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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02. 2022

홍대 창업 생태계의 연결자

미래 인재에게 꿈의 도시는 어디일까? 도시문화를 중시하는 미래 세대는 전원 환경의 실리콘밸리보다는 도시 어메니티가 풍부한 샌프란시스코를 선호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도심에서 살고, 일하며,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살기에 최고의 도시다. 소마(South of Market), 도그패치(Dog Patch) 스타트업에서 직장을 잡고 근처 주거지에서 살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웰빙, 보헤미안, 힙스터, 친환경, 유기농, 인디, 빈티지, 비건 등 젊은 세대가 원하는 모든 도시문화를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도시문화 속의 삶이 가능할까? 다운타운 라이프가 가능한 지역으로는 스타트업이 모여있고, 근무와 주거 지역이 가까이 있으며, 도시문화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강남, 판교, 구로, 홍대가 유망하다. 그중에서도 예술과 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산업이 형성된 홍대가 샌프란시스코 라이프스타일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홍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미 한 지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도심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 청년문화와 독립문화의 중심지 홍대에 2000년대 후반 스타트업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 후 홍대 스타트업 기업은 200여 개로 늘어 홍대는 이제 강남 테헤란밸리와 구로 G밸리와 더불어 서울의 3대 창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홍대 스타트업 산업의 발전에서 주목해야 할 성공 요인이 지역 공동체다. 홍대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지역 활동가가 홍대 문화를 좋아하는 창업가들이 모여 형성된 지역 산업이 새로운 창업 기업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구성원 협업과 네트워킹이 활발한 산업 생태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바로 지역 창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된 창업 기업 플랫폼 홍합밸리다.

 

홍합밸리가 걸어온 길

홍합밸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주)에이엔티홀딩스의 고경환 대표가 2013년 설립한 스타트업 협업 공간이다. 창업 후 꾸준히 성장해 이제 70개 가까운 스타트업 및 관련 기관과 협업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기업이 홍합밸리의 지원으로 창업했다.

 

2016년 8월 중앙일보는 텀블벅(서교동,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시지온(동교동, 소셜댓글 서비스), 미스터블루(동교동,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를 홍합밸리의 주요 벤처기업으로 소개했다. 카카오에 인수된 파크히어도 홍합밸리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홍합밸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행사가 '데모 프로그램'이다. '아트데이', '데모데이' 등주 1회 열리는 행사를 통해 다양한 네트워킹이 이루어진다.

 


연중 가장 큰 행사는 '홍합밸리 페스티벌'이다. 아티스트, 창업가, 소상공인이 만나 홍대 문화를 즐기며 스타트업 경험과 동향을 공유하는 자리다. 이 축제의 모델은 오스틴의 라이브 뮤직 산업을 배경으로 세계 최고의 게임, 엔터테인먼트, 하이테크 축제로 성장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축제다. 축제 참가자들은 인디 밴드의 공연을 즐기면서 창업자 버스킹, 창업자 전시, 기업 도슨트 전시, 창업가 멘토링, '홍합 피플 런치 톡톡'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킹과 공유 행사에 참여한다.

 

페스티벌이 보여주듯이 홍합밸리가 추구하는 벤처 모델은 문화와 창업의 융합이다. 고경환 이사장은 "뛰어난 기술이 없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홍합밸리 모델의 기반인 홍대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첫째, 홍대 문화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지역 인디뮤지션과 아티스트를 페스티벌, 데모데이 등 네트워킹 행사에 초대하고, 이를 통해 예술인과 창업가의 협업을 유도한다.

 

둘째, 홍대 문화를 활용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홍합밸리가 지원한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콘텐츠, 교육, 패션, 예술, 디자인, 여행, 식음료, 음악 등 이미 홍대에서 지역 산업으로 자리 잡은 분야의 기업이다. 홍합밸리가 지역 산업에 새로운 스타트업을 공급함으로써, 홍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창업 기업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지역 산업 생태계로 진화했다.

 

셋째, 작가와 소상공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한다. 홍합밸리의 전시공간을 제공해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작가와 협업해 그들의 역량을 활용한 사업을 기획한다. 홍대 지역에서 활동하는 셰프도 전시공간에 초대되는 '작가'다.

 

홍대,  골목상권 기반 산업 생태계의 전형

골목길 경제학에서 홍대 산업은 골목 문화 기반의 기업 생태계 모델로 중요하다.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된 산업 생태계는 전국의 모든 도시가 희망하는 지역 발전 모델이다.

 

지역 발전 차원에서 홍대 산업의 의미를 정리하면, 첫째, 골목 산업 중심지에서 창조산업 중심지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골목상권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려면, 골목 산업뿐만 아니라 창조인재와 창조산업을 유치해야 한다. 홍대의 창조산업이 더 발전하면, 홍대는 도시문화가 도시 성장을 견인한다는 리처드 플로리다의 창조경제론을 입증하는 한국의 첫 번째 도시가 될 것이다.

 

둘째, 지역 창업에 스타트업 문화를 결합했다. 다른 창업지원 기관과 달리 홍합밸리는 소상공인을 기술 창업자만큼 중요한 파트너로 지원한다. 홍대 지역에서 자전거 인력거로 택시,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헤이 라이더’도 홍합밸리가 지원한 기업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홍합밸리같이 소상공인 창업자에게 스타트업 문화와 기술을 전수하는 플랫폼이 절실하다.

 

셋째, 지역 문화에 특화됐다. 창업지원 기관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 지역 특성과 무관한 기술 창업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기술 창업이 중요하지만, 지역 산업 생태계의 주축이 될 수 있는 기업의 창업도 그만큼 필요하다. 지역에 기반한 창업지원 기관이라면 홍합밸리와 같이 기존 지역 산업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넷째, 소비자, 생산자, 전문인력 등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인재들이 한 곳에 모여 활동하는 라이프스타일 생태계를 구현했다. 구성원들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지역 문화의 생활화에 적극적인 홍합밸리는 단순한 산업 생태계가 아니다. 구성원들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이에 기반한 기업과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라이프스타일 산업 생태계다.

 

홍합밸리 모델을 다른 지역으로 이식해야 한다

세계 다른 대도시와의 경쟁이 심화하고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약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은 서울의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 글로컬 시대에 맞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도시산업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서울은 통합된 대도시로서 도시 전체의 자원과 환경에 적합한 산업을 육성하는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수의 ‘작은 도시’로 구성된 다중심(Policentric) 도시로 거듭나, ‘작은 도시’의 장점을 활용한 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한다.

 

도시산업 생태계는 창업과 창의성에 기반한 창조산업에 특히 중요하다. 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자동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기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초기 투자의 속성상 투자자는 자금만 대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경영, 마케팅 등 경영 전반을 지원하는 실제적인 공동 창업자이기 때문에, 창업가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자주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 창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있어 활용해야 할 자원이 지역 문화다. 지식과 창조경제 시대에는 전통적인 입지 조건보다 창조 인재를 유인하는 도시 문화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많은 도시가 내재된 가치와 문화를 키움으로써 창조도시로 발전했다.

 

서울이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살린 기업을 유치하고 개발하기를 원한다면 지역 고유의 특색을 포착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서울의 단위 지역들이 골목길 상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적 특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서 시작된 골목길 상권이 2000년대 중반 급속 한성 장세를 보이며 현재는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서울에만 70여 개 지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골목길 상권은  그대로 상권에 머무르고 있다. 홍대와 성수동 외의 다른 골목상권은 아직 창업의 중심지로 기능하지 못한다.

 

지역 창업 생태계가 한국 도시의 미래다

서울은 역동적인 문화를 가진 다양한 단위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그 잠재성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을 뿐이다. 단위 지역의 문화와 비교우위를 중심으로 창업 생태계와 골목길 경제를 건설하고 이들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서울은 글로벌 기업이 자라나는 든든한 토양이 될 것이다.

 

다행히 서울에는 홍대·합정의 홍합밸리, 성수동의 소셜벤처밸리와 같이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한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다. 앞으로 할 일은 이들 지역의 경험을 기반으로 지역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해 이를 서울의 다른 지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도시가 지역 특색을 살린 도시산업 생태계의 구축에 나선다면, 지역 창업 생태계는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 골목길 자본론, 2017

2022.1.2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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