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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01. 2021

홍대 디아스포라

통영 봉숫골에서 만난 1990년대 홍대

통영 봉평동 봉숫골은 제주 언어로 말하면 미륵도 중간산 지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수많은 바다로 둘러싸인 통영에서 주목받는 마을이 바닷가에서 2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과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봉숫골이 속한 봉평동은 용화사 입구에서 바닷가에 이르는 남북으로 3블록, 동서로 3블록을 차지하는 인구 만 명의 동네다. 봉평동 바닷가는 다른 한국 항구도시와 마찬가지로 횟집과 술집이 모여있는 유흥가다. 바로 옆 도남동과 같이 6개의 조선소를 보유한 산업단지이기도 하다. 매립을 통해 항만, 산업, 대형 상업 시설을 건설한 통영의 해변에는 작은 마을이 들어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내륙에 위치한 동피랑, 봉숫골이 문화지역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봉숫골은 천년사찰이라는 용화사 가는 길에 자리 잡았다. 용화사와 미륵산 자연 벚꽃나무 덕분에 오래전부터 통영시민이 봄철 꽃 보러 찾던 유원지였다고 한다. 유원지에는 일반적으로 먹자골목이 들어간다. 봉숫골에서도 (바닷가가 아니어서) 다소 생뚱맞은 찜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봉숫골이 동네로, 상권으로 사람을 모으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2012년 이후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운영하는 공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는 작은 예술가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공방, 서점, 베이커리, 카페,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반 음식점에도 예술가 기운이 가득하다.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여행 전문 사진작가가 요리하는 냉면집, 프랑스 자수 고수가 주인인 동네슈퍼, 이런 식이다.



봉숫골 상권의 현재와 미래


봉숫골 상권의 부상은 필자가 골목상권 분석틀로 제시한 C-READI 분석을 요청한다. 성공적으로 성장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창업자(E)가 접근성(A)이 좋고 골목 자원(D)과 문화 자원(C)이 풍부하지만 임대료(R)가 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이를 본 다른 창업자가 주변에서 새로 가게를 열어 지역만의 정체성(I)이 뚜렷한 하나의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먼저 문화자원(C, Culture)이다. 봉숫골의 문화시설 앵커는 전혁림미술관이다. 바로 아래 위치한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책방이 또 하나의 앵커다. 전혁림미술관과 봄날의책방이 동네 상권을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남해의봄날 대표는 전혁림미술관이 좋아 봉숫골로 이전했다고 한다.


두 번째 성공 조건이 임대료(R, Rent)다. 봉숫골은 아직 빈 공간이 많은 곳이다. 곳곳에서 나대지와 텃밭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자본’이 투자하는 곳이 아님을 의미한다. 새로 진입한 사업자가 집을 사서 그곳에서 사업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안 하고 사업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토지 가격이 상승하지만,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나 감탄할 정도로 주택 가격이 저렴하다.


기업 생태계(E, Entrepreneurship) 상황이다. 전통 노포와 힙한 공간이 균형 있게 분포돼 있는 건강한 상권이다. 골목상권의 기본 업종인 독립서점,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게스트하우스 인프라가 탄탄하고, 갤러리, 공방, 외국 음식 전문점 등 다른 1세대 업종도 작은 마을임을 고려할 때 충분히 풍부하다. 봉평동 핫플레이스인 텐동 니지텐과 원 테이블 이탈리안 오월은 결국 예약하지 못해 체험하지 못하고 떠나야 할 상황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성격의 2세대 업종도 진입하기 시작했다. 봄날의책방, 내성적싸롱 호심이 봉숫골학당, 연주회, 북토크 등 다양한 커뮤니티 문화행사를 조직한다. 아직 코워킹, 코리빙 시설은 보이지 않지만 누가 여기저기 보이는 노후 연립주택을 통째로 구매해, 청년 업무나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전국에서 인기를 모으는 그로서런트(마켓+레스트랑)도 어울릴 것 같다. 봉숫골에 통영 식자재를 팔고 이를 요리하는 공간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 만한 업종이 있는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성공한 지역이니 비슷한 성격의 출판사와 책방이 더 들어가면, 지역에 정말 필요한 책방마을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봉평동 지역에서 영업하는 꿀빵, 충무김밥 맛집을 기반으로 새로운 식가공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로컬 브랜드 생태계 전략이다.


다음 조건인 접근성(A, Access)은 모호하다. 대도시 역세권을 생각하면 교통이 편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걷겠다고 마음먹으면 통영 전체, 적어도 강구안과 미륵도를 포함한 원도심 지역은 걸어 다닐 수 있다. 강구안 지역에서도 정말 통영이 자랑해야 하는 해저터널을 타고 봉평동으로 넘어올 수 있다. 필자는 활용하지 않았지만 시내버스 교통도 편리하다고 한다. 자동차 접근성과 봉숫골 내부 보행 환경은 우수하다.


다섯 번째 조건이 공간 디자인(D, Design)이다. 다른 골목상권과 마찬가지로 봉숫골도 독특한 건축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통영 봉평동 봉숫골의 건축물은 1970년대 단독주택이다.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야외 공간(옥상, 테라스, 옥외계단), 외장(타일, 파스텔톤 페인트), 디자인(지붕, 창문, 대문)에서 통일성과 차별성을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집장사 집이 아닌 것 같아 지인에게 질문하니 필자가 본 주택들 대부분이 한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전 원도심, 춘천 옥천동, 안동 옥정동의 감각적인 공간 환경도 로컬 건축가가 존재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홍대 디아스포라


봉숫골 하드웨어의 특징이 로컬 건축가라면, 소프트웨어 특징은 뭘까? 다시 말해 골목상권의 마지막 조건인 정체성(I, Identity)은 무엇일까? 위에서 이미 예술가 마을을 정체성으로 제시했다. 남해의봄날이 먼저 자리 잡고 출판사와 일하는 예술가, 예술을 사랑하는 지인을 포함해 10명 이상이 봉숫골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들 이주민과 지역 예술가가 모여 작은 예술가 마을을 만들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홍대 디아스포라가 키워드로 떠 오른다. 홍대 초기 멤버들은 공통적으로 1990년대 홍대를 그리워한다. 2000년대 자본이 들어오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자 많은 홍대 창작자와 운영자들이 주변 지역이나 지역으로 떠난다. 홍대 지역에선 상수동, 연남동, 합정동으로, 이들 지역도 특색을 잃어 찾는 곳이 망원동이다. 현재 홍대 지역에서 1990년대 홍대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망원동이다.


일부는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 독립서점 운영자 중 상당 수가 홍대를 떠난 사람이라고 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제주가 상업화되자 다시 짐을 꾸려 이주한다. 현재 홍대-제주 디아스포라가 모이는 곳은 통영, 경주, 순천 등 지역 소도시라고 한다. 서울 망원동과 더불어 부산 망미동, 이곳 봉숫골이 홍대 전통을 계승한 상권이다.  


홍대 디아스포라는 다른 골목상권 어떻게 다를까? 골목상권 콘텐츠는 크게 5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인디, 소셜, 디자인, F&B, 카페다. 이중 인디, 소셜, 디자인이 홍대 몫이다. 홍대 디아스포라는 어디 가든지 인디, 소셜, 디자인 기반의 동네와 사업을 추구한다.


커피, 베이커리, 도시재생, 골목길 개발로 요약할 수 있는 F&B 상권은 2010년대 초반 힙스터 문화의 상륙으로 시작된 트렌드다. F&B 기반 골목상권의 원조는 경리단길이고 현재는 서울 익선동, 대전 소제동, 인천 개항로, 경주 황리단길이 F&B 골목상권의 전통을 이어간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골목상권은 1990년대 압구정 카페거리와 이를 이어받은 가로수길이다. 지역 곳곳에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음식점, 카페, 부티크로 구성된 가로수길 이름의 거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 도산공원, 한남동, 서울숲이 압구정동 카페거리 성격의 상권이 들어선 곳이다.   


농촌지역에서는 홍대, 압구정동, 경리단길과 다른 모델의 마을과 상권이 들어간다. 공동체와 유기농 중심이라면 홍성 홍동마을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도시 지역에서도 정부가 목포, 시흥에서 실험 중인 시민 자산화,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뉴딜을 통해 추진하는 주민주도 도시재생은 별도의 지역 재생 모델로 분류할 수 있다.


C-READI 분석은 봉숫골 상권이 왜 주목을 받는지를 설명한다. 모든 영역에서 골목상권으로 성공할 조건을 만족한 동네다. 물론 처음부터 그리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첫 가게로 진입한 기업이 상권과 동네를 연결해 만들어 낸 성과다. C-READI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도 제시한다. 건축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필자는 빈집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노후 아파트가 봉숫골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정부나 민간에 의한 리모델링을 통해 봉숫골에 필요한 공간을 공급하는 자원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


예술가 중심의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지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모든 동네가 동일한 방법으로 발전할 필요는 없지만, 자족적인 도시와 자생적인 지역 산업을 원한다면 홍대와 같은 도시산업 생태계로 발전하는 것도 대안이다. 봉숫골을 통영의 창조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물론 현장 지도자들이 이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역발전 철학의 차이인 것일까?   


<참고 문헌>

소도시, So.Tongyeong. 2021.

밥장.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남해의봄날. 2019.

치앙마이래빗. 바닷마을 책방 이야기. 남해의봄날. 2019.

단아. 바다 마을 다이어리. 두사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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