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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효 Feb 03. 2023

먹고 마시고 비워내라 3

다시 방콕으로

 오랜만에 만난 소기름과 알코올에 장이 화들짝 놀랐던 걸까. 모른 체하고 계속 입 안에 음식을 밀어 넣는데, 꾸르륵 거리는 빈도가 늘어났다. 더 이상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는데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숙소에 가서 해결해야겠다 싶어 일행에게 숙소 열쇠를 받아 식당을 나왔다. 


 그런데 골목을 돌고 또 돌았지만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장이 난리부르스를 추는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흐려졌다. 마음속으로 하느님과 부처님을 찾다가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앞에 보이는 집 문을 다급하게 두들기며 외쳤다. “이머전시!!!!!!”    

 

 이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붉은 페인트를 바른 화장실 문과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 안의 모습이다. 이머전시한 상황은 그렇게 종료되었고 정신이 들자 이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렵게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 빨개진 얼굴로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땡큐, 땡큐 베리 머치”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 준 집주인의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고개를 들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당으로 돌아가 일행과 합류했고 그날은 더 이상 고기도 맥주도 먹을 수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3박 4일간의 안나푸르나 산맥 등반이 시작되었고, 산에서 덜덜 떨면서 자다가 하산 후 이틀을 꼬박 몸살로 앓아누웠다. 몸을 회복한 후에는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관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무사히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집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먹고 마시고 비워내기는 계속되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반 거지꼴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경유 시간이 3시간 정도 되었는데 집에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현금은 모두 써버렸고 신용카드도 없어 빈털터리 상태였다.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남은 동전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버거킹 세트 하나를 사서 나눠먹었다. 


 턱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배고프다를 입에 달고 공항을 배회하고 있는데 면세 코너에 초콜릿 시식대가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초콜릿 샘플이 맛 별로 세 가지 놓여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오고 가며 하나씩 주워 먹어 동이 나 버렸다. 빈속에 초콜릿을 잔뜩 먹어 쓰린 배를 쥐어 잡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마침 비행기에는 승객이 거의 없어서 2-3-2로 배열된 비행기 가운데 세 칸 자리를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내식 배식이 시작되었다. 초콜릿 때문인지 속이 좀 이상했지만 음식을 마다할 내가 아니었다. 


 오리고기 요리와 싱하 맥주를 주문하여 신나게 먹고 마신 뒤, 가운데 좌석의 손잡이를 올린 채 누워있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기류를 탈 때마다 울렁임은 더 심해졌고 그렇게 몇십 분을 버티다가 비틀비틀 비행기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작은 변기에 그날 먹은 전부를 토해버렸다.



      

 다사다난했던 여행을 마친 후, 아직까지도 비행기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배고플 때 다량의 초콜릿은 절대 금지이며 되도록 과식도 피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여행지에서의 맛있는 음식은 자제력을 잃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속으로 한번 외쳐본다. 


“먹고 마시고 비워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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