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하면, 무엇을 연상하시나요? 저는 경제기획원, KDI, 남덕우, 김재익, 사공일 등 1960-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주역들이 떠오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테크노크라시는 정치적 압력과 부패 유혹을 떨치고 오롯이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용감하고 능력 있는 관료와 관료조직인 거죠. 반대말로는 포퓰리즘 정도를 연상합니다.
그런데 서구, 특히 미국은 다릅니다. 테크노크라시를 경계하고 일부는 적대적입니다. 테크노크라시를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해합니다. 기술 자체를 인간과 인간 중심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는 문화와 전통을 반영합니다. 연관어인 기술사회, 테크노폴리(기술전체주의)도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입니다.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돈 룩 업(Don't Look Up)'입니다. 영화의 최대 빌런은 대통령 제이니 올린과 하이테크 기업가 피터 이셔웰입니다. 이셔웰을 테크노크라트라고 표현한 언론 기사를 보신 적 있으시죠? 미국인들은 이 두 사람의 행동에서 테크노크라시 단어를 연상하나 봅니다. 개념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지구를 멸망의 길로 이끈 것이 기술산업과 연방 정부의 연합이니까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기술과 기술사회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온도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는 기술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현실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강구하는데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서구에서 기술에 적대적인 문화가 운동으로 확산된 발단은 핵무기와 환경파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술사회라는 단어 자체가 기술 주도 사회의 위험을 경고한 프랑스 철학자 쟈크 엘룰(Jacque Ellul)의 저서 ‘기술사회(The Technological Society)'(1954)에서 유래합니다.
시오도어 로작(Theodore Roszak)에 따르면, 1960년대 서구사회를 휩쓴 반문화(Counterculture)가 해체하길 원한 기성세대 문화가 기술관료제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인권운동, 평화운동으로 표출됐지만, 저변에는 인간사회를 핵 종말의 위험으로 몰고 간 군산연합체(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그리고 이를 추동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지목한 기술관료제에 대한 저항심이 작동했습니다. 많은 반문화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을 거부하고 원시 종교, 신비주의, 환각, 자연 공동체에서 대안을 찾은 이유입니다.
1960년대 기술 관료제의 실패를 대표하는 인물이 베트남 전쟁을 이끈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입니다. 자동차 회사 포드에서 커리어를 쌓은 그는 모든 문제를 수치로 측정하고 해결하는 과학 경영을 신봉하는 전문 경영인입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할버스탬이 '최고의 인재들'이라고 부른 케네디 대통령 인너 서클의 일원입니다. 많은 사람이 전쟁의 사회적, 인간적 측면을 무시하고 공장 운영하듯이 기계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그를 비판합니다.
맥나마라뿐이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을 이끈 엘리트 사회 전체가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베트남 전쟁을 기술관료제의 산물로 통렬히 비판한 책이 데이비 할버스탬(David Halberstram)의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1972)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기술관료제는 베트남 전쟁 실패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엘룰, 로작, 할버스탬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지배 구조를 테크노크라시로 규정해 이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의 엘리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테크노크라트에서 찾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테크노크라시를 명시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의 평판도 좋지 않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 ‘테크노크라시 운동(The Technocracy Movement)’이 공식적으로 출범합니다. 1910년대부터 테크노크라시를 옹호한 해롤드 스캇이 이 단체의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당시 미국 사회를 위협한 경제 공황에 대한 대안으로 테크노크라시를 제안한 스캇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테크노크라시 운동의 기본 구상은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에서 빌려옵니다. 베블런은 ‘엔지니어와 가격 시스템’(1921)에서 공학 원칙에 기반한 이상 사회를 제안합니다. 엔지니어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대기업 소유주들이 포기한 경영권을 엔지니어와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모든 물자는 국가에 의해 분배하며, 임의적인 화폐 가치에 기초한 가격 제도를 폐지합니다. 기술이 생산을 극대화해 성장, 분배, 복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테크노크라트가 지지한 정치 체제는 '기술자의 독재’입니다. 노동자의 독재가 사회주의라면, 테크노크라시 운동은 기술자의 독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 거죠.
테크노크라시 운동이 이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독재 체제를 제안하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테크노크라시 운동이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기술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실현 방식에 있는 거죠. 에드워드 벨라미 등 다른 과학기술 유토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성, 규율, 질서 등 집단주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유, 창의성, 자아실현 등 개인주의 가치를 희생시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서 테크노크라시가 부정적인 단어가 된 배경에는 부정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불평등, 환경파괴, 전쟁 등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술사회가 초래한 부정적인 영향을 체감한 거죠. 이 과정에서 기술과 사회를 연결한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기술과 기술사회는 긍정적인 단어입니다. 한국 경제 성장신화, IT 혁신 신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입니다. 기술과 물질의 고리가 이처럼 완고하기 때문에 탈원전과 원전 복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논의도 경제적 득실 논쟁으로 귀결됩니다.
경제 성장과 IT 산업의 그늘에 대한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불평등, IT 격차 등 물질주의적 분배 문제가 논쟁의 초점입니다. 기술이 윤리, 자유, 정신, 문화 등 비물질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는 둔감합니다. 기술 문제의 원인도 기술을 '악용'하는 자본과 대기업에서 찾는 경향이 강합니다. 기술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한국 개인주의 역사입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자유를 쟁취한 서구에서는 아직도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체제와 변화에 민감합니다. 기술도 인간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거죠.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만큼 개인 자유의 취약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면 쉽게 획득한 거죠. 관료가 지배한 유교 사회에 익숙하기 때문에 엘리트와 기술관료에도 우호적이고요. 이런 이유에서 기술과 기술사회에 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개인주의가 약해서 기술주의가 강합니다.
<참고 자료>
David Halberstam, The Best and the Brightest, Modern Library, 1969
Harold Loeb, Life in a Technocracy, Syracuse University Press, 1996 [1933]
Neil Postman, Technopoly, Vintage Books, 1993
Theodore Roszak, The Making of a Counter Cultur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8
Howard Segal, Technological Utopianism in American Culture, Syracuse University Pres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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