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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20. 2022

건축환경과 도시산업의 관계

서울은 현재 문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미술관, 박물관, 오케스트라, 오페라 등 전통적인 문화예술 분야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지만 대중문화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이 선도하는 대중문화 분야는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음악, 영화, 드라마뿐이 아니다. 보이지 않게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분야가 도시문화다. 

 

2015년 뉴욕타임스는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닌, 100개의 도시로 평가했다. 서울의 동네가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의미다. MZ세대에게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는 동네를 찾아주는 테스트가 생길 정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은 중심부와 변두리, 부자동네와 서민동네로 단순하게 분리할 수 있는 획일적인 도시였다. 

 

해외 언론도 동의한다. 세계적인 시티 가이드 매거진 <Timeout> 매년 세계에서 가장 쿨(Cool)한 동네를 발표하는데 2018년에는 을지로가 세계 2위, 2021년에는 익선동이 세계 3위에 올랐다. 영국 일간지 Telegraph는 2017년 홍대를 세계 2위의 힙스터 지역으로 소개했다.

 

서울 부흥을 견인한 것은 골목상권이다. 골목상권은  2000년대 중반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한 MZ세대가 여행 가듯 찾는 곳이다. 2005년 홍대, 이태원, 가로수길, 삼청동 등 4곳에서 시작된 골목상권은 이제 서울 전역에 67개로 늘어났다. 여행지가 된 서울의 동네가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서울 골목상권의 기원

2017년 <골목길 자본론>은 2000년대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에서 서울 부흥의 기원을 찾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은 한국보다 먼저인 1990년대 시작됐다. 보보스, 창조인재, 도시재생,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 인디음악, 클럽문화가 그 시대의 키워드다.

 

글로벌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이 서울에 자동적으로 이식된 것은 아니다. 당시 서울 환경이 3가지 이유에서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에 유리했다. 

 

첫 번째가 도심 건축환경이다. 2000년대 서울 시내에 예술가와 크리에이터가 들어갈 수 있는 도시 공간이 풍부했다. 우리가 보통 골목상권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창의성을 발휘하고 장사하기 좋은 건축 자원이 풍부했던 이유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건물주와 토지주가 건축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이 기술이다. 기술이 크리에이터와 플레이어가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 비용(디자인 소프트웨어 등)이 낮아졌고, SNS와 위치기반 서비스는 광고와 임대료 비용도 현격히 떨어뜨렸다.

 

세 번째가 ‘나다움’ 현상이다. 나다움 열풍이 창작자 콘텐츠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확대했다. 나다움을 표현하길 원하는 창작자가 늘어났고, 나다움 추구에서 파생된 정체성 수요(개성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창작자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정리하면, 건축환경, 기술발전, 나다움 추구가 당시 세계를 휩쓸던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해 서울 도시 문화 부흥의 기반을 만들었다. 서울 도시 문화의 미래는 어떨까? 건축환경, 기술발전, 나다움 추구,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 중 도시 문화를 위협할 요인이 있다면 건축환경이다. 서울이 도시문화에 유리한 건축환경을 유지한다면, 서울의 동네와 골목상권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부정적인 사인이 있다면 그것은 2021년 부동산 파동으로 서울 도심 저층 지역을 재개발하려는 압력일 것이다. 과연 정치권이 원하는 대로 서울 도심 지역의 재개발은 순조롭게 이루어질까? 이미 골목상권으로 부흥한 지역에서 고밀도 재개발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건축환경과 공간구조에서 얻는 수익에 만족하는 건물주와 토지주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학과 건축학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는 건축환경과 도시문화의 관계다. 과연 서울의 골목 지역, 즉 다양한 연령대의 휴먼 스케일 건축물이 공존하고 보행 환경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지역만이 미래 세대가 원하는 도시 문화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가?

 

건축환경과 상권

서울 상권 판도를 보면, 골목상권이 도시문화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 가설을 체계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상권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분류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정의되는 상권은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상점가, 상권활성화구역이다.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상점가가 홍보, 가로와 간판 정비, 상인회 지원 등 일상적인 상권 지원을 위해 만든 장치라면, 상권활성화구역은 지역발전 정책을 지원하거나 침체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상권 활성화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상인 주도로 상권을 조직할 수 있으나 상권 지정 조건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골목형 상점가의 경우, 2000m² 이내의 면적에 위치한 30개 이상의 점포가 조직한 상인회가 토지주의 동의를 얻어 상권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나 일반인이 인식하는 상권의 개념은 다르다. 부동산 업계는 주로 상권을 역세권, 행정동, 대형시장 이름으로 표현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리단길’, ‘~길’ 등 상인들이 상권 지정 제도와 관련 없이 자신이 활동하는 거리 또는 지역에 부친 이름 또한 상권 명칭으로 통용된다.

 

상권 분류도 체계적인 기준을 따른다고 보기 어렵다. 상권관리시스템을 도입한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상권을 발달상권(도심, 부도심, 대로변), 전통시장, 관광특구상권, 골목상권(동네상권)으로 분류한다. 한 금융권 경영연구소 보고서에서 사용된 분류 방식은 중심상권, 몰링상권(대형시장), 골목상권(동네상권)이다. 문제는 기존의 상권 분류 방식이 2000년대 이후의 상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 있다. 

 

 

현재 상권 변화를 선도하는 상권은 젊은이들이 여행 가듯 찾는 ‘골목상권’이다.  오프라인 상권을 주도하는 골목상권이 다른 상권과 다른 점은 기업 형태와 판매 품목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골목상권이란 독립 가게와 독립 브랜드가 (중심이 되어 주로) 콘텐츠를 파는 상권을 말한다. 신도시와 대로변 상권은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상품을,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은 이들이 상품과 더불어 콘텐츠를 함께 판매하는 상권이 된다. 전통시장은 독립 가게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상권이다.

 

상권의 전반적인 트렌드는 콘텐츠로의 이동한다. 콘텐츠가 중요해짐에 따라 상권 고유의 특색과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상권이 온라인과 경쟁할 수 있다. 오프라인 상권 중 그 일을 할 수 있는 상권은 현실적으로 지역 문화를 살릴 수 있는 건축, 공간,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독립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원도심 골목상권이 유일하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도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으나, 다른 지역이 복사할 수 없는 수준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는 어렵다.  

 

골목상권이 지역경제에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업 생태계의 가능성이다. 골목상권 현상이 시작된 2000년대 중반의 중심 업종이 F&B,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이었다면,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복합문화공간, 라운지, 코워킹, 코리빙, 편집숍 등 상권에서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성격의 업종이 주축이다. 홍대, 성수동, 한남동 등 일부 1세대 골목상권은 리테일과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패션, 디자인, 화장품, 스타트업 등 지역 특색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창조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상권의 중심축이 콘텐츠로 이동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상권이 창조 커뮤니티로 진화한다면, 상권 정책도 골목상권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즉, 새로운 지역에 골목상권을 개발하고 기존 상권에서는 업종 고도화를 유도해야 한다. 전통시장, 신도시 상권도 공간 리모델링, 독립기업 유치,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을 통해 골목상권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상권 정책 트렌드는 긍정적이다. 서울시 로컬 브랜드 상권, 부산시 소상공인 산업화, 대구시 명품 골목상권 등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브랜드가 중심이 되는 상권을 육성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중앙정부의 소상공인 정책도 ‘강한 소상공인’ 육성을 강조한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현재와 같이 상권 중심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전국의 많은 상권이 자체적으로 로컬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도시문화의 전제조건은 건축환경

로컬 브랜드 상권 성공의 조건은 골목상권 창업자의 원활한 공급과 골목길 중심의 건축환경이다. 로컬 브랜드를 창업할 인재의 지속적인 유입과 이들이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거리와 건축물이 로컬 브랜드 상권의 필수 조건이다. 

 

그렇다면 지역 정부가 지역문화를 활용한 자생적인 지역산업을 원한다면 로컬 브랜드를 창업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 원도심 골목 자원 보호는 필수다. 문화산업과 콘텐츠 산업은 창작자와 플레이어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건축환경에서만 잉태되고 성장한다. 도시 외곽 벌판이나 산속의 단지에서 육성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로컬 크리에이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역대학이 로컬 크리에이터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대학에 로컬 크리에이터 교과과정을 보급해 지역 학생이 학교에서 로컬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로컬 창업에 대한 인식과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대다수의 지역대학 학생이 대기업 취업 준비 중심으로 교육받고 있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현장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도 중요하다. 체계화, 전문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창의적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가치를 차별화된 콘텐츠로 구현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해야 한다. 훈련 단계에서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기반으로 한 사업 아이템의 기획, 상권 필드 리서치, 현장실습, 비즈니스 모델 개발, 실행계획 수립까지 마스터할 수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도시, 건축, 문화, 교육, 소상공인 정책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재개발을 활성화하면 그 비용은 문화와 소상공인 산업이 지불한다. 창의적인 소상공인이 활동할 공간이 사라지면 청년세대가 원하는 도시문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필요한 글로벌 인재의 유치가 어렵게 된다. 골목상권을 산업적,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출처: 광주일보, 2022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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