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게 우리에게 무엇인가? 도시가 농촌의 반대말이라면, 도시는 농촌이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성과 익명성을 제공하는 장(場)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맞다. 익명성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의 조건이고, 다양성은 각자 가치에 기반한 삶의 조건이다.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도시가 익명성과 다양성,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떻게 익명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익명성과 다양성이 각기 다른 영역에서 생산하는 공공재다. 정치 사회가 민주주의와 기본권 보장을 통해 익명성을 공급한다면, 다양성은 정치, 경제, 시민 사회의 상호 작용에서 생산된다. 도시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익명성과 다양성이 다 중요하지만, 근대 도시에서 탈근대 도시로 전환하는 한국 도시에 더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왜 한국 도시에서 다양성이 문제가 될까? 우리는 보통 이 문제를 도시가 획일적 또는 경쟁적이라고 표현한다. 다양성을 보장해야 하는 도시가 한국에서는 오히려 다양성을 억압하는 획일적인 행복의 기준, 성공 기준을 강요한다. 2010년 이후 많은 청년이 획일적이고 경쟁적인 대도시를 떠나 로컬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찾는 트렌드가 한국 도시의 획일성을 반증한다.
다양성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도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다. 한국인에게 도시는 생활공간이지, 생산공간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생산은 교외의 산업단지에서, 소비와 생활은 생산과 분리된 주거와 상업지역에서 하는 활동이라는 인식이 고착됐다. 생산과 생활을 분리하는 한국 특유의 도시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창도도시의 부진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창조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한다.
창조도시의 동력은 창조계급의 부상이다. 창조도시 이론은 도시 성장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첨단 기술자, 예술가, 전문직, 대학과 병원 종사자로 정의되는 창조계급을 주목한다. 창조계급은 다른 계급과 달리 직장을 따라 도시를 선택하지 않는다. 도시를 선택한 다음 직장을 찾는다. 창조계급은 어떤 도시를 선호하는가? 단순히 인프라가 좋고 일자리가 많은 도시일까? 창조계급은 그 이상을, 즉 라이프스타일을 요구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 즉 삶의 질, 개방성, 도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에서 일하길 원한다.
창조도시론은 이처럼 도시를 다양성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생산 단위로 이해한다. 과거에는 공단과 산업이 성장을 주도한다면, 지금은 도시가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도시를 성장 주체로 처음으로 제시한 학자는 제인 제이콥스다. 그가 주목한 성장 동력은 도시의 다양성이다. 도시가 성장을 주도하는 이유는 생산과 소비의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한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제이콥스는 다양성을 제고하는 요소로 공간 구조에 주목한다. 주거와 상업 활동을 허용하는 복합 용도(Mixed Use) 구역, 짧은 거리와 촘촘하게 이어지는 블록,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의 공존이 그 조건이다. 공동체와 공간이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사회 자본으로서 다양성을 설명한 제이콥스는 도심의 오래된 마을과 공동체를 보전해야 도시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대규모 단지 건설을 위한 재개발은 도시를 파괴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도시를 성장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1960년대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추진한 이후, 성장은 국가 차원의 자원 활용과 배분을 통해 국가가 기획하는 일이 되어왔다. 도시 차원에서 성장 주체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은 서울이다. 서울-지방이라는 중심-주변부 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에서 도시는 서로 경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플로리다의 주장대로라면, 지방 도시가 인재 유치를 통해 서울과 경쟁해야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 그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인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에게 도시는 소비, 취향, 주거, 투자의 장소, 즉 생활공간이다. 생활공간 도시에서는 편리성, 쾌적성, 심미성, 익명성의 가치가 중요하다. 생산공간으로서의 도시에게 중요한 가치는 생산성이다. 도시경제학이 발견한 생산성의 비밀은 공간과 사람의 다양성, 인재와 기업의 밀도, 창조인재의 집적, 창업생태계다. 도시를 생산 공간으로 인식해야 다양한 장이 다양한 씬(Scene)을 생산하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가 일어난다. 로컬과 동네를 이야기하고 로컬과 동네가 생산하는 콘텐츠와 문화를 즐기고 또 이를 생산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진다. 동네 콘텐츠 수요가 증가하면, 로컬 콘텐츠를 생산하는 동네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한국 사회는 현재 라이프스타일 전환기를 겪고 있고, 이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지역과 동네가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동네를 삶의 중심지로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동네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선도한다.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지 않는 지역은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어떤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일까? 그 잣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맛집, 안전, 시설 등 기본을 만족하는 곳, 그다음은 숨겨진 로컬 콘텐츠를 찾아 자신만의 여행 코스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머물고 싶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현지인처럼 살고 싶은 곳, 나와 어울리는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다. 기준 상승에는 일관성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곳이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를 보유한 동네를 선호하는데, 주민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만드는 동네 라이프스타일만큼 복제하기 어려운 콘텐츠는 없다.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이 머물고 싶은 동네를 만든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 2010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시작될 즈음 유행하던 단어를 보자. 나다움, 슬로라이프, 저녁 있는 삶, 워라밸, 친환경 등 삶의 질, 다양성, 개성, 사회적 윤리를 표현하는 탈물질적 가치다. 우리가 자기다움을 억압한다고 생각하는 물질주의와 결이 다른 가치다.
탈물질주의가 확산되면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싶은가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 머물고 싶은 도시는 예외 없이 머물고 싶은 동네가 많은 도시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뉴욕이 하나의 도시일까? 우리가 맨해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동네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동네 문화는 라이프스타일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부르주아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보헤미안은 이스트 빌리지, 보보스는 웨스트 빌리지 이런 식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뉴욕 동네는 그 동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동네다.
서울도 뉴욕 모델로 가고 있다. 강남이 부르주아, 홍대가 보헤미안이라면, 연희동이 보보스, 그리고 서울에 광범히 하게 분포되어 있는 골목상권이 힙스터 지역이다. 과거에는 서울을 중심지와 변두리, 부촌과 서민 동네로 분류했는데 이제는 각 지역을 고유의 라이프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다. 트렌드가 이렇게 변하다 보니 청년들 사이에는 나와 어울리는 동네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테스트가 유행이다.
머물고 싶은 동네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주민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동네 문화로 만든 곳이다. 라이프스타일 있는 동네, 라이프스타일 있는 주민 많은 동네가 머물고 싶은 동네다. 그런 동네가 물론 주민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네 구조 자체가 일, 주거, 놀이를 한곳에서 할 수 있는 직주락 센터가 되어야 하고,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을 매력적인 일자리, 상업시설, 주거시설로 산업화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이 활동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본격적으로 탈산업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도시는 생활공간이었다면, 탈산업사회의 도시는 다양한 씬을 연출하는 동네와 장으로 구성된 복합공간이다. 도시의 장이 동네로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공원, 시장, 학교, 공장, 그리고 가상공간까지 도시의 장을 구성한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시 무대는 주거, 일, 놀이, 문화 활동을 아우르는 동네가 될 것이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네 문화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한국 도시의 미래를 응원한다.
출처: PH Magazine, 포항문화재단, 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