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절

by 골목길 경제학자

/지역 소멸과 인구 소멸 대응에서 방송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 쉘든, 갯마을 차차차에 이어 2014년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을 소환합니다.


1970~80년대에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 시절을 회상하노라면 슬그머니 경주가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경주는 ‘추억의 도시’다.


경주가 배경이 된 영화와 드라마의 정서에는 자연스럽게 ‘그리움’이 깔린다. 경주를 배경으로 한 2013년 영화 <경주>와 2014년 TV 드라마 <참 좋은 시절> 역시 그렇다.


<참 좋은 시절>에 대해 한 언론이 "옛 정취가 가득한 골목길과 정감 어린 돌담길, 기와지붕으로 이뤄진 건물들까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서정적인 영상미를 돋우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미디어 속의 경주는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경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정작 경주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경주>도, 드라마 <참 좋은 시절>도 경주를 ‘살고 싶은 곳’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정말 경주에 ‘살고 싶은 도시’의 요소가 부족한 것일까?


<참 좋은 시절>이 1970년대를 풍경으로 그린 경주 도심의 골목길은 이제 다른 도시가 부러워하는 도시 재생자원이 됐다. 시내 곳곳에 자리 잡은 고분과 골목길을 배경으로 개성 있는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경주의 매력은 도시 경관에서 그치지 않는다. 경주의 진짜 가치는 오히려 그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교동 한옥마을이 대표적이다. 다른 도시의 한옥마을이 관광자원으로만 활용되는 것에 비해 이곳은 점잖고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경주의 품격을 높인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들도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아 좋다.


경주 사람들 역시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한옥마을 중심부에 있는 최부잣집 고택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밝히는 데 당당하다. 이 집 마당에는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적은 팻말이 놓여 있다.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바른말’하는 경주 사람은 식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유명한 냉면집인 ‘평양냉면’의 벽에는 ‘상인 일기’라는 제목의 액자가 걸려 있다. 주인의 상(商)철학을 담은 글은 이렇게 끝난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그렇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주가 ‘전통’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영남 지역의 주요 도시에서 사랑 받는 커피전문점 ‘슈만과 클라라’는 경주에서 창업하고 본점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영남이 자랑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11 체스터필드웨이’ 역시 경주에 있다.


경주에 국제 수준의 커피전문점과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전통과 자부심이 살아 있는 도시만이 도시의 품격을 지키고 높이는 기업을 창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이 자랑하는 경주시 성건동 소재 프렌치 레스토랑 '11체스터필드웨이'. 경주에 국제 수준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전통과 자부심이 살아 있는 도시만이 도시의 품격을 지키고 높이는 기업을 창업할 수 있다.


이처럼 경주에는 ‘살고 싶은 도시’의 요소가 많지만 미디어를 통해 부각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사람들의 도시 인식에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많은 젊은이가 선망하는 뉴욕 라이프스타일도 알고 보면 드라마가 만든 이미지다. 미국 작가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드라마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미국 TV 드라마들은 대부분 교외에서 사는 가족들의 삶을 묘사했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인기를 끈 프렌즈(Friends),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같은 드라마들은 도심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했다. (…) 이전 세대와 다른 이야기와 이미지를 대중매체에 세례 받은 신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미국에서 각광받는 주택 형태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지역의 도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지역의 도시를 ‘그리운 도시’로만 묘사하는 행태부터 바꿔야 한다.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시의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지금 경주에서 부족한 한 가지는 지역 경제를 견인할 지역 산업이다.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경주의 과제다.


어떤 산업이 경주다운 산업인지는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경주는 이미 관광, 법주, 한과 등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에 어울리는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사찰 음식, 템플스테이, 명상원 등 불교를 기반으로 한 ‘힐링’ 산업을 더한다면 경주다운 색깔을 지닌 산업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경주가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일본의 교토 같이 지역의 자부심에 기반한 하이테크 산업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토는 일본 문화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전자부품 산업을 개척했다. 교토의 자부심이 도쿄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 도쿄와 차별화될 수 있는 기술과 산업을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경주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도시다. 경주가 ‘그리운 도시’에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될 때, 그리고 이러한 지방 도시가 더욱 많아질 때, 한국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와 경주의 협력을 통해 경주를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창조도시로 만드는 일, 이것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시대를 여는 우리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


출처: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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