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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그나마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아채간다. 그러니까 나의 글쓰기는 나를 슥 그렸다가 다시 응시하는 것의 반복이다. 최근 글쓰기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글이 삶을 초과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말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를 만났다. 정확하려 애쓴다기보다, 힘을 푼 채로 서른 언저리의 남녀를 따라가 보는 영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대로의 초상을 그려낸 영화 <초행>.
지금껏 살던 거처를 옮겨야기에 박스로 가득 찬 집이다. 달걀을 들고 갈 수는 없으니 이사 전에 다 먹어치우기로 한다. 그러니 오늘 저녁은 달걀프라이다. 부엌 한 구석에 선 채로 달걀프라이를 나눠먹는다. 7년의 연애를 지속 중인 수현과 지영의 모습은 이렇다. 그들의 행방은 한결같이 '임시적인'과 '알 수 없음'으로 대변된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대학원을 준비하는 수현과 방송국 계약직으로 앞으로의 거처는 어찌 될지 모르는 지영. 수현은 대학원에 붙을지 떨어질지 모르고, 지영은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게다가 생리가 늦어진 건지 임신한 건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제 서른 초중반의 나이가 된 그들이 각자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여정을 비춘다. 임시거처와 같은 그들의 집과는 다른 윗세대의 둥지에서 그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려는 수현과 지영은 윗세대를 이해시키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수현의 학원 일은 '돈이 되나'라는 질문으로 차단당하고, 지영은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에 '어렵다'라고 얼버무린다. '내세울 것' 없이 명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한 그들은 '탐탁지 못한 숨겨놓은 자식'과 같다. 수현은 종종 지영에게 묻는다. '무섭지?' 이 모든 게, 이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의 모든 것이.
거의 대부분 그들은 등을 내보인다. 마치 자신의 모습은 뒷모습이라는 듯이. 수현이 자화상을 그려놓곤 '내가 모르는 사람이 그린 것 같'다고 말하며 '모르겠다'라고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것은 '훨씬 더 똑똑한 네가 말해봐.'라는 엄마의 채근에 그만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숨겨버리는 지영의 마음과 닮았다. 수현의 어머니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지영은 같이 살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수현 어머니의 말에 '같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 하고 반문한다. 앞 길에 대해 '모르겠는' 그들에게 초행은 낯섦과 설렘이 아닌 무서움일 뿐이다. 이제 지영이 대답할 차례다. '무섭지?'라는 질문에 '나 너무 무서워.'라고 소리치는 지영은 너무나 그대로의 상태로 외친다. 아무런 꾸밈없이, 나 너무 무섭다고.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동시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제일 등한시되는 언어.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니'라는 말로 시시때때로 공격받는 우리의 정체성은 나도 모르는 마음을 아는 체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 다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그리고 아는 체 하는 나와 당신들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나 모르겠어, 그래서 무서워.'라고 외칠 수 있을까.
이 지금 그대로의 이야기는 수현이 말했듯 '나를 모르는 사람이 그린 것'과 같은 자화상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렇게 마음을 울린다. 힘든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흐느끼는 지영을 도닥이는 수현과 바닥에서 탕수육과 소주를 먹으며 배시시 함께 웃을 수 있는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그대로의 초상이기에.
글쎄, 아무것도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우리가 물음을 가장한 동조, 이 무서움에 대한 솔직한 고백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초행길의 중간중간 수현과 지영이 나눠먹는 달걀프라이, 커피, 탕수육, 그리고 어묵은 유독 따뜻해 보인다. 별 희망이 없다는 걸 안 채, 자신의 다음 거처를 알지 못한 채로 발을 떼야하는 상황에서의 이 따뜻함은 낮게 웅크려 있을 때 옷깃을 살짝 당겨주는 마음처럼 다정하다. 그들의 거처에서 시작한 영화는 촛불시위가 한창인 광장을 오가는 뒷모습으로 끝난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사라진 널따란 광장에서 그들은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발을 옮긴다. 이 알 수 없는 여정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작은 종이컵의 어묵을 나눠먹을 수 있는 온기가 그들 곁을 지키리라.
<초행>, 김대환, 2017