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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26. 2023

칵테일 클래스

오랜만에 제주 성산 플레이스캠프를 찾았다. 플레이스캠프는 여행을 조용히 하지 못하는, 여행지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액티비티를 경험해야 하는, 경험을 넘어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자를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름도 플레이스캠프다. 호텔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모이는 캠프다.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매일 저녁 6시 호텔 펍 스피닝울프에서 칵테일 클래스를 연다고 한다. 이름도 감각적이다. 부어라마시타.



나는 크리에이터를 자처한다. 골목길 경제학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다. 내년 크리에이팅 계획을 세우기 위해 플레이스캠프를 찾았다. 일종의 워케이션을 수행 중이다.


플레이스캠프가 정의하는 여행 플레이어 자격도 있는 것 같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와 액티비티만을 즐기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나에 콘텐츠에 대한 영감을 찾고 이를 가능하면 현장에서 만든다.


그런데 플레이스캠프의 칵테일, 감귤청, 캔들 만들기 클래스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과연 지적 크리에이팅만으로 미래 대비가 충분할지 불안하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육체적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지식 對 수공예 크리에이터,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가 이미 고민한 문제다. 그는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과 달리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열축을 자본 대 노동이 아닌 기계 대 수공예로 인식했다. 자본보다는 자본의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 문명을 평등사회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말에도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 지식인이 많았다. 그럼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고 일부 지식인은 인간이 예술, 과학, 역사와 같은 지적 활동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리스는 지식활동론을 거부했다. 지식활동론이 기본적으로 인간 불평등을 인정하는 엘리트주의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산업의 불평등, 즉 슈퍼스타 시스템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비판이다.  


모리스가 원하는 세상은 기계 중심이 아닌 수공예 중심의 생산 체계다. 그는 육체활동을 수반한 수공예가 생산을 지배해야 평등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무책임한' 전망을 거부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기계를 거부하고 수공예를 선택할 것으로 믿었다.


예술가, 온라인 크리에이터, 오프라인 크리에이터, 공예 작가 등 유무형 결과물을 손수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주도하는 현대 크리에이터 경제를 보면 인간은 기계를 선별적으로 선택한다는 모리스의 통찰이 얼마나 명쾌한지 알 수 있다. 현대 크리에이터는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의 후예이고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자유스럽고 독립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크리에이터의 일과 직업을 찾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도 예외가 아니다. N잡, 부업, 워케이션, 재택근무를 통해 크리에이터적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모리스가 예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플랫폼 기술이다. 수공예와 크리에이션이 플랫폼을 통해 민주화되고 대중화되는 현상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Al와 크리에이터 경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Al 발전의 속도를 보면 지식과 예술 크리에이팅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모리스가 조언한 대로 육체노동 기반 제조 기술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나에게는 플레이스캠프에서 가르쳐 준다는 칵테일 제조법이 좋은 시작일 수 있다. 앞으로 인테리어, 일러스트 기술에도 도전하고 싶다. 아무래도 지식 크리에이션만으로는 기계와 Al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공간과 포스터 기술로 나의 스킬 셋을 보완하고 싶다.


막 시작되는 크리에이터 경제를 모리스가 꿈꾼 평등사회로 만들려면 수공예 전환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크리에이터 개개인은 플랫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콘텐츠 제작, 커뮤니티 구축 기술 등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고, 크리에이터 사회는 플랫폼 기업을 비롯해 도시, 상권, 공간 등 크리에이터 경제를 지원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즉 크리에이터에게 더 많은 수익이 가도록 혁신하고 개혁해야 한다.


미래 준비를 위한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크리에이터 경제의 시작은 2005년 유튜브 출시, 오프라인 콘텐츠의 혁신은 1990년대 뉴어바니즘과 인디문화, 독립과 친환경을 지향하는 반문화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짧지 않은 역사에 많은 지식이 담겨 있다.


그동안의 경험은 우리가 크리에이터 경제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 그림의 스케치를 그려 보는 것이 새 책의 집필의도다.


End.


P.S. 지식활동론에 대한 모리스의 통찰을 보여주는 문단이다. News from Nowhere 페이지 153-155다.


수공예품은 예전에 물질적 필요성이라고 불렸던 것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그 당시에는 기계가 너무 많이 개선되어 거의 모든 필요한 작업이 기계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와 그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수공예품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시대 이전에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덜 논리적인 또 다른 의견이 있었으며, 그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해 보였던 이 의견은, 세상의 평범한 일상 업무는 전적으로 자동 기계에 의해 수행되는 반면, 인류의 더 지적인 부분의 에너지는 과학과 스터디 역사뿐만 아니라 더 높은 형태의 예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모든 행복한 인간 사회의 유대로 인정하는 완전한 평등에 대한 열망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You must remember,' said the old antiquary, 'that the handicraft was not the result of what used to be called material necessity: on the contrary, by that time the machines had been so much improved that almost all necessary work might have been by them: and indeed many people at that time, and before it, used to think that machinery would entirely supersede handicraft; which certainly, on the face of it, seemed more than likely. But there was another opinion, far less logical, prevalent amongst the rich people before the days of freedom, which did not die out at once after that epoch had begun. This opinion, which from all I can learn seemed as natural then, as it seems absurd now, was, that while the ordinary daily work of the world would be done entirely by automatic machinery, the energies of the more intelligent part of mankind would be set free to follow the higher forms of the arts, as well as science and the stud history. It was strange, was it not, that they should thus ignore aspiration after complete equality which we now recognise as the bond of all happy hum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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