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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9. 2023

재미란 무엇인가?

도시 연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떻게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재미를 만들려면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재미의 의미에 대해 인터넷이 추천하는 책은 벤 핀첨의 ‘재미란 무엇인가?’다.


이 제목에 안 끌릴 독자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서평자들도 제목에 끌려 책을 읽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반전은 원제다. ‘재미의 사회학(The Sociology of Fun)’이다. 앗, 내가 또 출판사의 미끼에 낚인 것이다. 많은 서평자들이 지적한 대로 논문처럼 쓰인 연구서다.  


그럼에도 노잼 도시 논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핀첨의 포인트는 단순하다. “재미의 본질을 규정하는 특징은 그것은 사회적이라는데 있다… 재미의 경험과 활동, 순간은 사회적 요소들이 만든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기대하거나, 때론 다른 이들이 부재하다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반복적으로 사람들은 재미를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p309)


재미의 사회성은 재미의 조건에서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미라는 감정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나타난다.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p27) 역으로 재미는 사람들 간의 권력 차이와 위계를 평등하게 만든다. (p61)


재미의 사회성은 또한 재미의 맥락에서 나타난다. 어떤 것이 재미있다면 그 사회적 맥락이 그것을 재미있게 만든다. “사회적 환경이 우리가 가진 재미의 종류를 만들거나 발생시키거나 창조한다.” (p28) 핀첨이 강조하는 맥락은 일, 가족, 교육, 여가다. 사람들은 일, 가족, 교육, 여가 속에서 재미를 경험하고 기억한다.


재미의 어원에서도 재미의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 재미는 ‘흥분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 농담, 규정 위반, 여가 활동 등 반복되는 일상과 규격화에 저항하는 행동을 재미로 인식하고 표현했다. 현재도 우리는 재미를 기존 관습과 교양에 반항하는 방식으로 추구한다. (p17) 현대 도시에서 아방가드 예술인, 택티컬 어바니스트, 스트리드 아티스트 등 전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자들이 도시의 재미를 창출하는 것이 비근한 예다.   


재미의 반대말(진지함, 금욕주의, 도덕성, 의무, 헌신), 재미와 유사한 감정(행복, 쾌락, 기분전환, 즐거움, 몰두), 그리고 재미의 도식까지 수많은 개념이 소개된 책에서 독자가 무엇을 얻을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세 가지다.


첫째, 재미의 역사다. 재미가 주류가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진지함, 도덕성, 의무 등 재미와 상반되는 가치를 교육하던 서구 학교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재미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재미가 학습 능력을 높인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기업도 1980년대 이후 '일하며 놀기(Work and Play)'라는 구호 하에 사무실에 놀이터, 휴식 공간, 카페를 만들어서 업무 환경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재미있는 오피스 환경이 직원의 창의성을 높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의 주류화 역사에서 1960년대 반문화가 빠졌다. 재미가 기존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면, 부르주아 문화를 전복하려고 했던 반문화주의자들도 재미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재미를 그들이 중시한 자연, 공동체, 창조성, 자아실현보다 덜 진지한, 가벼운 가치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도시의 누락이다. 많은 사람이 재미를 찾고 경험하는 곳이 거리와 도시다. 핀첨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재미를 유발하고 연상하는 맥락으로 도시를 포함하지 않는다. 특정 도시에서의 추억은 묘사하지만, 무엇이 그 도시를 더 재미있게 아니면 덜 재미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셋째, 생산의 부재다. 핀참은 재미를 향유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재미를 느끼는지 질문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관점에서 재미의 의미와 조건을 규명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재미는 행복과 같이 정의하기 어려운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개념일 수 있다.


오히려 사회과학은 재미의 생산에서 가능할지 모른다. 재미의 소비, 즉 취향의 개발에 투자하는 소비자보다는 재미의 생산에 투자하는 생산자가 많기 때문이다. 재미의 생산자는 재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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