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Al가 '인간성을 무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Al의 반대는 인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여기서 기술은 제조나 제작 기술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인간 중심 기술이란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사고 능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는 기술일 것이다.
정재희(2020)는 디자인 싱킹을 AI가 모르는 공감의 기술로 제안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과 연계돼 있다. 순수 과학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다. 디자인 싱킹은 인간 중심 디자인의 철학 아래 만들어진 방법론이다. 인간에 대한 공감을 출발점으로 해결책을 도출한다(p.4)."
궁금해진다. 디자인 싱킹이 왜 인간을 위한 기술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본 디자인 개념의 설명이 필요하다. 디자인 싱킹의 결과물은 이를 통해 도출한 제품과 서비스다. 디자인 싱킹에서는 이 결과물을 대상what이라고 부른다. 대상이 사용자나 소비자에게 주는 최종 가치는 결과result다. 대상과 결과의 관계가 작동 원리how다.
일반적인 논리적인 사고방식인 연역법과 귀납법을 대상, 결과, 작동 원리로 설명해보자. "연역법은 대상과 작동 원리를 알 때 결과를 예측하는 논리적 방법이다. 귀납법은 대상과 결과를 알 때 작동 원리를 예측하는 논리적 방법이다(p. 15)." 연역법 문제 해결의 핵심은 작동 원리다. 작동 원리를 논리적으로 도출한 후 대상을 그 원리에 대입하면 결과는 자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귀납법은 대상과 결과를 모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규칙성을 발견해 작동 원리를 예측한다. 연역법이나 귀납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하다. 새로운 작동 원리의 발견이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서 강조하는 이론과 가설이다.
디자인 싱킹이 따르는 사고방식은 귀추법abductive이다. 주어진 결과만 보고 대상과 작동 원리를 모두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귀추법이다.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디자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다(p. 16)." 디자인 싱킹이 집중하는 문제는 결과, 즉 사용자가 추구하는 가치다. 기존의 카테고리, 이론, 개념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TV를 디자인하는 문제가 주어졌다고 가정하자.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TV의 카테고리는 콘텐츠 소비 디바이스다. 이 범주 안에서 도출할 수 있는 디자인 설루션은 더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TV 디자인이다.
디자인 싱킹은 다르게 접근한다. "TV에서 사용자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이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새로운 디자인 해결책을 제시한다(p. 17)." 소비자가 TV를 콘텐츠 소비 디바이스가 아닌 장식품으로 여긴다면 전혀 다른 유형의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
구체적으로 디자인 싱킹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 단계는 "공감하기 - 정의하기 - 아이디어 도출하기 - 프로토타입 제작하기 - 테스트하기의 다섯 가지 단계다(p. 17)." 연역법과 귀납법과 같은 과학적인 논리 방법과 가장 큰 차이점은 1단계 공감하기다. 인터뷰, 관찰, 설문, 브레인스토밍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사용자의 숨겨진 니즈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디자인 싱킹이 전통적인 디자인과 다른 것은 체계적인 디자인 프로세스 도식화다. 정재은이 디자인 싱킹을 6 단계 패턴으로 정리하듯이, 가지와라와 이바(2018)는 공간 기획을 32개 패턴으로 도식화한다. 도식화와 더불어 설루션의 범주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태블릿 컴퓨터의 디자인 테마를 모바일 TV 세트 또는 슬림 오피스로 설정하면, 선정된 범주에 따라 다른 성격의 설루션을 찾게 된다.
디자인 싱킹이 인간 중심적인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계적인 논리나 작동 원리가 아닌 사용자의 가치와 니즈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데 있다. 사용자의 가치에서 대상과 작동 원리를 동시에 도출하기 때문에 대상과 작동 원리가 원천적으로 인간의 니즈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Al 알고리즘으로 이를 해석하면, 디자인 싱킹은 Al 알고리즘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작동 원리가 아니라 Al 알고리즘으로 전환되기 어려운 인간의 가치에 기반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
사용자 가치를 실현하는 기술이 착한 기술이라는 주장은 사용자 가치 자체가 착하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과연 사용자의 욕구가 선한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현재 환경 파괴, 대도시 집중, 자영업 위기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편리함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만으로는 착한 기술을 만들 수 없다. 하라 켄야(2014)는 이런 디자인의 딜레마를 디자인의 역할을 한 단계 높임으로써 해결하려 한다. 그는 일찍이 디자인을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고 표현했다. 욕망을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욕망을 교육해야, 즉 더 높은 수준의 욕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디자인은 미의식과 같은 높은 수준의 욕망의 바탕에서 탄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잘 고안된 디자인은 역으로 사용자 욕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p.7-8).
좋은 기술로서 디자인의 가능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디자인의 역사를 리뷰할 필요가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최근에 개편한 디자인 분류체계는 디자인을 제품 디자인, 시각/정보디자인, 공간/환경디자인, 패션/텍스타일 디자인, 서비스/경험 디자인, 디자인 일반,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디자인, 산업공예 디자인 융합디자인 등 9개 분야로 나눈다.
아직도 다수의 일반인이 생각하는 디자인은 제품의 외형을 보기 좋게 만드는 스타일링이다. 그런데 한국디자인진흥원 분류체계는 디자인이 실용적 미술 영역에서 사회과학 영역으로 확장한 것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도 동시에 사물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에서 제품, 서비스, 프로그램, 정책, 커뮤니티 등 인간 사회에 중요한 모든 것의 디자이너, 기획자, 제안자, 설계자로 진화했다.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문제 해결 방법으로 부상한 것일까?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1969년 디자인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렇게 표현했다. "디자인은 현재의 상태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흔히 산출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디자인은 다양한 층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디자인의 정의를 보자. 디자인은 디자인(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계획)을 디자인(행동)한다. 디자인이 명사인 동시에 동사로 표현된다(한국디자인진흥원, 2022; Heskett, 2005).
문제 해결 툴로서의 디자인은 목적과 산출물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다. 디자인을 비즈니스 또는 사회 혁신을 위해 활용하는지에 따라 비즈니스 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Business Innovation), 사회 혁신을 위한 디자인(Desgign for Social Innovation)으로 분류한다. 디자인 산출물은 그래픽/일러스트레이션, 제품, 인테리어/공간, 서비스, 브랜드, 전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출물 구분 방법 중의 하나가 디자인을 구성(Design as Forming), 과정(Design as Process), 전략(Design as Strategy)으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이처럼 문제 해결 방법으로 활용하면 기업과 공공기관 의사 결정의 전 과정에 적용될 수 있다. 위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기업은 재화를 생산하는 가치 창출 과정에서 디자인을 스타일링, 프로세스, 전략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디자인 툴을 사용해 가치 창출의 주체와 이해관계자의 조직,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디자인이 문제 해결 툴로 부상한 배경에는 사회 과학의 한계성이 있다. 경제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은 사회 현상을 결정하는 사회적 변수와 이들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는데 집중한다. 예컨대 이미 존재하는 기업과 산업이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좋은 이론을 제공한다. 하지만 기업과 산업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론은 분석 대상이 아니다. 사회과학 이론적 틀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디자인학이 뭔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통찰과 분석틀을 제공하게 된다. 디자인학이 사회과학이 채우지 못하는 공간을 채운 것이다.
디자인이 전문가의 영역일까?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에 따르면 디자인은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를 찾아내고 창의적으로 해결해내는 디자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경제 활동을 하는 개인에게 디자인이 왜 필요한 것일까? 실행 단계에서 전문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모든 개인은 현대 경제에서 디자인 싱킹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자원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예를 들어 보자. 그에게 디자인 역량과 지원은 무엇일까?
브랜드와 브랜딩 - 로컬 크리에이터는 로컬 브랜딩으로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는 브랜드다. 브랜드 이념, 스토리를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마인드 매핑, 발상 기술 등 다양한 디자인 툴을 활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 디자인 -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은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주민과 주민을 연결해 탄탄한 지역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다양한 커뮤니티 디자인 기술을 적용해 커뮤니티 참여를 유도하고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공간 기획 - 오프라인 공간과 장소를 기반으로 창업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필수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자산이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다. 건축, 인테리어, 파사드 등 공간 기획 전 영역에서 소비자 니즈와 운영자 철학을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이 필요하다.
서비스 디자인 - 고객 니즈를 발굴하고 고객 경험 극대화를 위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에 필요한 디자인 툴이다.
시각 디자인 - 패키지, 브랜딩, 광고, 일러스트 등 고전적인 시각 디자인 기술을 활용하거나 적어도 기본 개념과 응용 방식 정도는 이해해야 창업자가 원하는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인 싱킹은 사고방식의 전환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한다. 개인이 장기간 훈련 없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적용 과정에서 개인의 창조력과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Creative and Social Intelligence)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강하게 만드는 착한 기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디자인에서 기술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망고보드, 크리에이터링크, 포토숍 등 개인의 디자인 역량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기술이 있는가 하면, 파라메트리시즘(Parametricism) 등 디자인을 자동화하는 기술도 동시에 증가한다. 하나의 가능성은 인간은 기본 콘셉트를 제공하고 나머지 디자인 과정은 기계에게 맡기는 미래다. 디자인이 인간을 보조하는 기술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예측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예술 창작, 독립적인 가치 판단 등으로 확장하는 AI 기술의 추세를 볼 때 디자인의 핵심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영원히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디자인 사고 체계의 알고리즘화가 사화 과학과 비교해 어렵다고 해서 영원히 알고리즘화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 중심의 기술사회의 건설을 위해 개인의 디자인과 디자인 싱킹 역량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디자인만큼 개인의 자율성과 인간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술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인류는 착한 기술 개발을 디자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자인 분류 방식과 그림은 우은지 카이스트 박사과정이 제공했다.
<참고문헌>
Danish Design Center (2003). The Design Ladder: Four Levels of Design Maturity.
Heskett, J. (2005). Design: A very short introduction (Vol. 136). Oxford University Press
가지와라 후미오, 이바 다키시, 기획은 패턴이다, 북스톤, 2018.
야마자키 료, 커뮤니티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2.
에치오 만치니,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안그라픽스, 2016
하라 켄야, 내일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4.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경험 디자인 이론서, 2022
황효진,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유유,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