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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08. 2023

반복되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미국의 한 경제 매거진이 2021년 1월 미국 서부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상황을 도시의 죽음으로 표현했다.


포틀랜드가 죽는다고? 포틀랜드를 아는 독자는 경악할 것이다. 201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히던 포틀랜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포틀랜드가 죽었다면 직접적인 '사인'은 2020년 폭동이다. 그해 5월 미니아폴리스의 한 흑인이 체포 과정에서 행사된 경찰의 과도한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전역에서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포틀랜드 시위가 유독 격렬했다. 10월까지 진행된 소요사태로 인해 포틀랜드 도심이 마비됐다.


폭력 시위의 후유증은 다운타운 비즈니스 침체와 인구 감소로 나타났다. 많은 다운타운 비즈니스가 치안 문제로 문을 닫고 주민도 다운타운을 떠났다. 그 결과 2020-2022년 사이 포틀랜드 인구는 17,000명 감소했다. 총인구 635,000명의 6%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0년 이전에도 포틀랜드 상황은 불안했다. 2015년 이후 마약, 노숙자, 범죄가 포틀랜드 도심을 살기 어려운 동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5년 노숙자 거리 캠핑 허용, 2015년 마리화나 합법화, 2020년 마약 사범 경범죄 처리 (100달러 벌금 부가) 등 포틀랜드시가 취한 일련의 '약자 관대' 조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노숙자, 마약, 범죄가 포틀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포틀랜드를 비롯해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시카고, 뉴욕 등 2000년대 슈퍼스타 도시로 부상한 대도시가 모두 마약, 노숙자, 범죄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에는 이민자 수용 문제까지 불거져 주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게다가 2020년 코로나 위기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인구가 밀집하고 집값이 비싼 도심 지역을 떠났다.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자 오피스 공실율이 늘어나고 오피스 지역의 소상공인이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많은 주민들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다운타운이 1980년대 공동화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나 우려한다.



대도시 위기의 본질

미국 대도시는 회복할 수 있을까? 미국 대도시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도시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대도시 도심(다운타운)의 반복적 위기라고 보는 것이 맞다.


미국 대도시는 다운타운과 서버브(교외)의 양축 구조다. 1960-70년대 인종분쟁의 여파로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백인 중산층이 다운타운을 떠났다. 백인이 떠난 빈자리는 소수인종이나 이민자로 채워졌다.


다운타운에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다. 전문직, 예술가, 청년 중심으로 다운타운과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도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1990년대 다운타운을 찾는 사람을 창조계급으로, 이들이 모이는 도시를 창조도시로 개념화했다. 대도시 다운타운과 창조도시의 부상을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운타운 회귀의 원인을 물리적 안전, 문화적 욕구, 경제구조 변화에서 찾는다. 1990년대 뉴욕을 필두로 대도시들이 치안을 회복한 것이 다운타운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도심 범죄율을 현저하게 떨어뜨린 공화당 출신의 루돌프 쥴리아니 시장이 활동한 뉴욕이다.


문화적 흐름은 탈물질주의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성과와 경쟁을 강조하는 물질주의에서 다양성, 개성, 삶의 질, 개방성으로 대표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 탈바꿈했다. 부모 세대의 문화에 싫증을 느낀 젊은 세대는 도심의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문화에 열광했다.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젊은 층의 욕구를 트렌드로 만든 것은 미디어였다.

 

대표적으로 뉴욕 라이프스타일도 알고 보면 드라마가 만든 이미지다. 미국 작가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드라마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미국 TV 드라마들은 대부분 교외에서 사는 가족들의 삶을 묘사했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인기를 끈 프렌즈(Friends),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같은 드라마들은 도심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했다… 이전 세대와 다른 이야기와 이미지를 대중매체에 세례 받은 신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미국에서 각광받는 주택 형태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때마침 불어온 도시재생 붐도 다운타운의 매력을 높였다. 영국, 미국의 많은 도시들이 공동화된 도심을 살리기 위해 도심의 오랜 된 건물과 거리를 재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원 조성, 문화시설 유치, 유휴 공간 개발 등이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도시재생 수단이다.


창조계급과 창조산업의 부상은 탈산업화와 맞물린다. 경제의 축이 제조업에서 서비스, 지식산업, 창조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산업단지가 아닌 도시가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물리적 자본보다는 개인 창의성에 의존하는 창조산업은 창조계급이 요구하는 환경, 예컨대 플로리다의 3T(Technology, Talent, Tolerance)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에 집적된다. 1990년대 창조도시가 들어갈 만한 지역으로는 다운타운이 유일했다.



대도시 정치경제학

위기의 미국 대도시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가? 미래를 전망하는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인이 도시 모델이다. 1990년대 이후 대세로 자리 잡은 창조도시 모델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도시 문화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미래 세대에게 창조도시는 아직도 매력적인 모델이다. 이는 2020년 이후 교외로 나간 창조계급이 부모 세대와 달리 교외에서 개성 있는 상가와 가로로 구성된 '작은 다운타운'을 건설하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운타운 이탈자들이 다운타운이 제공하는 도시 어메니티를 교외에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대도시 위기가 처음 발생하는 것이 아닌 것도 기억해야 한다. 미국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가 1961년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 비판한 대도시 모델은 대규모 개발로 '죽고 있는' 1950년대 대도시다. 미국 대도시는 1960대 인종 분쟁을 거치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는다. 제이콥스는 대도시 회복력으로 자연 마을이 주는 공동체의 힘을 강조한다. 이번에도 커뮤니티의 힘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도시 중심부를 구할 수 있을까?


원론적인 관점에서 대도시 다운타운이 15분 도시와 같은 커뮤니티가 강한 도시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운타운 중심의 대도시가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도 직장인이 떠난 맨해튼을 직주락이 가능한 놀이터 도시로 재편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치안과 위생이다. 커뮤니티의 힘만으로 급속히 악화된 치안과 위생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미국 대도시 정부가 단기간에 창조도시에 필요한 치안과 질서를 회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도시 정치다. 1970년대 이후 소수자와 약자 권익을 중시하는 민주당이 절대다수의 대도시 시장을 배출했다. 포틀랜드 사례가 보여주듯이 민주당이 장악한 대도시가 치안 강화를 위해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민주당은 오히려 치안 강화보다는 경찰 폭력 억제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공화당이 민주당을 대체할 상황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민주당을 지지해 온 대도시 엘리트 계급이 합리적인 보수주의는 모르지만 반이민주의와 개발주의를 내세울 공화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그들도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대도시의 삶은 대도시 다수당인 민주당의 결단에 달렸다. 외부인과 소수자에 대한 개방성이 대도시를 살리지만 도시 안전을 위협하는 개방성은 오히려 대도시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주민이 도심과 도시를 이탈하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이념을 떠나 상식 차원에서 실용적인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과연 소수자 지지에 의지하는 민주당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설사 내린다고 해도 실제 정책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개방성과 질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말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대도시는 당분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할 것이다. 반복되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 미국 사회의 난제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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