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과 서울에서 영어상용화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과 부산이 영어상용화를 추진해야 하는 명분은 각각 아시아 금융중심지, 엑스포 도시 사업이다.
현재의 영어 소통 환경으로는 서울과 부산이 각각 금융중심지나 엑스포 도시가 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싱가포르, 홍콩 등 영어공용화 도시는 물론 상하이, 도쿄 등 동아시아의 다른 글로벌 도시에 비해서도 서울과 부산의 영어 사용 환경이 열악하다. 2010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서울 여의도도 다른 서울 지역과 다르지 않다. 외국인 인재가 불편 없이 영어로 일하고 생활하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리한 영어상용화 정책은 금물이다. 성공하지도 못할 뿐더러 영어 환경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다. 서울과 부산에 필요한 영어 정책은 영어공용(共用)기관 지원 중심의 영어상용(常用)화 정책이다. 영어상용화 정책이란 영어공용기관과 외국인 중심으로 영어가 필요한 영역에서 사용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여기서 영어공용기관이란 자율적으로 특구 영어상용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기관 내부의 영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려는 기업이나 기관이다. 일반인을 포함한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영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영어공용(公用)화나, 지역 전체에서 영어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영어공용(共用)화와는 다른 정책이다.
영어상용화 정책은 참여 기관의 일과 정부의 일로 구분된다. 참여 기관은 내부 영어 환경의 개선을 위해 직원 영어 역량 강화, 영어 사용 업무 영역 지정, 외국인을 위한 영어 서비스 제공 등의 영어공용화 사업을 추진한다. 정부는 영어공용기관 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통번역 센터를 운영해 특구 운영과 관련된 정책과 정보를 영어로 작성해 참여 기관과 외국인 인력에 공급한다.
특구 운영과 관련된 영역에서 영어 사용을 활성화하는 영어상용화 정책은 영어소통화, 영어공용화와 다른 정책이다. 정부도 영어상용화 정책이 학교 영어 교육, 지역 단위 영어공용(公用)화와 무관함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영어소통화는 학교 교육을 통해 다수 국민이 영어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개선하는 정책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정책이 영어공용화다. 영어공용(公用)화는 모든 공적 영역에서 영어 사용을 의무화한다.
이미 영어공교육 강화와 시민 영어 사용 지원을 포함한 영어상용화 계획을 발표한 부산시도 향후 논의에서 일반 시민과 학생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은 방향으로 영어상용화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서 영어상용화는 새로운 실험이 아니다. 2004년 인천시 영어상용화 사업 추진 계획, 2004년 LG전자 영어상용화 사업 등 2000년대 일부 지자체와 대기업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지역 단위, 기관 단위 영어상용화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대 영어상용화 정책이 외국인 대상 영어 서비스 제공, 영어 사용 필수 영역 지정 등 업무 중심의 상용화가 아닌 내국인의 영어 능력 향상 중심의 상용화를 강조한 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서울과 부산이 새롭게 영어상용화를 추진한다면 2000년대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영어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적용 대상을 영어공용기관과 외국인에 제한하고 참여하는 영어공용기관을 지원하는 것이 영어상용화의 실효성을 높이는 대안이다.
새로운 영어상용화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반드시 구축해야 하는 인프라가 통번역 서비스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기관이 대규모 통번역 센터를 운영해 영어상용화에 참여하는 기관과 외국인에 영어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공문서를 포함 정책, 생활, 교육, 문화 등 외국인 생활 관련 자료를 영어로 공급해야 한다. 6개 공식 언어로 공문서를 발행하고 주요 회의에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UN사무국 통번역 센터가 정부가 도입해야 하는 모델이다.
자율적으로 영어공용화 사업을 실시하는 영어공용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가능한 많은 특구 기업과 기관이 영어상용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료, 인력, 지식, 모범 실무(Best Practice) 등 참여 기관이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통번역사 고용, 통번역 센터 운영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영어상용화는 영어공용기관 중심으로 외국인에게 실질적은 혜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영어공교육 강화, 시민 영어 사용 확대 등 불필요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정책과 연계할 필요가 없다. 새롭게 외국인 인재와 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정부가 2000년대 세계화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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