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인간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하는데

by 골목길 경제학자

미래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할 일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인간이 필요한 물건을 다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인간은 예술가 또는 예술가적 활동가가 되어 아름답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면 된다고 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도 그런 사회다. 그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생산의 한계 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낮춰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질적 상품과 서비스가 무료로 공급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 아닌 사회적 기업, 임팩트 투자, 공유경제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조적 연대 활동이라고 말한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시민에게 일정 수준의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 기본소득 지지자들도 인간에게 예술가와 활동가적인 삶을 제안한다. 인간이 기본소득을 통해 얻은 여가를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활동에 할애할 것으로 전망한다 (루, 2018). 종교, 문화, 봉사, 공감이 기본소득 사회의 중심 활동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재능이다. 예술가와 활동가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설사 문화의 범위를 넓히고 혁신적인 교육을 통해 다수의 사람을 예술가로 만든다고 해도 그들을 문화산업에서 성공시키는 일은 다른 문제다.


문화산업은 전통적으로 슈퍼스타 시스템이 작동하는 승자 독식의 불평등한 시장이다 (Rosen, 1961). 한두 사람의 슈퍼스타가 점유한 시장에서 절대다수의 예술가는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관중 없는 예술가가 행복할 수 있을까? 슈퍼스타 시스템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나 기본소득 사회에도 적용된다면, 이들 사회가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예술가로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지만, 상대적으로 정교한 예술 사회 모델을 제시한 유토피아 작품이 이미 1930년대에 나왔다. 당시 테크노크라시 운동을 주도한 작가 해롤드 로엡의 ‘테크노크라시에서의 삶(Life in a Technocracy)’(1933)이다.


로엡은 이 책에서 기술이 인간의 생산 문제를 해결한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가 인간에게 어떤 삶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그가 제안한 테크노크라시는 엔지니어가 지배하는 독점 기업 집단들이 소비자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가장 효율적인 기술로 생산하고, 소비자에게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기본) 소득을 지출하는 경제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엔지니어 중심으로 생산, 유통, 판매를 결정하기 때문에 기술이 지배한다는 의미의 테크노크라시로 불린다.


로엡의 테크노크라시에서 사는 주민의 공식적 의무는 지정된 기업에서 수행해야 하는 하루 4시간, 주 16시간의 노동이다. 모든 사람이 이 노동의 대가로 동등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이 소득은 생존과 일정 수준의 문화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당해 쓰지 못한 돈은 소진되며 다른 사람에게 이양할 수 없다. 저축과 자본 축적이 불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경제다.


생필품 구매 후 남는 소득과 의무 근무 시간 외의 여가는 종교, 교육, 오락, 예술 활동에 쓸 수 있다. 테크노크라시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와 기본소득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로엡은 문화산업의 슈퍼스타 시스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로앱의 해법은 문화산업을 본질적으로 지역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중앙 집중(Centralization)과 상품 표준화(Standardization)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통일된 시장이 이윤을 극대화하길 원하는 기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이 시장을 한 두 개의 대도시가 지배하는 것이 보편적인 자본주의 경제 구조라고 말한다.


로엡은 경쟁과 이윤 극대화가 사라진 테크노크라시의 문화산업은 자본주의와 비교해 현격하게 다양하고 분산된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지역과 경쟁하지 않는 각 지역이 전국 시장보다는 지역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에 맞는 문화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도 지역 자원을 활용하고 지역 기준으로 평가받는 로컬 크리에이션 영역에서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중앙정부의 역할도 존재한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수요가 있는 상품을 취합해 중앙 생산체제를 동원해 공급한다. 예컨대 고전에 상당하는 문학작품의 출판과 판매는 중앙정부가 맡는다. 새로운 유형의 예술과 콘텐츠의 창작은 개인이나 지역의 일이 된다.


로엡의 시스템이 디자인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연 인간이 이윤 유인 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을까? 한해 배정된 화폐를 이양할 수 없다고 해서 이윤 극대화나 저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금지한다고 해도 물물교환을 통한 저축과 이윤 극대화를 저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로엡의 기본 문제의식은 수용해야 한다. 다수 인간이 예술가로 활동하려면 문화산업을 지역산업으로 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선호를 지역 단위로 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지역 단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문화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창조산업과 창조인재의 수도권 집중을 방치하는 현재 한국의 정책 기조가 과연 일의 미래에 부합하는 것일까?



<참고 문헌>

한스 루, 기본소득, 새로운 삶의 형태를 위한 제안, 연세대학교, 2018

Harold Loeb, Life in a Technocracy, Syracuse University Press, 1996 [1933]

Jeremy Rifkin, The Zero Marginal Cost Society, St Martin's Griffin, 2015

Sherwin Rosen, "The Economics of Superstars", American Economic Review, 71: 845-58


Photo by Fabio Ballas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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