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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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변화, 크리에이터 경제로의 편입
제조업 생산 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창의성과 마케팅이 중요해짐에 따라 제조업 기업의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되면 제조업이 크리에이터 경제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크리에이터 경제란 개인의 창의력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1인 기업, 프리랜서, 인플루언서 등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만의 브랜드와 상품을 만들어내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마케팅과 판매 활동을 펼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크리에이터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생산 플랫폼의 발달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 전역에서 생산을 플랫폼에 맡기는 생산 플랫폼 체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들이 디자인,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하고, 생산은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등 생산 플랫폼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제조업 기업들은 생산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인력 고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제품 기획과 브랜딩에 더욱 주력할 수 있게 된다.
생산 플랫폼 체제가 가장 발달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팹리스(Fabless) 기업들이 설계에 특화하고, 생산은 파운드리(Foundry)에 맡기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 설계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웍스, 넥스트칩과 같은 국내 중소 팹리스 기업들도 혁신적인 반도체 솔루션을 설계하고 있다. 반면 TSMC,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 등 파운드리 기업들은 최첨단 공정 기술력을 갖추고 팹리스 기업들의 설계를 구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처럼 설계와 생산이 분리된 분업 구조 덕분에 팹리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부담 없이도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장품이 제조업의 생산 플랫폼화를 선도
화장품 산업에서는 ODM 기업의 성장이 주목할 만하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코스메카 등 국내 ODM 기업들은 브랜드사의 요구에 맞춰 화장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이들은 연구개발(R&D) 및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ODM 기업의 성장은 신생 화장품 브랜드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국내 화장품 브랜드 수는 2만 2,000개를 넘어섰으며, 해외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K뷰티 산업은 현재 제2차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중국 중심의 1차 전성기와 달리, 이번에는 창업 10년 이내의 '인디'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인디 브랜드들은 ODM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스킨케어뿐만 아니라 색조 화장품, 샴푸, 로션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주력 시장도 중국에서 미국과 일본으로 변화했다. 2023년 4월 기준 미국 화장품 수입에서 한국산 비중은 22%로 1위를 차지했으며, 전년 동월 대비 43% 성장한 1억 3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생산 플랫폼의 확산
생산 플랫폼 모델은 패션 산업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한다. 이들은 ODM 업체와 협력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적극 활용한다. 특히 개인 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맞춤형 의류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터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발 산업 역시 생산 플랫폼 모델의 도입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신발 산업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주는 브랜드로 마더그라운드를 꼽을 수 있다. 2017년 설립된 마더그라운드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혁신적인 유통 방식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신발 브랜드다. 마더그라운드는 신발 디자인과 브랜딩에 역량을 집중하고, 신발 생산은 신발 제조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나아가 개발, 3D 모델링, 인쇄, 영상 및 웹디자인 등 제품 생산 외적인 부분들도 적극적으로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마더그라운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집중하면서도 높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식품 산업에서도 생산 플랫폼의 활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수제맥주, 라면 등에서는 이미 생산 플랫폼이 보편화됐다. 최근에는 식품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와 레시피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생산은 OEM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식품 대기업들도 자체 생산 설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소 식품 기업들을 위한 생산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 플랫폼의 미래는 크리에이터 플랫폼
기술의 발전과 취향의 다양화로 제조업 기업의 규모가 작아지고, 소규모 제조업 기업이 생산을 생산 플랫폼에 위탁하는 추세가 확대되면, 제조업의 미래는 크리에이터 산업의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크리에이터 산업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의 아웃소싱은 생산을 넘어 디자인, 마케팅, 판매 등 가치사슬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것이다.
현재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얻은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 제작, 유통, 판매 등 크리에이터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받는다. 이들은 자신만의 브랜드 상품인 '굿즈'를 출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마플샵과 같은 전문 ODM 기업은 3,000여 종의 크리에이터 굿즈를 생산하여 공급한다. 이러한 생산 플랫폼 기업 덕분에 개인 크리에이터들도 대량 생산 및 유통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일부 인기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며 제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실 생산 플랫폼 기업 모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애플과 나이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을 아웃소싱하면서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들 기업은 본사에서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영업에 주력하고, 생산과 포장은 해외 협력사를 통해 진행한다. 이러한 사업 모델을 통해 애플과 나이키는 제품 혁신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자동차 산업 역시 생산 플랫폼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제품 기획과 디자인에 집중하는 한편, 부품 생산과 조립을 협력사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애플과 폭스콘의 관계처럼, 자동차 제조사와 생산 플랫폼 기업 간의 협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이끌 혁신 기업들의 등장이 기대된다.
이처럼 제조업의 크리에이터 경제 편입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제조업 기업들이 애플이나 나이키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사업 모델을 따르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기업들은 생산과 판매를 외부 플랫폼에 위탁하고, 콘텐츠 제작, 디자인, 마케팅, 브랜딩 등 창의적인 분야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제조업 기업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작아진다면, 제조업이 1인 기업, 즉 크리에이터 기업 중심으로 개편될 가능성도 있다.
플랫폼 기업의 제조업 진출
제조업 미래의 새로운 변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확장이다. Amazon과 Shopify와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단순한 유통 채널의 역할을 넘어, 제품 생산과 공급망 관리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같은 크리에이터 플랫폼도 커머스 채널을 추가, 크리에이터들의 상품 출시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크리에이터들은 창작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상품의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의 전략적 확장은 소규모 기업과 크리에이터들에게 제품 제조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창작물을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전문 지식의 장벽을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의 진출로 파운드리와 같은 전통적인 위탁 생산자들의 입지는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3D 프린팅 등 디지털 제조 기술의 발전은 제조 과정을 더욱 유연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 크리에이터와 중소기업이 대규모 파운드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맞춤형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MIT Technology Review는 AI와 자동화 기술이 제조 공정을 효율화하고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전통적인 위탁 생산자들의 가치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조업의 크리에이터 경제 편입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개념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개인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에이터 경제 제조업이 미치는 영향은 생산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는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마케팅뿐 아니라 제품 개발에도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Rebecca Karp, Carolyn Fu, Simon Friis의 분석에 따르면, 크리에이터들이 소개하는 독특한 제품이나 사용법은 전통적인 시장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이는 제품의 수명 주기를 단축시키고 소비자가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을 변화시키는 등의 직접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소규모 크리에이터들이 전통적인 제조업의 제품 혁신과 시장 전략 재정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 플랫폼과 크리에이터 중심의 제조업 개편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다만 그 속도와 모습은 산업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미래 제조업을 이끌 핵심 요소는 플랫폼 기반의 유연한 생산 체계, 창의적 인재의 활약, 그리고 기업 간 협업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기존의 산업 구분을 뛰어넘는 융합과 혁신이 펼쳐질 제조업의 변화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중앙일보, K뷰티 2차 전성기,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2024.6.18
좋은 흔적을 남기는 발걸음, "마더그라운드", 신발인, 슈넷, 2014.4.17
MIT Technology Review Insights, How AI Will Revolutionize Manufacturing, MIT Technological Review, September 29, 2020
Karp, R., Fu, C., & Friis, S. (2024). Social Marketing: How Your Business Should Tap into the Creator Economy. Harvard Business Review, May 2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