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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an 28. 2018

파혼에서, 결혼까지

파혼에서 시작된 이상한 결혼

우리는 작년 2월에 파혼하고, 11월에 결혼했다.


원래 예정일은 4월 9일이었다. 잡아둔 식장을 취소하고, 회사와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보면 적당히 둘러댔다. 연애는 오래 했는데,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아서요. 좀 더 대화하고 준비도 더 해서 결혼하려구요.


좋은 봄날이었다. 그 따뜻한 계절을 즐기며, 나는 안도했다. 결혼이 깨졌다는 게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포동포동한 얼굴로 윤기나게 살았다. 며느리라는 이름에서 해방된 게 압도적으로 좋았다. 엄마와 아빠의 고집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다니, 세상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생각했다.


이건 모두 당신들의 고집과 어리석음이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벌을 받으세요.
당신들 때문에 깨진 이 결혼을 보면서 충분히 마음 아파하세요.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부터 결혼에 뜻을 두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이름에 아내와 며느리까지 더한다는 게 숨이 막혔다. 그 이름이 없어도 충분히 삶이 고단한데, 얼마나 더 고단해지려고 이름표를 더 달아야 하냐는 생각. 그러나 한 사람과 6년 동안 연애를 했고, 프로포즈를 받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서 덜컥 결혼하겠노라고 말해버린 게 문제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나는 티 한 장을 고를 때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사람인데.


사실은 내가 떠밀려서 결혼을 선택해놓고, 중간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 이 결혼을 풍비박산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래서 사소한 갈등이라도 있으면 마치 거대한 재앙의 씨앗인 것처럼 부풀려 대성통곡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파혼을 선택해놓고 몇 달 뒤에 결혼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고 대책이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이 빚을 어떻게 다 갚나.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여전히 그럴 만 했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후일담이다. 대책도 없이 환상만으로, 3/4 승강장의 입구로 추측되는 두터운 벽으로 전력질주했다가 나자빠진. 결혼이라는 세계로 꼭 입장하고 싶은지 나에게 묻고 또 물어서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던, 그 악몽같이 아름다웠던 세 개의 계절에 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누군가에게 이 일들을 털어놓고 싶어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결혼 과정에서의 앙금이 있다. 하나 둘씩 차근차근 풀어놓다 보면 앙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또, 그런 마음도 있다. 나는 저 두텁고 거대한 벽 앞에서 주저앉아 울 때마다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상견례에서 결혼 망할 뻔한 이야기, 빚과 어른들에게 드리는 용돈과 그 와중에 해맑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장판 색깔까지 마음대로 고르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까지. 눈을 감고 이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한국에서 결혼은 그야말로 시망똥망이구나!

그건 마치, 건식 사우나실 안에 갖고 들어간 찬 물 한 바가지같았다. 건강에 좋다니 저 모래시계가 한 번 다 떨어질 때까지 있어는 보겠는데 숨이 막혀서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어질 때, 나를 잠시나마 그 호흡곤란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세주. 내 이야기도 별 다를 바 없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고집, 나의 어린 마음,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어머니의 심통, 불가해한 서운함, 그리고 복잡한 가정사까지. 미즈넷이나 레몬테라스에 올라올 법한 뻔하고 뻔한 이야기다.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당신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도 그랬다. 매일매일 울었고, 살고싶지 않았고, 이 불행은 꼭 나에게만 찾아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막막한 시기를 지나왔고 지금은(아직까지는) 행복하다. 그러니까, 당신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에서 결혼은 누구에게나 시망똥망 엉망진창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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