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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효 Aug 12. 2023

선(線) 2

한계를 깨다

 물 공포증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던 중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전에 없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수능이 끝나면 할 목록에 다이어트가 있어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접근성이 좋으면서 사는 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운동을 찾으니 수영 밖에 없었다.


 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을까? 물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뇌한 끝에 ‘피할 수 없으면 부딪쳐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오전 10시의 수영장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가득했다. 내가 꾸었던 꿈처럼 수영장에 나만 남겨지는 일은 절대 없었고,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수영장의 투명 유리 천장에서는 따뜻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밝고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며칠은 물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생 초보는 나 혼자였기에 홀로 수영장 구석 바닥에 킥 판을 깔고 누워 스트로킹 연습을 한다든가 발장구를 쳤는데, 다 큰 어른이 혼자 버둥거리는 것 같아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 들어가서는 물도 참 많이 먹었고 중간에 수심이 깊어지는 곳에서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게 너무 무서워 패닉이 오기도 하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전환점을 맞이한 시점에서 내 안의 어떤 경계선을 넘고 싶었다.  



    

 킥 판을 빼고도 물에 뜨고 영법도 어느 정도 배운 후에는 비록 꼴찌이지만 같은 시간 대에 강습을 받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레일 돌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스무 바퀴씩 쉬지 않고 도는 게 처음에는 불가능했는데, 강습이 없는 날에도 매일매일 나와 연습을 한 끝에 쉬지 않고 도는 것은 물론 레일 돌기 순위도 차츰 맨 뒤에서 하나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열아홉 살의 체력이란 수영 경력이 십 년씩 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를 몇 달 만에 넘을 수 있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2005년 겨울, 나는 십 년 만에 물 공포증을 이겨냈다.


 그때 이후로 더 이상 검은 물이 나오거나 물속에서 고립되는 꿈은 꾸지 않는다. 물공포증을 극복한 후 스노클링, 서핑은 물론이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서 태평양 수심 28미터 아래의 돌고래와 만나는 환상적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열아홉 살 그때, 수영을 배울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경험을 놓치게 되었겠지. 내가 만들어 놓은 한계를 깨고 선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 것이 이토록 다행일 수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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