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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22. 2018

나는 용감한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의 하루를 본받아 보자




다시 전화를 해서 내가 사과를 하면 아버님이 잘 받아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후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제가 죄송해요. 그런데 아까는 소리를 막 지르셔서 엄청 놀랐어요. 막 울었어요. 그랬더니 아버님은 놀랐겠다, 내가 화가 많이 나서...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오빠가 아버님에게 전화를 해서 마무리를 하고, 끝났다. 그런데 오히려 아버님에게 혼(?)이 나니까 아버님 덜 무서워졌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걱정하던 최악 중 하나를 미리 겪고 나니까 맷집이 생긴 느낌이랄까. 오빠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도 감사했고.


그리고 상담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당연히 문제 발생 - 해결이라는 아름다운 소재로 자화자찬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건데 상담 선생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을 하셨다. 그 어르신의 쓸쓸함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냐고.



네? 쓸쓸함이요?


이장을 먼저 말씀하셨다는 건 아마도 그 돈을 모아 두신 것일 거라고. 네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행사에 같이 가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문득 그 행사를 주최할 돈이 없다고 하면 어떨 것 같니, 라고 상담 선생님은 물어 보셨다. 음.. 그럼 황당하겠죠?


그 나이대의 노인들은 화가 나면 가슴에서 열이 나서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잠을 못 주무시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나는 좀 기분이 나빴다. 아버님이 돈을 모아두셨다고 해도 그건 저희가 드린 돈인데요? 우리가 매달 드리는 돈이잖아요! 물론 소리를 질렀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모으신 돈도 저희가 드린... 돈인데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버님의 돈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혼자 살고 있는 아흔 다 된 노인이 며느리한테 황당하고 억울해서 한 번 화를 냈는데, 아들이 전화해서 인연을 끊는다고 하고 용돈도 다 끊어버리겠다고 하고, 그래서 며느리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마음이 어떠시겠니. 아무튼 아주 단단한 벽이었던 내 마음이 이 문장을 듣고 나서는 약간 말랑해졌다.


내가 아흔이 다 된 노인이 되어 우리 엄마의 묘를 이장하고 싶다고 했는데, 며느리가 갑자기 저희 돈 없어요 어머니! 라고 하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나는 일주일 동안 화가 나서 잠도 못 잤는데, 며느리가 똥꼬발랄하게 전화를 걸어 어머님~ 어버이날이라 전화 드렸어요! 라고 하면 어떨까. 개빡쳐서 화를 좀 냈더니 아들에게서 전화가 와서 엄마랑 인연을 끊어버리겠다고 지랄발광을 하면 어떨까, 그래서 결국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내 마음은 어떨까.


쓸쓸하겠지, 서러울 것 같다.


상담이 끝나고 오빠는 다음 날 퇴근하면서 아버님 댁에 들리겠다고 했다. 본인이 화를 낸 상황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는 같이 가서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빠는 찾아 뵙고, 나는 그 이후에 전화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어머님에 대한 욕을 30분 정도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시어머니네 찾아갈 일이 있으면 니가 오빠 몰래 잘 해서, 안 찾아가는 상황을 만들라고 하셨다. 아버님... 철 좀 드세요. 제발. 이라고 정말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놓고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활자로라도 내 마음을 표현해 본다.)


통화가 끝나고 선생님한테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선생님,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했더니 아버님이 저한테 앞으로 시어머니네 갈 일이 있으면 제가 요령껏 피해서 못 가게 하라시던데요? (당황)(당황)(황당) 남편의 마음이 많이 아프겠네, 잘 달래줘야겠지? 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버님과의 갈등 상황이 생기면 나는 오빠를 쥐잡듯이 잡았다. 쥐 잡듯이 잡지 말라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구나... 나는 찰떡같이 알아 듣고 마음을 차분하게 먹기로 했다. 물론 열은 받았지만.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오빠의 상황이고 오빠가 나의 상황이라면, 오빠는 나를 다독일 것 같았다. 괜찮아, 오빠는 괜찮아. 걱정하지마. 나는 아마도 오빠의 위로를 받으며 내 마음을 추스리는 것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라면 오빠는 나의 마음을 달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면 오빠는 누가 위로해 주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드니까 반성문을 열 장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오빠에게 오빠같은 사람이 되어줘야지.


이번에도 아버님 집 청소를 하러 갔다가 쿠사리를 먹고 개빡친 날이 있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피부는 타고나게 좋았다. 그런데 작년에 아버님을 모시고 여행갈 때 넘나 가기 싫어했더니 얼굴이 멍게가 되었다. 멍게는 나와 두 달을 살고나서야 홀가분하게 떠났다. 이번에는 조금 작은 멍게가 왔지만 그래도 열이 뻗쳐서 밤에 잠이 안 왔다. 그 때, 오빠를 잡고 퍼붓고 싶을 때마다 작년을 생각했다. 작년에 했던 결심을 생각했다. 그 결심을 생각하니 폭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나까지 너를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지, 1g이라도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아버님의 성깔이 오빠의 잘못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건 정말 무한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너네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하잖아! 너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너 이럴 줄 알면서 나랑 결혼한 거야? 이건 개사기잖아! 이럴 일 없다며! 라며 악다구니를 퍼붓고 싶은데 그것을 참아야 한다니.... 그런데 그 순간을 참고 나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버님과 내 앞에는 절대로 좁혀질 수 있는 강이 하나 있다. 아버님은 우리를 보며 '그래도 다른 집에서는 모시고 산다던데'가 있고, 나는 아버님을 보며 '다른 집에서는 시댁에서 돈도 보태준다는데, 우리는 우리가 매달 생활비도 드리잖아'가 있다. 나는 (내 기준에서) 괴팍하고 짜증이 많은 남편의 아버지가 부담스럽고, 아버님은 아흔이나 된 본인을 고작 일 년에 몇 번 찾아오고야 마는 며느리가 서운할 것이다.


우리가 오빠를 사이에 두고 잘 지내려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환상이 환상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아버님이 이런 분이었으면 좋다. 다정하고, 사려깊고, 존경할 만하고, 돈도 아주 많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지고 계시고,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보살펴 주시고, 우리에게도 집 한 채 정도를 여유롭게 턱 내어 주시고, 그러면서도 너희끼리 독립된 삶을 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 하나하나 더 디테일한 기준을 따지고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가끔 이 기준을 떠올리고 현실을 떠올리면 화가 난다.


그럴 때 아버님이 꿈꾸는 며느리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건 모시고 사는 며느리겠지. 살뜰하게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챙기고, 때맞춰 용돈을 풍족하게 드리고, 주말이면 모시고 나들이에 다니고, 밤이면 옆에 붙어 앉아 지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드리고,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한 상 풍족하게 차려내는 그런 며느리..? 그래, 그런 건 터무니없는 환상이다. 나는 지금도 충분한 며느리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버님도 본인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고작 서른을 갓 넘긴 며느리가 아흔에 가까운 시아버지와 잘 지내는 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특히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홧병이 나는 저격수st의 며느리라면 더더욱...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조금 더 용감해지기로 했다. 어떤 사람일지 감히 감도 안 잡히는 사람과 가족이 되려면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와장창 깨지더라도, 깨지고 나면 최소한 그 길에 대해서는 알게 될 테니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친구 아빠가 아니라 남편의 아빠처럼 느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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