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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효 Jan 23. 2023

먹고 마시고 비워내라 1

태국에서 인도로

 십여 년 전 매서운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마는 딱 이맘때쯤, 인천공항에서 타이항공을 타고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방콕을 경유하여 남인도로 입국한 후 약 한 달간 인도에 머무르다가 북인도에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 네팔을 여행하고 다시 방콕을 경유해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행기가 아니다. 먹고 마시고 비워내는 이야기이다.     




 당시 인도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음주를 아예 금지하는 주들이 있었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술이 많지 않아 가격이 비싸고 질도 좋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인도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었다.


 특히 몰래 술을 파는 식당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 만든 술은 알 수 없는 성분이 들어간 가짜 술이어서 정신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많았다.


 가뜩이나 미지의 나라인 인도에서 건강하게 돌아오려면 술은 입에도 대지 말자라고 결심하였고, 우리는 인도에 가기 전 마지막 술이라는 생각에 나흘 정도 머문 태국 방콕과 방콕 인근 휴양지인 파타야에서 신나게 먹고 마셨다.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없는 음식이 없었고, 잔뜩 시킨 음식들과 함께 늦은 밤까지 흥청대며 로컬 맥주인 싱하, 리오, 창을 비롯하여 작은 드럼통만 한 하이네켄을 비우고 또 비웠다.




 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싱하 한 캔을 마셨다. 그리고 인도 벵갈루루에 도착과 동시에 금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벵갈루루는 인도 남부의 대도시로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곳이다. 실리콘밸리라기에 인터넷 환경이 좋은 줄 알았는데, 와이파이는 커녕 미닫이 유리문이 달린 인터넷 카페에서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인내심이 바닥 나 이메일 보내기를 때려치우고 뛰쳐나오게 만든다.


 인터넷 속도보다 우리를 더 힘들 게 한 것은 고기였다. 인도인의 80퍼센트는 힌두교를 믿는데 이들은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인도인의 14퍼센트는 이슬람교를 믿는데 이들은 돼지를 부정하게 여겨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인도 식당에는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없다. 벵갈루루는 다른 지역보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볼 수가 없었다.


 철저한 육식주의자였던 우리는 닭고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인도에서의 첫 일주일 동안은 탄두리 치킨이나 닭 가슴살이 들어간 카레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인도에 조류독감이 돈다는 소식이 돌더니 닭마저 자취를 감춰버렸다. 남은 3주 간 소도 돼지도 닭도 없이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인도 남부에서 북부로 올라가며 보통 아침으로는 바나나와 비스킷을 먹고, 점심과 저녁으로는 카레 몇 가지와 차파티나 로띠, 약간의 야채와 한없이 가볍게 흩날리는 흰밥이 동그란 쟁반에 1인분씩 나오는 탈리를 먹었다.



 인도 중부의 ‘오르차’라는 매우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는 ‘원빈식당’이라는 한글이 적힌 간판을 발견하여, 원빈을 아주 살짝 닮은 인도 청년이 만들어 준 당근과 양배추가 들어간 수제비를 먹기도 하였다. 종종 라씨와 짜이를 마셨고 길거리에서 간식으로 라임을 뿌려주는 군고구마를 사 먹으며 아주 잘 먹고 다녔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했다. 다들 배에 가스가 찬 것 같다며 툴툴댔고 고양이 자세를 하면 가스를 뺄 수 있다는 말에 매일 밤마다 다 함께 엎드려 손을 쭉 뻗은 후 가슴을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를 치켜세운 자세를 취했다.


 어느 날 밤 고양이 자세를 하던 중 누군가 말했다. 고기를 씹고 싶다고. 고기, 고기, 고기. 소든 돼지든 닭이든 미친 듯이 먹고 싶었다. 육즙을 떠올리고 가상의 고기를 씹으며 침을 흘렸다.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네팔에 가기로 했다.


네팔에서는 술도 고기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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