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20세기 산업사회를 종말 시켰나?

by 골목길 경제학자

20세기 산업사회란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제2차 산업혁명(1870-1950년대) 시대의 기술사회를 말한다. 이 기술사회는 1960년대 쇠락하기 시작해 1990년대에 이르면 전성기 원형의 모습을 상실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2차 산업혁명 사회와 달리 제1차 산업혁명 사회(1780-1870년대)의 종말은 순탄했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에너지 생산기술이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바뀐 것뿐이다.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을 추구한다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제2차 산업혁명 사회가 사회의 큰 저항 없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논리에 따라 제1차 산업혁명 사회를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산업혁명 시대의 종말은 달랐다. 19세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사회 저항에 부딪혀 전성기인 1950년대와 전혀 다른 모습의 탈산업사회,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 사회로 교체됐다. 산업사회와 탈산업사회의 가장 큰 차이는 성장동력이다. 산업사회의 성장 동력이 물질적 자본이라면, 탈산업사회의 동력은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이다.


탈산업 대전환의 주역은 인간사회의 획일화와 관료화를 초래한 제2차 산업혁명 기술에 정면으로 맞선 1960년대 서구의 지식인과 청년들이다. 그들의 전략은 19세기 휴머니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반反기술, 탈脫기술, 선善기술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반기술이 새로운 기술을 저지하는 전략이라면, 탈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인간 영역을 찾는 전략이다. 이에 비해 선기술은 새로운 기술에 이 보다 더 인간적인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로 맞서는 전략을 의미한다.


1960년대 이후 탈산업화 과정은 단순히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적극 수용한, 즉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이 일궈낸 결과다. 탈산업화 사회는 산업혁명의 연장이 아닌, 제2차 산업혁명 기술에 저항한 탈기술과 선기술 운동이 주도한 새로운 성격의 기술사회가 되었다.


1960년대 반기술, 탈기술, 선기술 운동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혁신 운동이다. 라이프스타일을 기술과의 관계로 설정하면, 반기술, 탈기술, 선기술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입장에 따라 결정되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하면, 20세기 산업사회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1960년대 라이프스타일 세력이다.


[反기술]

20세기에도 사회주의자와 환경주의자 중심으로 새로운 기술을 저지하려는 네오-러다이트 활동이 활발했다. 그렇다고 노동자가 기계를 파괴하는 고전적인 러다이트 운동이 다시 출현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가내 수공업 노동자와 같은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할 노동자 계급은 오래전 사라졌다. 대량생산 시스템에 편입된 노동자들은 기계를 거부하기보다는 기계의 과실을 더 많이 가져온 방식으로 투쟁했다.


전투적인 반기술 운동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과격 저항 단체와 그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폭력을 통해 산업사회의 억압성과 투쟁하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학, 항공사에서 과학기술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우편물 폭탄물을 보낸 유나바머(Unabomber) 시오도어 카진스키다. 1996년 가족의 신고로 체포될 때까지 18년 동안 16회에 걸쳐 우편물 테러를 감행했다. 미국 몬태나주 산속 오두막집에서 수도와 전기 없이 은둔해 산 과학기술 문명 혐오자였다.


1995년 카진스키는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주요 언론사에 자신의 反산업사회 논문을 게재할 것을 요구했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3만 5000자에 달하는 이 논문을 실었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그는 산업혁명을 통해 등장한 기술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기술 체제는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고 파괴적이며, 더 큰 문제는 저지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 추세라면 기술사회는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며, 기술을 전면 거부하기 전에는 디스토피아를 저지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脫기술]

1960년대 저항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히피 중심의 반문화 운동이다. 시어도어 로작(Theodore Roszak)에 따르면 히피 운동이 타깃 한 공공의 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고화된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 또는 기술전체주의(Technopoly)다. 1960년대 청년들은 그들을 전쟁과 의미 없는 무의미한 삶으로 내몬 것은 특정 개인이나 계급이 아닌 과학기술 기반의 기술관료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믿었다.


히피 운동은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위와 인간 소외에 저항한 신좌파와는 다른 성격의 운동이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에 참여한 정치 운동이라도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보다는 생활 혁명에 우선순위를 둔 생활 운동에 가깝다. 이 운동은 또한 반기술이 아닌 탈기술 성격을 띤다. 히피는 기술을 거부했지만 기술과 직접 싸우기보다는 기술의 영향에서 떨어진 영역에서 기술과 독립된 탈기술적 삶을 살기를 원했다.


히피의 탈기술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자연 공동체다. 많은 히피가 과학기술에서 자유로운 삶을 찾아 자연과 농촌 공동체를 건설했다. 최대한 자연에서 생활 자원을 조달하고 생활용품도 기계보다는 손수 제작(DIY)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가 의식주 생활혁명이다. 요가와 명상, 건강빵, 아티장 커피, 곰부차, 그래놀라, 채식, 천연 염색, 티셔츠와 청바지, 유니섹스 의상, 유기농, 자연식, 팜투테이블, 로컬푸드 등 현대 유행하는 생활 문화 트렌드가 모두 히피 문화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할 만큼 생활 영역 전반에서 자연과 공동체 친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세 번째가 팝 아트(Pop Art)의 부상이다. 포스터, 음악 등 일상생활에서 직감적인 커뮤니테이션 방식을 선호한 히피는 예술에서도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팝 아트, 키네틱 아트, 옵 아트를 추구했다. 현대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스트리트 컬처도 히피 세대가 추구한 반문화 예술의 힘으로 성장했다.


[善기술]

1960년대 저항 운동의 가장 큰 유산은 역설적으로 기술 분야다. 저항 문화가 전 사회를 휩쓸었기 때문에 과학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히피의 영향을 받은 히피 세대 과학자들이 개발한 선기술은 크게 적정 기술, 아티장 푸드, PC, 인터넷 등 개인 해방 기술, 해커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적정 기술 개념은 1960년대 독일 경제학자 슈마허(E.F. Schumacher)의 '중간 기술' 용어에서 시작된다. 윌리엄 모리스와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은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빈곤층과 개도국에 필요한 기술은 최첨단이나 거대(Super) 기술이 아닌 전통, 환경과 공동체에 기반을 둔 기술을 의미하는 '중간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도국을 위한 기술로 시작한 적정 기술 운동은 최근 선진국에서도 생태위기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1960-1970년대 히피 공동체와 농촌 지역 활동가들은 건강한 음식 문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티장 산업이 탄생한다. 이 산업은 대량생산 식품과는 다르면서 일반 가정이 만들 수 없는 장인 수준의 식품을 생산한다. 아티장 선구자들은 지역의 건강한 식자재나 일반 식자재에 유럽의 식품 가공 기술이나 생산자 개인의 철학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치즈, 잼, 샤퀴테리, 커피, 아이스크림 제품을 생산했다. 초기에는 아마추어 수준의 제품을 생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과는 다른 스타일로 지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의 개발에 성공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두 명의 히피 사업가가 창업한 버몬트 주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앤 제리스'다.


현대 첨단기술 산업을 주도하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기원도 1960년대 저항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1950년대 IBM, DEC 등 동부의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 기업들이 미국의 컴퓨터 산업을 지배했다. 이들 기업이 베트남 전쟁과 핵전쟁의 위험을 초래한 군산복합체의 핵심 축이라고 생각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반문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개인이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개인 컴퓨터(PC)를 개발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개인을 중앙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개인과 개인의 연결을 확대하려는 이런 노력은 그 후 인터넷, 스마트폰, SNS, 블록체인 기술로 이어진다.


'개인 해방 기술'을 산업화된 곳이 실리콘밸리다. 군수산업에 의존한 실리콘밸리가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은 1970년대 PC 산업을 개척한 이후다. PC산업을 개척한 엔지니어와 사업가는 거의 예외 없이 개인을 정부와 대기업의 정보 독점에서 해방시키려는 히피 이단아였다. 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본인 스스로 히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친환경 라이프의 교과서인 '전 지구 목록(Whole Earth Catalog)'과 세계 최초의 온라인 커뮤니티 WELL(Whole Earth Lectronic Link)을 창업해 실리콘밸리의 인터넷과 공유 경제 기반을 다진 스튜어트 브랜드다.


개인 해방 기술의 또 하나의 흐름은 컴퓨터 산업의 활동가들이 대기업과 정부의 정보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한 해킹과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이다. 해킹은 디지털 장치나 소프트웨어의 약점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이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은 리눅스(Linux)와 같이 인터넷을 통해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완전 무료로 공개하는 운영시스템을 장려하는 행동이다. 해킹과 오픈 소스 운동 둘 다 기술에 저항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 활동을 통해 기술 시장의 경쟁성과 개방성을 높이고 보안 기술 등 기술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선기술 전략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한 대로 히피 세대가 개척한 개인 해방 기술은 1980년대, 1990년대 인터넷, 스마트폰, SNS, 플랫폼, 공유경제, 블록체인으로 발전하면서 기술사회를 개인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한계 비용 제로 사회'로 이끈다. 선기술을 통해 기술사회가 오랫동안 염원한 인간 중심 기술사회의 이상에 근접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 혁신이 주도한 제3차 산업혁명 사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첫 번째가 플랫폼 기업의 독점화다. 플랫폼 비즈니스 구조 상 일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수밖에 없고, FAANG으로 대표되는 Big Tech 기업들이 새로운 데이터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시장과 데이터 지배력을 기반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두 번째 위협이 AI의 확산이다. Al의 위협은 단순히 노동 대체에 그치지 않다. AI는 그전 기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과연 현대 사회가 Big Tech와 AI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960년대 경험에 비춰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현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반-탈-선기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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