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네팔의 접경지대인 소나울리로 갔다. 걸어서 국경을 넘어 네팔 비자를 발급받고 불교 4대 성지인 룸비니로 향했다. 목적지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할 수 있는 네팔의 포카라였지만 룸비니에 들린 이유는 한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룸비니는 불교 성지답게 한국, 중국, 베트남, 독일, 일본, 태국 등의 불교사원이 모여 있는데 당시 유일하게 한국 절만 먹여주고 재워주며, 절에서 주는 한식이 그렇게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2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수 킬로를 걸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국 절 대성사에 도착했다. 보살님께서 그날 묵을 방을 안내해 주셨는데 그동안 인도에서 머물렀던 숙소와는 천지 차이였다.
돈 없는 배낭여행객이라 하루 5천 원짜리 숙소에 머문 탓도 있겠지만 방과 침구의 위생 상태가 영 못 미더워, 챙겨 간 침낭에서 한 달 여를 지냈는데 절 방의 하얀 요와 이불, 베개가 호텔 못지않았다.
그리고 찰기 있는 흰쌀밥과 알 감자조림, 콩나물 무침, 단무지와 시금치된장국뿐인 단출한 식사였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무려 세 번을 더 먹었고, 이 밥을 더 먹고 싶어 1박만 하려 했던 일정을 수정해 하루 더 머물며 한식 만찬을 즐겼다.
그래도 부족했는지 하루만 더 있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얼른 포카라에 가서 고기를 먹자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따뜻하고 깨끗한 잠자리에 맛있는 음식까지 양껏 먹게 해 주신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율적으로 시주할 수 있는 상자에 가진 돈을 몽땅 넣을 뻔했다.
대성사를 뒤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족히 30년은 된 것 같은 버스는 창문이 닫히지 않아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담요를 두르고 오들오들 떨며 7시간을 넘게 달려 늦은 오후 포카라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고 짐을 두고 나오니 저녁 시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다!
론리플래닛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팔 것 같은 식당을 골라 찾아갔다. 어두운 붉은색 조명 아래 놓인 큰 목재 식탁에 앉아 메뉴를 보는데 소고기 스테이크가 한국 돈으로 5천 원이다. 그리고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인 산미구엘이 떡하니 메뉴에 있었다.
인당 1 소고기 스테이크, 1 산미구엘과 라지 사이즈의 피자도 시켰다. 미디엄레어로 익힌 두툼한 고기를 서걱서걱 썰어 입 안에 넣은 후 육즙을 음미하며 씹다가 산미구엘 한 모금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 맛이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화덕에서 구운 피자도 야무지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꾸르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