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해운대 미포에서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지역발전 논의는 왜 이리 노잼일까요? 그 이유로 각박성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지역소멸, 지방소멸 등 현재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 자체가 무시무시합니다. 진짜 재미없는 이유는 서울 우월성에 대한 무언의 합의입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서울이 모든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서열주의에 한치의 빈틈이 없습니다.
꼭 이래야 할까요? 다양성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유머도 없습니다. 잘난 사람, 잘난 도시를 풍자하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요. 지역에서 서울을 풍자하는 문화를 접하기 어렵습니다. 서울 사람 깍쟁이란 말 이후 서울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나요? 과거에는 서울 공기 안 좋다고 말했는데 미세먼지가 온 뒤론 그 말도 사라졌습니다. 전국이 다 안 좋아져서요.
한마디로 지역이 서울에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지역에서 서울을 맘껏 놀렸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평민이 양반을 풍자했는데 뭐가 무서워서 서울을 '조롱'하지 못할까요.
서울을 악마화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서울이 잘돼야 하죠. 여러 면으로 자랑할만하고요. 하지만 서울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문제입니다.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를 비교하면 안 되는 시대가 왔는데 서울과 지방을 놓고 누구는 낙후됐다, 누구는 '저질'의 주거 환경을 가졌다는 말을 함부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을 '무시'하고 풍자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상적인 나라입니다. 요즘 지방 서울 부럽지 않을 만큼 좋아졌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지방 도시는 오히려 서울이 부러워해야 합니다.
서울을 어떻게 풍자하느냐고요? 적어도 5개 방법이 생각납니다.
1. 서울은 한국이 아니다 - 다른 나라의 전통도시가 중심도시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교토가 대표적인데, 교토 시민은 도쿄가 외국 문화로 부패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문화의 혼은 교토에 있는 거죠. 한국도 안동, 경주, 전주에서 비슷한 정서를 감지합니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전주는 대한민국 문화 수도를 자처합니다. 경주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문화 우월주의 성향을 보입니다.
2. 서울은 너무 한국적이다 - 1번의 반대입니다.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개항도시나 국제도시가 중심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인천, 부산, 평택 등 한국에도 서울이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너무 폐쇄적이라고 주장할 만큼 외국문화에 친화적인 도시 많습니다. 더 필요하다면, 이들 도시가 더 적극적으로 대외 개방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살려야 합니다.
3. 서울은 대기업 도시다 - 미국, 일본, 유럽에 가면 자신의 도시가 대기업의 도시가 아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이 많습니다. 소상공인의 도시로 자처하는 포틀랜드, 오스틴, 협동조합 산업을 자랑하는 바스크, 볼로냐 등입니다. 한국에선 광주가 소상공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런 합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도 조만간 소상공인 중심의 창조도시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4. 서울은 모범생 도시다 - 캘리포니아가 동부 주류사회를 보는 시각입니다. 한마디로 자유와 영혼을 이해 못 하는 권위적이고 답답한 꼰대라는 거죠.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는 사람도 제주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찾습니다. 그들에게 한국의 캘리포니아는 제주인 거죠. 다른 로컬을 찾는 청년들도 로컬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장소로 인식합니다. 그에 비해 서울은 경쟁적이고 억압적인 장소고요.
5. 서울은 '착취' 도시다 - 지역성이 분리주의에 이를 만큼 강한 지역이 수도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이 있을까요? 제주, 부산에서 미세한 분리주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광주도 그럴까요? 제가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기개와 독한 마음이 있어야 서울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학문적인 기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은 식민지라는 책도 있습니다.
'좋은 것은 다 서울에 있다', '서울과 같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 등 서울 우월성을 인정하는 태도로는 지역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다문화주의의 영향으로 지역과 지역은 다른 거지 누군가가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서울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무시'하고 싶은 분에게 위에서 제시한 5가지 태도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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