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책을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힌 책은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
저자는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쓸모없는 취급을 하고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하며, 현재와 같이 생산성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과연 모두가 일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본질적으로 ‘놀이’를 하는 특징을 가진다며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 칭하지 않았던가. 본디 인간은 놀도록 되어있는데, 왜 우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일주일에 5번 하루 8시간 이상,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해야하는 나는, 데이비드 프레인과 요한 하위징아의 통찰력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일요일 점심부터 ‘출근하기 싫어!’를 외친다.
책을 덮고 일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한다.
우스갯소리로 하루라도 돈을 못 벌면 생계가 곤란해지니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이 현실이다. 일단 매월 12일 빠져나갈 카드 값과 공과금, 대출 이자, 그리고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내 통장 잔고가 떠오르고 가슴이 짓눌리는 듯이 갑갑해진다.
혹자는 한번뿐인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을 찾는 것조차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려 재밌는 일이 없을까 모색해본다. 오랜만에 공연을 볼까, 여행을 갈까,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궁리하다가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는 걸 깨닫는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이 없으면 놀 수 없는 모순. 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만 해야하는데, 침대에 누워 유튜브만 보며 살기엔 세상에 누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어느새 창밖은 어둑해지고 회사가기 싫은 마음은 점점 커져 우울해진 감정으로 침대에 눕는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일 늦잠자면 안되지’ 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출근하지 않아도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뭐’, ‘일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지’ 라고 나와 타협해본다. 일과 놀이의 어느 지점에서 얕은 사유가 착잡히 꼬리를 물고 맴돈다.
그러다 문득 ‘어른’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한 사람이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는 상태, 특히나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룬 상태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것들은 돈과 연결되어 있기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매일의 오늘, 내가 해야 되는 일은 출근.
일하러 가서 돈을 버는 것. 돈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만끽하기 위해, 어른으로서 온전히 자신을 책임져야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일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