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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l 08. 2018

나의 트라우마를 이해해줘

연애 6년, 결혼 2년만에 남편이 털어놓은 트라우마에 대해서

남편이 아버님께 70만원씩 용돈을 드린 건 결혼하기 한참 전부터였다. 취직하고 얼마 안 돼서 인사동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아버님이 100만원씩 달라고 한 걸 겨우 설득해서 깎았다고 말했다. (약간.. 잘했지? 칭찬해줄래 뿌잉뿌잉 하는 표정으로) 그 때 나는 왠지 화가 났다. 지금부터 우리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우리가 살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돈을 달라고 하셨다고?


나는 그 때 오빠한테 아주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님은 오빠가 나중에 결혼할 거 생각 안 하셔? 돈 모아서 결혼하고 집 사고 해야 할 거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하시는 거야? 오빠는 민망하고 멋쩍은 듯 무언가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님을 편드는 말이었다. 이 가족은 이런 문화가 당연한가보다, 싶었고 싫었다.


예전에 집단 상담에 참여했을 때, 사정이 좋지 않은 부모와 좋은 직장에 들어간 자녀의 케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그 사정이 좋지 않은 부모에게, 아이가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용돈을 달라고 하지는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아이가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서 더 크지 못하게 된다고. 그리고 그 딸이 정말 어렵고 힘들 때 그냥 모른 척 할 것도 아니니, 그냥 두라고 하셨다.


그 일화가 생각나니 마음이 더 답답했다. 그 이후로도 오빠는 아버님에 대해서 얘기할 때 민망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아버님 편을 들곤 했다. 우리가 수백만원을 들여서 치료를 해 드렸음에도 고맙다는 말씀 한 번 안 하실 때, 여행을 모시고 가도 가타부타 별 말씀 안 하실 때. 그 외에도 수많은 케이스에서. 당연한 요구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서 닦달하는 아버님을 볼 때마다 나는 뾰족해졌다. 아버님은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아흔이 된 노인에게 고맙다는 다정한 말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고 배웠지만, 내가 살아온 문화와는 너무 달라서 나는 매번 화가 났고 정말 화가 극상으로 솟구쳐서 정수리를 뚫고 나올 때에는 결혼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다시 스물 다섯살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해결되지 않는 어떤 문제는 자꾸 끝을 가늠하게 만든다.






아버님이 오빠의 트라우마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작년에는 아버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 왔으니, 올해 나는 빠지겠다고 선언을 하고 말끔하게 협상을 완료한 후였다. 밤이었고, 오빠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 그런데 여행은 언제 갈꺼야? 아버님 생신 맞춰 가면 성수기라 너무 붐빌 것 같은데?

- 아빠 생신에 셋이 같이 밥 한 번 먹고, 그 다음 달에 좀 선선할 때 가면 되지 않을까?


순간 큰 별똥별이 내 이마로 팍 떨어졌다. 나는 오빠가 아버님을 모시고 생신 맞춰서 갈 줄 알았는데? 그러면 나한 번에 끝나는데, 여행도 모시고 가고 밥도 따로 먹는다고? 그 돈은 우리가 다 내는 거잖아. 내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오빠는 알겠다고, 여행만 모시고 가겠다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나는 요새 폭발을 줄이는 것을 노력하고 있었으므로 입을 다물고 가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화 & 고집의 또다른 표현이기는 하지만 쏟아 붓는 것보다는 나음)


집에 도착해서 나는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돈이 문제라기보다 (물론 돈도 문제지만) 나는 이번 생신 행사에서는 빠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오빠가 모시고 여행을 간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식사 스케줄이 추가되면서 놀랐다고 했다.


오빠는 차분히 듣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그럴 수 있겠다, 근데 보리야. 나도 사실 아빠 모시고 여행가기 싫어.

같이 밥 먹기도 싫고 너무 싫어.


나도 우리 아빠가 힘들어. 우리 아빠는 나한테 트라우마야. 나도 도 이해가 안 되는데 아빠 편 들고 싶지 않아. 그래서 얘기하는 게 힘들고 싫어. 나도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처럼 에어프라이어 사주고, 먹을 거 사주고, 철마다 용돈 챙겨주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 용돈도 많이 안 드려도 되고, 나이도 안 많고, 갈 때마다 좋은 말 해주시고 항상 고맙다고 해주는 부모님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도 우리 부모님이 너무 싫고 미운데, 싫고 미워할 때마다 내가 싫어져.


나는 오빠가 이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어서 정말로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이해되는 마음이었다. 아, 오빠의 부모님은 오빠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구나. 자신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노력하느라 여태까지 이렇게 부자연스러웠던 거구나.


억지로 이해를 시키려던 수백 번의 말보다, 이 한 마디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부모님이 너무 싫고 미운데, 싫고 미워할 때마다 자신이 싫어진다는 말. 이 말이 콕 박히자 내 마음의 각도가 약간 달라졌다. 저 부분이 가장 약하고 끔찍한 부분이라면, 저 부분까지 사랑할 수 있게 내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 역시 '억지로'가 빠지면 많은 것들이 쉬워진다.


그 다음에도 물론 오빠와 아버님이 싸우는 순간이 있었다. 아버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매달 관리비 납부 영수증을 보내주시는데, 납부 후 잔액이 몇 백만원이라며 연체금액이 어떻게 몇 백만원이냐고 소리소리를 지르셨다. 납부 후 잔액은 연체된 금액이 아니라 아버님의 통장 잔고라는 말씀을 아무리 드려도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재계약 할 때 관리비 연체비 2만원 + 보증금 상승 70만원으로 총 72만원을 추가 납부하셨는데, 2만원만 연체비라고 설명을 드렸어도 72만원 모두 연체비를 받은 줄 아셨던 것과 비슷했다. 아마 그 기억 때문에 연체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으신게 아닐까.


그게 해결되실 때까지 전화하시겠다는 태도로, 아버님은 30분에 한 번씩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해달라고 하셨다. 당장 연체된 내역이 없다는 문서를 끊어다 달라고! (그러나 그런 건 없겠지...) 오빠는 처음에는 다정하게 받았지만 점점 화가 났고, 전화를 일곱 통쯤 받아서 똑같은 말을 삼백 번쯤 되풀이 한 다음부터는 급격하게 화가 올랐다.


나는 이상하게 화가 많이 나지 않았다. (안 났다는 뜻은 아님) 마치 괴롭히기 위한 것처럼 전화를 걸어대는 아버님이 오빠에게 가장 약하고 아픈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달랐다. 나는 일차적으로 이건 불안장애라는 (엉터리) 진단을 내리고, 오빠에게 아버님이 불안하셔서 그럴 수 있으니 잘 달래드리라고 했다. 내가 화를 내지 않자 오빠의 화도 차츰 수그러들었다. 오빠의 화에서 상당 부분은 나에 대한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날, 오빠는 잠시 아버지 집에 들러서 달래드리고 오겠다고 했고, 나는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버님은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체금액이라는 게 쌓이고 있을 까봐 불안하신 것이었고, 연체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문서필요하신 거였다. 그런 게 없다면? 만들면 되지!


PPT로 만든 공문서 위조 영수증을 오빠 이메일로 보냈다. 문서번호를 XXXX-XXXX-XXXX-XXXXX 정도로 알파벳과 숫자를 적당히 섞어서 넣고, 거주자 성명, 거주자 전화번호와 연체된 내역이 없다는 문장을 넣고 그 아파트의 로고를 중앙 하단에 배치했다. 10분만에 만든 이 영수증의 퀄리티가 썩 나쁘지 않아 나의 직업이 문득 자랑스러워졌다. 그리고 오빠 회사 근처에서 컬러 프린트가 가능한 PC방을 수배해 위치를 같이 찍어 보냈다.


만약 내가 그 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면,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아버님은 왜 그러시냐고 따발따발 화를 낸 다음에 후회를 하고 있었을 타이밍이었다. 화가 나지 않으니 오빠가 안쓰러웠고, 안쓰러우니 도와주고 싶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빠가 아버님 집에 들어가자마자 이 가짜 영수증을 보여드리니 바로 이거지, 이거지 하시면서 박수를 치셨다고 했다. 나의 알량한 이 문서 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니.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화를 내지 않으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보이게 된다고. 그리고 하나 더,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는 큰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이런 평화는 대부분 오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먹어도 잔인한 현실 앞에서는 절망적으로 깨지는 법.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러니 지금은 이 짧고 연약한 평화를 즐기며 새로 산 에어프라이어로 피데기나 구워먹으며 여름 밤을 보내야지.


** 에어프라이어 광고 아닙니다. 100% 엄카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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