합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981년 한국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가 북유럽 모델로 이동합니다. 일본이 탈물질주의에 더 먼저 도달한 거죠. 그래서인지 한국 청년들은 일본은 한국보다 자유로운 나라로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도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에서 더 나답게 나답게, '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일본을 더하다'라는 구호를 사용합니다. 이런 일본을 비판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대기업은 아직도 라이프스타일을 24시간 편의점, 대형 할인마트, 패스트푸드 등 편리성과 가성비를 강조하는 물질주의와 동일시합니다.


일본이 탈물질주의로 돌아선 계기는 경제 위기인 것 같습니다. 고도 성장기와 안정 성장기에는 한국과 비슷한 성향을 보였는데,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개인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콘텐츠, 소셜 소비가 늘어납니다.


물질주의가 무엇이 문제냐고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모든 현대 사회에서 스케일업, 조직력, 질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물질주의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양성 문제도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이 보다 다양한 일자리와 산업을 개척하려면, 그것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 다양성 부족으로 선진국에 뒤진 대표적인 산업이 생활 산업입니다. 제조업, 첨단산업에서 선진국과 동등하게 경쟁하지만, 유독 생활산업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배출하지 못합니다. 화장품이 예외적으로 가능성을 보였는데 요즘 주춤합니다. 한국이 라이프스타일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한국 라이프스타일의 다양성을 높여야 합니다.


자 이제부터는 라이프스타일 논의를 개인 중심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라이프스타일에 충실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어떻게 소비하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할까요?


소비는 라이프스타일과 가장 밀접한 행위여서 쉽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소비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합니다. 내가 가성비와 편리성, 그리고 과시 중심으로 소비하면 부르주아, 그렇지 않고 제2의 가치 중심으로 소비하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입니다. 소비를 통해 주체성, 예술성을 표현하는 소비자는 보헤미안, 자기표현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소통을 소비를 하면 힙스터와 가깝습니다.


물질과 가치의 구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보보스입니다. '보보스의 천국'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교육받은 엘리트 보보스는 부르주와와 다르게 소비한다고 말하면서 7개의 규칙을 소개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돈을 쓰되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보보스 스타일입니다. 사회적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상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거죠.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선택이 일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자기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농촌의 역습' 작가 소네하라 히사시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닫습니다. "자신의 스타일로 살아가고자 하면 주변에 있는 것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이게 된다. 거기에서 사람이나 자원을 연결하는 활동이 시작되고 조직이 만들어지게 된다."


제가 기존 문헌을 바탕으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파생하는 일의 유형을 정리해봤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부르주아가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에 친화적이라면, 보헤미안, 히피, 보보스, 힙스터, 노마드는 대체로 1인 기업 창업자나 창작자에게 적합합니다. 아무래도 자유롭고 독립적일 일을 원하는 사람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합니다. 소셜벤처, 협동조합 등 대안적 기업 형태도 히피, 보보스 등 부르주아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일입니다.


문제는 미래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기업의 종말을 예측할 만큼 대기업, 대규모 조직이 내부 파열음을 냅니다. MZ세대 회사원과 노동자가가 대기업의 관료주의, 연공서열. 평생직장 문화에 저항하는데요. 그 형태는 부업 허용, 노조 개혁, 성과급 인상, 자기 성장 지원, 직무급 전환, 퇴사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회사는 MZ세대 임원 발탁, 사내벤처 활성화, 수평적 조직 도입, 해외 M&A 추진, 공채 폐지로 대응하는데요. 저는 장기적으로 기업이 직원을 스카우트 인재로 키워주는, 즉 다른 기업으로 스카우트되는 것을 환영할 정도로 인재 중심의 조직 문화를 운영하거나, 기업 자체를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프로젝트 기반 기업(Project-Based Firm)으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업이 어떻게 진화하든지, 기업의 구성원은 회사와 단기 계약 맺은 1인 기업, 프리랜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모든 국민이 1인 기업, 퍼스널 브랜드가 되는 세상을 준비해야 하고, 미래의 많은 일자리가 이렇게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필요한 분야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 그리고 탈산업사회에서 초연결사회로 이동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창의적인 일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거죠.


어느 곳에 살고 싶은지도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 머물고 싶은 도시는 예외 없이 머물고 싶은 동네가 많은 도시입니다. 뉴욕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이 하나의 도시일까요? 우리가 맨해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동네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동네 문화는 제가 제안한 라이프스타일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보헤미안은 이스트 빌리지, 보보스는 웨스트 빌리지 이런 식으로요. 우리가 좋아하는 뉴욕 동네는 그 동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동네입니다.


서울도 뉴욕 모델로 가고 있습니다. 강남이 부르주아, 홍대가 보헤미안이라면, 연희동이 보보스, 그리고 서울에 광범히 하게 분포되어 있는 골목상권이 힙스터 지역입니다. 과거에는 서울을 중심지와 변두리, 부촌과 서민 동네로 분류했는데 이제는 각 지역을 고유의 라이프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트렌드가 이렇게 변하다 보니 청년들 사이에는 나와 어울리는 동네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테스트가 유행입니다. 저도 해봤는데 저는 온화한 원칙주의지에게 어울리는 망원동이라고 하네요.


동네 라이프스타일은 지역 산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트렌드의 중심이 탈물질주의로 이동하자, 트렌드에 민감한 문화, 패션, 연예 산업이 힙스터, 보헤미안 동네에 모여있는 강북으로 이전합니다. 한 언론은 이를 '트렌드 1번지, 강남에서 강북으로'로 표현합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부상한 제주에서 이주민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도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입니다. 2010년 이후 제주 이주민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헤미안, 힙스터, 노마드, 히피로 표현해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부산은 다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산도 부르주아, 보헤미안, 힙스터, 히피, 노마드 지역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리합니다. 머물고 싶은 동네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주민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동네 문화로 만든 곳입니다. 라이프스타일 있는 동네, 라이프스타일 있는 주민 많은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입니다.


그런 동네는 주민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네 구조 자체가 일, 주거, 놀이를 한곳에서 할 수 있는 직주락 센터가 되어야 하고,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을 매력적인 일자리, 상업시설, 주거시설로 산업화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이 활동해야 합니다. 머물고 싶은 동네 공식을 '주민 라이프스타일+직주락+로컬 크리에이터 = 라이프스타일 있는 동네'로 정리해 봅니다.


네, 한마디로 소비, 일, 도시 등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변화가 라이프스타일에 달렸습니다.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지 않으면, 삶의 질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가오는 초-라이프스타일 경제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모든 강연을 '라이프스타일에서 미래를 찾는다'로 마무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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