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13. 2023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 창조화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콘텐츠의 관계에서 기술이 아닌 콘텐츠에 방점을 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창조화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창조화는 보수와 진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보수 진영의 창조화는 기업과 개인의 경제 활동에 초점을 둡니다. 진보 진영의 창조화는 시민과 커뮤니티의 창조력을 강조합니다. 미래의 창조화는 창조활동의 범위를 기업과 정부에서 개인, 시민, 공동체로 확대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 영역을 창조화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창조경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주는 기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창조세력은 서로 협력할 유인이 있습니다. 두 그룹 모두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에서 미래 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자유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또한, 국가주의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고 진정한 자유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창조세력이 서로 협력하여 창조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이 위기라면 그 위기의 본질은 지적 위기다. 한국 지식인 사회가 문명 전환기를 맞아 길을 잃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안하지 못한다.


대안 빈곤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디지털 전환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 전환이 시대정신으로 미흡한 것은 알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같이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지 못해 '어영부영' 디지털 어젠다를 따라가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새로운 시대정신 모색의 시작은 기술과 콘텐츠의 관계다. 미래 사회가 기술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기술과 콘텐츠 양 축으로 발전해야 한다. 일부에선 기술과 콘텐츠를 상호 보완하는 개념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결과물로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콘텐츠를 상호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맞다. 콘텐츠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기술을 보완하는 것이다. 기술과 비교해 콘텐츠는 인간성을 높은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는 (아직까지는) 인간의 영역이다.


이수만 SM 총괄 PD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라고 콘텐츠를 강조했다. 기술로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를 기술을 통해 전파하지만,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기술이 콘텐츠를 지원 또는 따라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과 콘텐츠를 포괄하면서 대비하는 개념으로 시대정신을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필자는 창조화를 그 개념으로 제안한다. 창조화란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자신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창조화는 기술과 콘텐츠 중 콘텐츠에 방점을 두는 개념이다. 창조성 개념 자체가 예술인의 창의력을 표현하는 단어로 시작됐다. 창조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창조도시 이론에서도 창조 활동의 주역은 예술가다.


한국 시대정신의 역사

민주화 이후 한국 지식인 사회는 계속 산업화, 민주화 이후 다음 시대정신을 찾았다. 대표적인 구호와 지식인으로는 1990년대 정보화(이어령), 1990년대 세계화(박세일), 2000년대 선진화(박세일), 2010년대 4차 산업혁명(슈밥)을 들 수 있다.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 발전, 노무현의 동북아시대와 균형발전, 이명박의 선진화,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윤석열의 자유주의 등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시대정신도 한국 지식인 사회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봉현의 '탈탄소화', 현진권의 '자유화'가 최근 산업화,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으로 제안된 키워드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문명 플랫폼 국가'를 제안한다. 오형규는 '조선화', 양상훈은 '저질화'로 시대정신의 빈곤을 풍자한다. 한국 사회가 다음 시대정신을 찾기는커녕 퇴보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진영의 창조화 개념

창조화는 보수와 진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이 창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대통령이 내건 창조화와 관련 키워드는 김영삼의 세계화, 이명박의 선진화, 박근혜의 창조화, 윤석열의 자유화다.


큰 흐름은 법제도(세계화, 선진화)에서 가치(창조, 자유)로의 진전이다. 최진석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물건만 있는 나라는 후진국, 물건과 제도가 있으면 중진국, 철학까지 받쳐주면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이 제도에서 철학으로 이동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창조와 자유가 자유주의 가치인 것도 고무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화의 의미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진보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로의 귀환이라고 비판하지만, 적어도 외교 분야에서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주의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주의를 고수하고 자유주의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 보수 지도자처럼 민족주의와 권위주의를 지향하면 민주주의 실패라는 국가적인 비극을 초래한다.


창조화를 구체적으로 추진한 지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한마디로 창조화로 표현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각 지역에 설립된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심으로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협력해 지역에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사업이 됐다. 지역 창업 생태계 사업에서 파생된 사업 중 하나가 로컬 크리에이티 지원 사업이다.


문화융성은 다양한 문화산업을 지원했지만 창조화 관점에서 중요한 산업은 지역 문화 산업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을 통과해 지역 문화 진흥의 기본 틀을 구축했다. 지역 도시의 문화 환경과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문화도시 사업도 지역 문화 진흥의 일환이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화도 창조화로 시작하는 것이 맞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신을 계승해 새로운 자유주의 어젠다를 개발해야 하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기업의 창조화를 개인의 창조화로 확대하는 것이 하나의 방향성이다. 개인의 자유화와 창조화를 중심으로 기업과 산업, 그리고 도시의 창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보수정당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자유주의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로 구현하는 움직임을 보고 싶다. 개인이 창조 활동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다.


진보 진영의 창조화 개념

보수 진영의 창조화 역사를 설명하면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수 있다. 창조 활동은 기본적으로 문화 활동인데 보수가 문화 활동을 주도한 적이 있나 질문할 것 같다. 맞다, 현장에선 진보 성향의 활동가가 창조 활동을 주도한다.
 
진보 창조화에는 문화기획,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등 3개 축이 있다. 첫 번째 축이 문화기획이다. 우리가 정부 사업 현장에서 만나는 문화기획자는 공공 분야 문화기획자다. 공연, 전시 등 순수 민간 분야에서도 문화기획자가 활동한다. 공공 문화기획은 2000년대 지역 축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새로운 분야로 자리 잡는다.
 
현재 관광, 상권활성화, 도시재생, 문화지구 등 많은 소지역 활성화 분야에서 공공 문화기획자가 활동한다. 김대중 정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기획 산업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보수 정권이 지원에 소극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모든 정권이 지원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두 번째 축이 사회적 경제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를 포괄하는 사회적 경제는 ESG 붐과 함께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다. 광의의 사회적 경제의 역사는 길지만, 정부가 본격적으로 제도화한 시기는 2010년대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고, 2014년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처음 발의됐다.
 
세 번째 축이 사회혁신이다. 민간에서 마을공동체, 리빙랩, 커뮤니티 디자인, DIT 등 다양한 기법으로 공동체 사업을 진행하지만,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원한 것은 2010년대다.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사회혁신센터, 마을공동체 등 박원순 시장 재임 시 서울시에서 실험된 다양한 공동체 사업을 중앙 정부 정책으로 과제화됐다(윤창영, 2019).


진보 정권을 창조화 키워드로 분류하면, 김대중의 문화기획, 노무현의 지역혁신, 문재인의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화기획,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을 창조 활동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지역, 사회, 공동체 문제를 문화적,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창조화가 기업과 개인의 경제 활동에 초점을 둔다면, 진보 진영의 창조화는 시민과 커뮤니티의 창조력을 강조한다.


세 분야를 서로 독립된 분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예술 개념이 들어오면서 생활예술공동체, 마을공동체, 순환과 공유경제 사업을 생활예술 활동으로 보기 시작한다(강윤주 외, 2020). 문화기획이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로 확장하는 것이다. 윤창영(2019)은 사회적 경제를 사회혁신의 한 분야로 분류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기업의 창조화, 즉 창의적인 기업의 육성에 치중했다면, 미래의 창조화는 창조활동의 범위를 개인, 시민, 공동체로 확대해야 한다. 사회의 전 영역을 창조화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새롭게 부상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문화 창조 경제가 주는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창조세력은 서로 협력할 유인이 있다. 두 그룹 다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에서 미래 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다. 현대 사회는 이제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사람이 조직사회에 속하지 않고 개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세상으로 진입한다. 정부가 할 일은 창조화 환경 구축이다. 즉, 개인이 개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두 세력은 또한 공통적으로 각자 자신의 진영에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주의자와 경쟁한다. 한편으로는 경제와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놓고 경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주의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창조화가, 즉 창조화로의 결집이 한국 사회가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주의 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참고문헌>

강윤주 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예술, 2020

윤찬영,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2019

매거진의 이전글 자립발전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